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을 저술한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이 사랑에 대해 근원적이고 인격의 계발적인 측면에서 고찰한 저서. 저자는 각 장에서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수치심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사랑을 사용할 수 있는가, 숨겨진 잠재성을 표출시키기 위해 사랑을...
에리히 프롬은 독일 태생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이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다.
한 번 이상은 다시 읽으며 주요 내용이나 문구에 메모하며 읽어야했다.
책의 목차대로 내용을 살짝 정리할 필요가 있다.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이란 흔히 떠올리는 남녀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 포함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개념같았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잘 할 수 있을까? 가 아니라 사랑이 기술이라면
그것을 배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 제기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은 감정이며 우연히 빠지는 것으로 여긴다.
『사랑의 기술』을 읽고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훈련이다.”
이 글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담긴 오해와 무지를 하나씩 벗겨내고,
감정이 아닌 ‘능력’으로서의 사랑을 새롭게 이해해가는 사유의 기록입니다.
연애나 감정적 위로가 아닌,
‘사랑하는 존재로 산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프롬의 사유를 따라가며, 독자는 어느새 자신의 삶과 사랑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특히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는 대목에서
멈춰 선 이 글의 화자는, 정직한 고백과 사유의 흐름으로 글 전체를 이끌어갑니다.
감상 중심 글이지만 문장 구성과 논리 흐름이 탄탄해,
중·고등학생 과제용, 대학 교양 독후감,
성인 독자들의 내면 탐색용 글로 모두 활용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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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책장을 넘기는 내내 내가 지금껏 얼마나 ‘사랑’을 오해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만든 철학서이자 심리학서였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감정’으로만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찾아오거나 어쩌면 피할 수 없는 본능처럼 여겨왔다. 하지만 프롬은 단호하게 말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며, 그 기술은 배워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 말은 처음엔 다소 낯설고, 심지어는 차갑게 들리기까지 했지만, 책을 읽을수록 그 말의 진정한 의미가 점점 더 깊이 다가왔다. 사랑은 단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어떻게 돌보고, 타인을 어떻게 이해하며, 인류 전체를 어떻게 포용할 수 있을지를 묻는 일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연애의 기술’이 아닌 ‘삶의 기술’에 대한 통찰로 느껴졌다.
1. 토의 주제와 그에 대한 의견
(1) 에리히 프롬이 제시한 사랑의 다양한 유형에 대해 분석해보자.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 동성애도 사랑인가? 등)
에리히 프롬이 제시한 사랑의 다양한 유형 중 저는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해서 분석을 해보았습니다. 특히, 그는 어머니가 자식에게 가지는 사랑의 유형 즉, “모성애”를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하였는데요. 김민겸 학우도 이에 동의하시는지 ‘엄마가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자녀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전부 모성애를 가지고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모든 어머니란 존재들이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면 우리 사회에 그와 관련된 아동학대와 같은 극악무도한 일들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프롬은 사랑을 여러 형태로 나눈다. 형제애, 모성애, 성애,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을 각각 설명하며, 각 사랑의 형태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형제애는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며, 차별 없이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태도를 포함한다. 모성애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형태를 말하며, 성애는 특정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감정적, 성적 유대가 결합된 형태이다. 자기애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자신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다양한 심리학 도서 중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전에 저는 사랑은 화학적인 형태의 “감정”이라고 생각하여 “왜 저자인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기술이라고 표현하였을까?”라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을 철학적인 관점이 아닌 화학작용에 의한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인체 내의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몸에 분비하여 사랑이라는 감정이 느껴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철학적으로 사랑에 대해 저술한 에리히 프롬의 글에 동감하며 사랑은 감정이 아닌 기술로서 생각하는 것이 “다양한 관점에서의 사랑을 해석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 중에서 “감정이란 운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기술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 얻은 자신의 능력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내용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사랑을 감정이 아닌 기술로서 접근한다. 프롬은 사랑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하며,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사랑을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습득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사랑은 단지 한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으며, 자기 사랑을 포함하여 부모의 사랑, 연인 간의 사랑, 우정, 형제애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사랑의 기술』은 사랑을 다루는 여러 이론과 함께 현대 사회에서 사랑이 왜 어려워졌는지를 분석하며, 그 해결책으로 이타적인 사랑을 제시한다. 프롬은 현대 소비주의 사회가 개인을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비판하며,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1. 사랑은 기술인가
“현대인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한 사랑의 이야기,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무수한 영화를 보며,
사랑을 노래한 시시한 수백 가지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랑의 기술 中
소설, 영화, 노래 등 사람의 감성에 영향을 주는 영역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는 빠지지 않는다. 누구나 사랑을 갈망하지만 두려워하기도 하며,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통을 줄 수도 있다. 이러한 양립성을 가진 사랑을 성공적으로 쟁취하기 위해 현대인들은 부단히 노력하지만, 가장 많이들 하는 실수는 바로 '사랑을 받기 위한 노력'만 한다는 것이다.
남성은 사랑받기 위해 재력을 과시하고,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 한다. 여성은 사랑받기 위해 본인의 외모를 가꾸고 값비싼 물건들로 몸을 치장하여 매력을 높이려 한다. 그러나 사랑은 받기만 해선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가 없다. 사랑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사람의 외모, 재력이 평생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주변에서 사랑의 실패는 자주 보인다. 그 원인에는 물론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들이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행태를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유일한 한 가지 방법은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삶은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랑은 단순한 감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능력과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랑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자 테마이다. 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대문호와 철학자, 심리학자가 인류에게 감동을 전하는 걸작을 만들어내며 이 주제에 천착(穿鑿)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본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며 그 대답은 간단하지가 않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자본주의가 가장 중요한 이념이 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현대인들은 행복한 사랑을 하는 것이 인생 목표라고 생각하며 애를 쓰지만, 오히려 끊임없이 갈등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다. (오늘날의 이혼율만 봐도 사랑과 결혼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는데도 실제로 행복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건 이토록 힘이 드는 것일까. 그리고 갈수록 사랑을 잃어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고독한 섬으로 살아가는 것이 운명일까.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요즘은 그야말로 인스턴트 연애가 유행이다. 썸이라는 말이 유행하듯이 가볍게 가볍게 연애하는 것이 그야말로 요즘의 유행 트렌드이다. 그런데 이것을 정녕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둘이 사귀면서 깊은 정신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도 아니요, 그런 유대를 원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저 마음이 맞는 두사람이 잠시 만나 데이트하고 성행위를 즐기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요즘의 실태이다.
그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이런 사람은 불행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혼자 살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간접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사는 것이 순리이다.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것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사랑이다. 원래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남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아야지 살아가는 존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사랑에 관하여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이러한 일반적인 태도는 몇 가지 전제로부터 나오는데, 첫번째 전제는 사랑을 ‘내가 타인에게 베푸는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사랑을 잘 줄 수 있을지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 사람이 될 지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한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기도 하고, 운동이나 미용 등 자기자신을 가꾸는 방법으로 사랑받을 능력을 키운다.
사랑을 배움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두번째 이유는,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다소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첫번째 전제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을 할 대상을 발견하기만 하면, 사랑하는 것은 굉장히 쉽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