책소개
어떤 사람이든 삶의 마지막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현직 의사가 가감 없이 밝히는 병원사 이야기『병원에서 죽는다는 것』. 현직 의사인 야마자키 후미오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병원에서 어떻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지 체험을 바탕으로 한 12편 이야기를 통해 여과 없이 알려준다. 현대 의료 시스템...
한 남자의 죽음
자신의 병명이 폐렴인 줄로만 알았던 한 노인이 있다. 병문안을 온 그 누구도, 의료진도, 심지어 아내마저도 실제 병명(사실은 식도염 말기로 기관식도 누공 형성)을 숨기고 ‘모두 다 잘될 거야’ 라는 말로 노인을 안심 시킨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더 쇠약해져 가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이 노인은 희망을 잃어간다. 정말 폐렴이 맞는 건지 의혹과 불신은 커져가지만, 기관절개관으로 인해 목소리를 잃고, 전신에 기운이 없어서 표현하지도 못한다. 이 노인은 의혹과 불신 속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고, 점차 삶을 놓아버린다. 처음에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던 의료진들도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입을 꾹 다문 채 기계적으로 노인의 상태를 체크하고 기록한다. 처음에는 말을 걸던 아내마저 입을 다물고 가끔 눈물을 흘리고 아내의 눈물을 보며 이 노인은 더욱 더 자신의 상태를 비관하게 되고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린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동적으로 살아있는 그 노인. 아마 아내는 곁에서 바라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아내는 모든 치료를 포기하게 된다. 노인에게 주입되던 고칼로리 수액은 생리식염수로 바뀌고, 수액 속에는 대량의 진정제가 투여되었다. 노인은 진정제로 인해 사고력이 저하되고 강제적으로 잠이 들게 된다. 작가는 의료진과 가족 모두 그의 심장이 멈추기만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고 기술한다. 결국 치료를 포기한 지 일주일 후, 그는 눈을 뜨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상태로 숨을 거두었다.
이는 일본의 사례이지만, 분명 우리나라에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내가 이 노인의 이야기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점은, 치료 어디에도 환자 본인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심지어 노인은 병명도 모른 채로 세상을 달리했다)과 노인의 상태가 악화될수록 무관심해지는 의료진의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