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는 《휴먼카인드》에서 공멸과 연대의 기로에 선 인류에게 가장 시급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본성은 과연 이기적인가?” 최초의 인류부터 현재까지 방대한 인류 문명의 역사가 증명하는 한 가지 진실은 “전쟁과 재난 등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인간은 어김없이 ‘선한 본성’에...
전쟁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가 초반에 나온다. 전쟁 속에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인데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편향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린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노는 것은 천지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내적 성찰과 너무 적은 외적 성찰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함께 시작된다.” (p. 508)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느 쪽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장담컨대 후자라고 답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이 태초부터 선한 존재라고 대답하는 이들을 순진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며 부도덕한 존재라는 것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반대의 진실을 내놓았다. 인간은 올바르고 선하다. 선함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부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생존을 위해 택한 전략이었으며, 타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훌륭한 스킬 중 하나라는 것임을 말이다.
군대에서 시행하는 정신전력 교육에서는 강력한 군사력의 중요성에 대해 배운다. 특히 정신전력 평가문제에서는 전쟁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인지 묻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주변국과의 우호적 관계,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보다는 주변국이 도발을 강행하지 못할 정도의 강력한 군사력이라고 답을 정의하고 있다. 이는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악한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본성이 국가간 관계에 반영되어 갈등과 전쟁이 일어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보를 지키기 위한 자조 즉, 군사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국제학을 수학하며 현실주의 이론에 관심이 있던 나로서는 이러한 정신전력 교육에 동의하며 특히 현실주의 이론의 기반이 되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악한 본성에 공감할 수 있었다.
- 서론
최근 세계적인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중국 및 동양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보도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침공에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줄을 잇고 있다는 보도도 확인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한 상대를 돕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만을 챙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윤리와 사상 및 생활과 윤리에서 우리는 인간 본성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접하였다. 이기적 유전자나 호모사피엔스의 저자 등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고 말한다. 이타적 유전자나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이타심도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며 특히 전쟁이나 재난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협력과 공존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브레흐만의 이러한 주장이 담긴 휴먼 카인드를 읽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살필 것이다.
- 노시보 효과
혹시 플라시보 효과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반대인 노시보 효과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는 긍정적으로 자기 암시를 하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이론인데 반대로 노시보 효과는 부정적으로 자기 암시를 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도출된다는 이론이다. 노시보 효과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례는 1999년 벨기에의 한 마을에서였다. 당시 벨기에 한 마을에서 어린이 9명이 병원에 실려 갔고 원인을 조사하던 중 어린이 9명이 공통적으로 코카콜라를 먹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곧바로 벨기에 전역의 코카콜라 제품이 회수되었고 벨기에 전역에서 구토, 현기증, 메스꺼움을 호소하는 어린이들이 병원에 몰려들게 되었다. 이어진 조사의 결과 코카콜라에서는 그 어떤 독성물질이 검출되지 않아 코카콜라는 사건 혐의를 벗게 된다. 이 사례는 부정적으로 여기면 부정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는 노시보 효과의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이 와닿았다기 보다는이 ‘인간 본성’, ‘희망’이라는 용어가 포함된 이 책의 부제인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에서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 인간은 과연 친절한가? 사실 생각해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사회는 냉랭해진 것 같다. 특히나 코로나 19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에 사람들과의 사회적 거리는 더더욱 멀어진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은 그 어느때보다 민감한 모습이다. 나 역시 그렇다. 삶에 치이는 것도 모자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사라지게 되자 극도로 더 민감하고 예민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성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그 본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 본성에 관하여 논하니 무언가 철학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고루하게 느껴지는 이러한 담론을 왜 이제와서 다시금 언급하는 것일까?
오래 전에 한 방송사에서 거짓과 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서 방영을 한 적이 있었다. 실험 대상자와 참여자들을 한 공간에 두고 누가 봐도 거짓인 정보를 전달하게 하는 간단한 실험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보이던 대상자들이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설득을 하자 동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진실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속았거나 혹은 긴 시간동안 오해하고 있었다고 나중에 깨닫게 되면 굉장히 속상할 것이다. 하물며 오랫동안 확실하게 여겨졌던 인간 본성에 대한 결론이라면 더더욱 충격적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치와 종교 그리고 때로는 경제적인 이유로 다른 국가와 민족을 공격하고 학살했던 사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충격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았어도 인간의 잔혹함을 매일 아침 뉴스에서 접할 수 있다. 연인이나 친구 심지어 부모나 자녀를 대상으로 한 끔찍한 범죄 소식들을 볼 때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라는 존재가 악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인간 본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권유하는 책이 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언론인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쓴 『휴먼카인드』가 바로 그 책이다. 저자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악한 존재라는 그동안의 굳건한 주장에 대해서 여러 가지 근거들을 바탕으로 한 반론을 제시하고 있다. 기후 변화와 전염병, 부의 양극화 등으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하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 이 책이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선물해줄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최근 전세계적인 코로나 19의 유행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마스크 착용, 백신 접종을 둘러싼 갈등과 혐오 범죄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인간은 자기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인간은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동물인 것일까. 이 물음에 ‘휴먼카인드’의 저자 브레흐만은 정반대의 시각을 설파한다. 저자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며 특히 전쟁이나 재난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협력과 공존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브레흐만은 이 주장을 논문, 역사적 사실을 통해 책 전반에 걸쳐 논증하고 있다.
- 노시보 효과
혹시 플라시보 효과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반대인 노시보 효과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는 긍정적으로 자기 암시를 하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이론인데 반대로 노시보 효과는 부정적으로 자기 암시를 하면 부정적인 결과로 도출된다는 이론이다.
노시보 효과가 현실에서 집단적으로 일어난 사례는 1999년 벨기에의 한 마을에서 일어났다. 당시 벨기에 한 마을에서 어린이 9명이 병원에 실려 갔고 원인을 조사하던 도중 어린이 9명이 공통적으로 코카콜라를 먹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곧바로 벨기에 전역의 코카콜라 제품이 회수되었고 벨기에 전역에서 구토, 현기증, 메스꺼움을 호소하는 어린이들이 병원에 몰려들었다.
후속 조사 결과 코카콜라에서는 그 어떤 독성물질이 검출되지 않아 코카콜라는 사건 혐의를 벗었다. 이 사례는 부정적으로 여기면 부정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는 노시보 효과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코카콜라를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고 믿어 병원에 실려가는 것처럼 우리들이 타인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며 반대로 인간에 대해 플라시보적 관점을 갖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은 성악설에 쐐기를 박은 책이다. 무인도에 조난당한 아이들이 모이면 어떻게 될까, 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 소설이다. 아이들은 야만인이 되어 서열을 나누고 힘 센 리더의 말이 곧 이상적인 목표가 된다. 거역하면 고문하고 죽인다. 마치 20세기 인류를 강타한 공산주의, 파시즘, 나치즘으로 포장한 잔인한 독재주의 같다. 픽션이지만 매일 발생하는 폭력적인 뉴스 덕택에 강한 지지를 얻어 지금까지 고전으로 읽혀지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180도 다른 반론을 펼치며 성선설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 책은 파리대왕을 반론하며 성선설을 뒷받침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하나의 사례이긴 하지만, 1966년 아타섬에서 발견된 소년들 사건에 집중한다. 그곳 무인도에 정박한 아이들은 어땠을까? 파리대왕에서처럼 서로 서열을 나누고 대장 말에 거역하는 사람을 처단했을까?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들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기 위해 농사, 요리, 경비 등 각 분야별로 역할을 나누어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공격적인 은여우는 선택받지 못했다. 인간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은여우만이 번식을 허락받은 개체 가 되었고,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은여우는 학습하게 되었다. 인간이 가진 도덕적 관념인 ‘선함’이 아니라 ‘생존’이 그들의 동기 부여가 된 것이다. 꼬리를 흔들고,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택한 생존 전략이었다. 신석기 혁명으로 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청동기를 지나며 계급이 형성되었다. 사람은 위 와 아래로 등급을 지어 구분되었고, 위의 사람은 아래의 사람에게 자신의 이익을 위한 불합리한 행 동들을 강요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도 아래의 사람들이 이에 순종했던 것은 그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지도자를 중심으로 사회를 꾸려나가고 적들에 대항하는 것이 합리적인 생존 방안이었다. 그러고 이러한 삶의 방식 역시도 다수의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리해짐에 따라 민 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변화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