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대표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가 숄로호프의 단편선!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가 미하일 숄로호프의 단편집. 1965년 '고요한 돈 강'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 작가 숄로호프의 단편들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단편으로 꼽히는 '인간의 운명' 외에, 단편집 '돈 강 이야기'에서 가려 뽑은 13편을 수록하였다....
주제: 카자크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남편은 아내를 길들인다고 윽박지르고 때린다. 아내들은 집단으로 모여 남자들에게 대항하게 된다. 페도트가 용서해 준다며 주제넘게 여자들 앞으로 왔다가 엉겅퀴로 맞는다. 페도트는 판사에게 이래도 되느냐고 항소를 한다.
카자크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잘 때리는데 이유는 질서를 잡기 위해서이며 안그러면 여자들이 버릇이 없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여자는 말 같아서 때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맞은 여자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패도트를 엉겅퀴로 때렸다.
주제: 전쟁은 옳고 그른 일을 판단할 겨를이 없다. 나부터 살고 보자다. 후에 올가미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는 것만 알 뿐이다.
화자는 이제 군대에서 제대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돈 강을 건너고 있다.
늙은 사공의 낡은 배가 물살을 못이기고 숲속으로 떠내려가고, 젓는 노는 부러졌다.
하는 수 없다. 밤을 나기 위해서 사공과 나는 숲 속 나무로 옮겨 앉았다.
사공의 이름은 미키샤라였다.
사팔 눈에다 머리카락은 희끗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나에게, 부모가 아들을 기다리며 밤마다 모성의 눈물을 흘린다. 진실한 마음으로 받아 들이라고 했다.
주제: 적에게 아들이 죽었고, 적일 수밖에 없는 소년을 양아들로 삼는 노인이다.
하지만 양아들은 타인이 되어 노인을 떠났다.
카자크라는 말은 방랑하다, 떠돌아 다니다를 의미하는데 중앙 아시아의 카즈마크에서 나왔다고 해설에서 소개했다.
-유목 생활을 한 중앙 아시아의 키르기스인들은 스스로를 카즈마크라고 부른다.
20세기 초에는 카자크란 단어가 몽골어 코(갑옷)와 자흐(경계, 국경)에서 나왔고 그 의미는 ’국경의 수호자‘라고 한다.-
<타인의 피>는 늙은 노인 부부가 아들을 전쟁에서 잃어버리고 적인 남의 아들을 전심전력으로 간호해서 살린다. 죽은 아들을 생각하고 친 자식 이상으로 여긴다.
타인의 피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카자크 내전의 참상과 기아의 상황에서 반혁명군 이념보다 혁명과 볼세비키의 이념에 공감하는 작가의 태도가 직간접적으로 나타나 있다고 해설을 하고 있었다.
숄로호프의 단편들은 비극적이고 슬프다.
카자크인들의 삶의 모습이 비단 그들의 것만 아니기에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한다.
숄로호프가 용기를 내고 썼을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으면서 이 시대에 이 땅에 살아서 매번 감사하고 감사함을 느껴야 했다.
시발로크는 아기를 데리고 고아원에 맡기려고 했다.
고아원에서는 자리가 없어서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고아원 원장에게 제발 아기를 받아 달라고 하소연 하면서 아기가 어떻게 태어났고 지금 고아원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처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발로크 일행은 돈강 상류의 타자크 마을을 따라 아그나타예프의 반혁명당을 추격하고 있었다.
기관총을 운반하는 마차를 탄 시발로크는 언덕 위에 한 여자가 치마를 머리 끝까지 올려놓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다리야였는데 아스트라한 지역의 반혁명당에게 능욕을 당했다고 말했다.
주제: 내전은 가족 관계와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 악이며 재앙이다. 모두가 희생자다.
숄로호프는 카자크의 전통과 풍습을 잘 알고 직접 보고 겪었다.
카자크의 참상과 비극은 가족들이 어떻게 파괴되고 이념 때문에 어떻게 살해되는지 참혹한 비극을 <배냇점>을 통해 보았다.
기병 중대장 니콜카 코셰보이는 열 여덟살이다.
기병 중대에서는 그를 두고 말을 했다.
“정말 애송이고 풋내기야.”
하지만 반년동안 피해를 거의 입지 않고 두 개의 반혁명도당을 쳐부수고 여러 전투와 접전해서 고참 중대장 못지않게 중대를 잘 지휘했다.
니콜카의 아버지는 독일과의 전쟁 후로 소식이 없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카자크이고 그도 카자크이다.
카자크는 15,17세기에 세금과 압제를 피해 자포로지예, 돈, 쿠반, 시베리아 등으로 도망친 농노이고, 또 그 자손이다. 특히 돈강의 카자크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주로 기병으로 근무에 종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