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오르한 파묵의 주요 주제가 집약된 대표작!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의 대표작 『하얀 성』. 동양과 서양이 서로 마주보는 도시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나는 왜 나인가?'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물음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17세기, 베네치아에 살던 젊은 학자 '나'는 나폴리로 향하던 중 타고 있던 배가...
어떤 경험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스스로가 생각할 때, 자신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에 대해 정의를 내릴 때, 내가 나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오르한 파묵은 하얀 성에서 파디샤를 통해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하얀 성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이룰 수 없는 그 목표지점에는 축제나 놓치지 않고 싶은 행복이 있을 거라 말을 한다. 이 모습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스스로가 생각할 때 필요한 요소가 바로, 하얀 성과 같은 하나의 목표지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어떤 그 무엇인가가 바로 나라는 사람을 나답게 만들어갈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1985년에 발표된 하얀 성은 오르한 파묵이 세 번째로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이후 뉴욕 타임즈에서는 그를 ‘동양의 새로운 별’이라고 극찬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긴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난해한 느낌이었다. 줄거리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사유가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시대와 공간을 막론하고 생각할 가치는 충분하다. 그의 저서인 “내 이름은 빨강”, “검은 책”, “하얀 성” 등 오르한 파묵은 색깔을 제목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일인칭 ‘나’라고 표현되는 남자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인 그는 터키 이스탄불에 끌려가 호자라는 사람을 만나는데 주인공과 꼭 닮은 사람이다. 당시 실권을 쥐고 있는 파샤가 등장하고, 어린 나이에 군주가 된 파디샤도 등장한다. 이들이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살면서 항상 궁금한 질문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태어났으며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였다. 나의 정체성을 찾기에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청소년 시기에 아주 많이 방황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도 고민은 있었을 것이고 삶에 대한 회의감 따위는 없는 채로 사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끼며 살았던 걸로 기억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풀지 못하는 궁금증은 이 세상이 만들어진 이유와 내가 태어난 이유다. 어떤 목적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이 세상과 나는 태어난 이유가 없다. 그래서 공허하고 빈 껍데기같이 느껴지는 삶의 허무함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가 어느 순간 증폭되어 나타나는 것 같다. 나에게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
주제: 지혜로운 노예를 보고, 열심이지만 부족한 자신을 아는 주인은, 노예와 얼굴을 마주 보고 한 곳을 바라봐야 저도 지혜롭게 되는 줄 안다. 그렇게 터득한 지혜는 인생을 바꾼다.
-처음부터 결정된 인생은 없다. 모든 이야기는 실상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우연히 경험했던 것들이 사실은 필연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터키 함대들의 색깔을 그려보는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맺기에 가장 적당한 때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색깔들,
베니스인 노예인데 학문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항해를 하다가 터키 해적에게 포로로 잡혔다. 노를 젓는 일이 하기 싫어서 의사인 척 했다.
이야기는 베네치아인인 '나'가 오스만 함대에 의해 노예로 붙잡히면서 시작된다. 처세가 좋았던 '나'는 나름의 능력을 인정받아 단순 노동을 하는 노예보다는 좋은 대우를 받게 된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간단한 해부학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의사라고 포장하는데, 상대적으로 의학 기술이 덜 발달한 오스만 제국인들은 그가 간단한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본 후 그저 그의 말을 신뢰하게 된다. 이후에 그는 파샤의 눈에 들어 종종 그의 부름을 받게 된다. 여느 날처럼 파샤가 다시 그를 불러들이던 날, '나'는 흠칫 놀라고 만다. 그와 같은 얼굴이 자신을 마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샤는 '나'로 하여금 저자와 함께 자기 딸의 결혼식에 쓰일 폭죽을 만들라고 명한다. 이렇게 같은 얼굴을 한 오스만 제국인 호자와 베네치아인 '나'의 기묘한 만남이 시작된다.
1. 본론
1.1. 호자가 가진 동서양에 관한 의식
1.1.1. 서구 사회에 대한 동경
나를 상대로 사소한 시험을 하고 내가 모르는 어떤 지식을 얻어내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뭔가를 배우는 것처럼, 배울 수록 궁금한 것처럼 항상 그렇게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상한 지식을 심화하려고 한 걸을 더 나아가는 것은 주저하는 듯 보였다. (p. 31.)
'나'와 얼굴이 쏙 빼닮은 호자라는 터키인 남성은 '나'에게 묘한 눈빛을 보낸다. 그것은 지식을 갈구하는 눈이다. '나'는 그의 눈에서 지적 호기심과 망설임을 동시에 읽는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첫째로, 그가 탐구하고자 하는 지식은 어떤 종류의 것인가. 그리고 둘째로, 어째서 그는 망설이는가.
이틀 후 자정에 다시 내게 물어왔다.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이라는 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 그때 나는 그에게 내가 배운 천문학에 대해 처음 언급했다. (p.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