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분단으로 인한 상처, 이산가족의 아픔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이데올로기로써의 가족의 기원과 그 실체에 대한 의문을 재기한 장편소설. <이 소설은 6•25때 헤어진 수지와 오목이라는 이산 자매 얘긴데 불행히도 생전에 만나지 못했다. 지금과 같은 ‘이상가족찾기’ 운동이 없어서가...
인간의 죄성, 트라우마, 희망과 절망,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두르고있는건, 습관이라는 관성, 반복, 그 안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어떨까. 매일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는 어떨까. 혈관에서 피가 돌아다니며 심장이 펌프질하고 산소가 코안에서 수천번 수만번 왔다갔다할 때 우리의 생각도 뇌속에서 그 이상의 속도로 움직인다. 그 사고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아침에 만났던 사람에 대한 인상, 불쾌한 기억, 해결하지못한 문제에서 파생되는 걱정과 염려, 주어진 과제와 매일먹는 밥, 매일마시는 커피, 그리고 매일 앉아있는 책상과 의자,
그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무엇을 반복해왔을까. 무엇을 성취해왔을까.
전쟁 중 1951년 1.4후퇴 때 피란길에서 사람들의 물결로 붐비는 때를 틈타 일곱 살 수지는 다섯 살 동생 오목을 은표주박 노리개로 한눈팔게 하여 손을 일부러 놓아 버리고 혼자서 가족에게로 돌아온다. 가족들은 오목을 찾기를 포기하고 피란을 떠나고 세월이 흘러 전쟁이 끝난 후 성인이 된 수지와 오빠 수철은 부모가 남긴 유산의 덕택으로 유복하게 살아간다. 오목을 찾으려고 고아원 봉사를 지속해 오던 수지는 오목을 만나고 결국은 그녀가 자신의 동생임을 확인하지만.오목이 자신을 언니로 알고 둘의 관계가 밝혀지면 지난날 자신의 죄가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여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부유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 중산층의 수지는 어느 날 자신의 일곱 살, 다섯 살 난 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목격하고 그 순간, 일곱 살 난 형이 동생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흥분하며 자신의 일곱 살 때, 떠올리기 싫은 그 기억을 떠올린다.
6.25 전쟁의 발발로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당시 일곱 살짜리 수지는 다섯 살 오목이를 고구마 한 개 때문에 버린다. 늘 아귀처럼 먹어대며 그녀의 것을 빼앗아가곤 했던 것에 진절머리가 났던 것이다. 어른들은 동생에게 양보하는 수지를 착한아이라고 칭찬해주었지만 그녀는 칭찬을 받기 위한 양보에 너무나 지쳐 있었고 또 굶주려 있었다. 당시 아버지의 죽음으로 넋이 나간 어머니는 자식을 돌봐 줄 겨를이 없었고 자존심이 강한 오빠는 그녀의 굶주림을 모른 척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녀는 1.4 후퇴 와중에 의도적으로 동생 오목이의 손을 놓아버리고 자기 혼자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기가 오목이를 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실수로 잃어버렸을 뿐이라고 자기 자신마저도 속이며 오목이를 찾는 척 연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