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중국 지식인들과 정체성』. 당송 변혁기의 정치, 사회, 사상, 문학의 변화 속에서 사대부들의 정체성을 추적해 신유학의 형성과 새로운 사대부들의 출현을 설명한다. 이 변화의 핵심에 있었던 ‘사문斯文’은 문학, 예술, 철학의 문화적 요소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 요소와 인간의 행위 규범을 포함하는...
1. 들어가며
책에서 ‘사대부’라는 단어를 읽을 때면, 항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심상이 있었다. 문(文)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사군자 같은 고고함을 갖춘 선비의 모습. 역사적으로 사대부라는 단어는 시대를 구분하여 달리 의미를 가지지만, 나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임을 막론하고 ‘사대부’라는 단어에서 조선 시대 선비의 모습만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러나 중국사를 공부하면서 특히 유학에 대해 깊이 알아가면서, 편협한 심상에서 벗어나 ‘사대부’를 큰 틀에서 또는 작은 틀에서 각각의 시대에 맞도록 규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나의 고민은「중국 지식인들과 정체성」이라는 책을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책의 내용이 길고 다소 전문적인 책인 만큼 어려운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역사, 문학, 철학 등의 여러 문헌을 망라하여 논의한 내용들이기에 실증적인 자료가 매우 풍부하고 해박한 지식을 담고 있어 송 대의 지성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적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책일 것이라 확신한다.
2. 당송시대 사대부들의 변화
저자인 피터 볼은 당송시대 사문의 변화를 기존의 해석과 달리 바라보고 있다. 전통적인 시각에서 송 대 신유학의 발생은 주희가 말하는 도통의 맥락 속에서, 즉 도학이라는 철학적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피터 볼은 그와 같은 철학사적인 시각은 고문 운동과 이후의 북송 대 논쟁, 도학의 출현이 가지는 성격을 그 시대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보고, 오히려 철학적 측면보다는 문학적, 사회적, 정치적 문맥에서 당시 사대부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점에서 그는 이 책의 부제에서 문학과 사상 그리고 철학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인 ‘지성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책의 주제는 당송 시대의 지성적 분위기 속에서 가치들이 변화한 근거를 설명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당 왕조 초기의 학자들은 저작, 통치 그리고 행위를 위한 규범적 모범은 축적된 문화 전통 속에 간직되어 있다고 ......<중 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