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도시
『도시로 읽는 조선』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펴내는 총서의 열네 번째 권이다. 이 책은 역사 흐름이 새겨지는 장소로서의 공간을 이야기한다. 특정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 ‘공간’은 시간이 흘러 ‘장소’로 변모하고, 사는 이들의 애정이 스며든다. 이 책은 시간의 상흔과 삶의 족적이 각인된 도시를...
한양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약 500년간 백제의 도읍이었고 신라의 통일 이후에는 한주가 설치되고 다시 한양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태조대에는 양주로 개명되었고 문종 대부터 수도로 주목을 받아 남경으로 승격되어 3경 체제에 편입되었다. 수도로서 남경 건설이 추진된 것은 숙종대였는데 대규모 공역에 착수하고 연회와 불사를 거행하기도 하엿으나 인종대에 남경 궁궐에 화재가 발생하고 이듬해 서경에 대화궁이 조성되자 남경의 위상은 이전만 못해졌다. 이후 무신집권기와 몽골의 침입을 겪으며 남경은 황폐해졌다.
한양이 수도로 다시 주목받은 것은 공민왕대였다. 공민왕은 옛 남경 궁궐을 수리하라 지시하였고 이듬에 천도를 추진하며 남경의 이름도 회복했다. 하지만 천도 추진은 실제 천도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우왕대와 공양왕대에도 천도가 안건으로 떠올라 천도를 단행하였지만 모두 5개월 만에 다시 개경으로 환도하며 완전한 천도가 이뤄지지는 못했다.
조선을 개창한 태조는 국정 운영 대부분을 측근에게 위임했지만 수도를 옮기는 일은 큰 관심을 갖고 주도적으로 추진하였다. 천도를 서둘러 추진한 까닭은 고려 왕조가 뿌리내린 개경을 떠나 새 국가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서였다. 신하들은 무리한 천도는 민폐가 일어날 수 있으니 궁궐과 성곽을 짓고 천천히 하자 주장하였고 태조도 이를 받아들여 일단 천도는 중지되었다. 이후 천도 문제는 이듬해인 1393년이었는데 이 때는 계룡을 새로운 도읍 후보지를 보아 도읍 조성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하륜이 풍수상의 문제점을 들고 나오며 계룡으로의 천도 추진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그 뒤 하륜은 무악을 도읍으로 추천하였으나 대신들은 반대하였고 천도 자체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냈다. 태조는 관료들이 천도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자 언짢아하며 개경에 가서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는데 돌아가는 길에 한양에 행차하여 남경이 도읍으로 어떠한지 의논하도록 면하자 재상들은 천도를 해야 한다면 한양이 적합하다는 의견을 냈고 태조가 이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