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공으로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적어도 일시적인 충동이나, ‘우리나라 말은 잘하니까’와 같은 자존심도 없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이 진로 선택은 다소 순진하면서도 보편적으로 이루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 나는 당신도, 당신 친구분들도 모두 과외 선생님이었던 부산의 친척 집에서 한창 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고, <공무도하가>와 같은 국문학의 아주 오래된 작품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국문학의 역사적인 작품들을 하나씩 배워나가는 중이었다. 그런 과정 속에 나는 나도 모르게 ‘흔하고 의무적’이라 편견을 가졌던 국문학에 묘한 매력을 느꼈고, 얼마 되지 않아 ‘국문학과에 가겠다’는 인생의 주요한 지점의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