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6세기의 조선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선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이시기 사람들은 가족관계에서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았고 친족관계에서 본손과 외손을 구별하지 않았다. 혼속과 결혼생활도 남자가 여자집으로 가서 혼례를 올리고 그대로 눌러사는 장가와 처가살이 혹은 남귀여가와...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는 조선 중기 문인인 미암 유희춘의 개인 일기인 『미암일기』를 정창권이 현대인이 알기 쉽도록 풀어 쓴 책이다.『미암일기』는 조선 중기 양반 가정의 생활사를 ‘미암 일가’라는 미시적 단위의 생활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녀 많은 역사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또한 한국 여성사를 공부함에 있어서도 미암의 기록은 크게 ‘개인 일기’라는 것과 ‘조선 중기의 기록’이라는 것,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먼저, 역사 연구는 공식적인 문헌 자료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남성 권력에 의해 남성 위주의 역사가 기록되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이와 같은 개인 일기를 살펴보는 작업은 여성사 연구에 있어 무척 중요하다. 둘째로, 조선의 백성들이 양난으로 인해 성리학적 질서에 완전히 종속되는 후기 이전에 쓰인 기록이라는 것에서도 의의가 있다. 여기서 양난은 임진왜란(1592~1598년)과 병자호란(1636~1637년)을 의미하며, 조선은 이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경험하고 국가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이전까지 잔존하던 고려적인 정체성에서 탈피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성을 강조하는 완전한 성리학의 나라가 된다.『미암일기』는 미암이 1567년에서 1577년까지 약 11년에 걸쳐 기록된 것으로 양난 이전에 해당하며 따라서 이때의 생활사, 그리고 가정에서의 여성의 힘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후기의 것과는 무척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 양반 가정에서의 남녀의 지위, 힘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후기의 모습과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는 본론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미암 유희춘은 전라도 해남 태생인데 우연하게도 필자의 고향 또한 해남이기 때문에『미암일기』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또, 한편으로는 약 20년간 해남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미암 유희춘 선생에 대해 지금껏 알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