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한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사회와 그 본질에 대한 깊은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당시 사회와 정치, 인간 본성에 대한 스위프트의 날카로운 통찰을 느낄 수 있었고, 그가 어떻게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풍자적으로 풀어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인간 사회와 개인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거인의 땅, 소인들이 사는 땅, 하늘을 떠다니는 섬 등 여러 흥미로운 무대로 독자를 이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모험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 생겼다. 배를 타고 떠나는 탐험가의 기질, 낯선 땅을 발견할 때의 경이로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위험과 곤란함이 뇌리에 남았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조금씩 다른 감상이 밀려들었다. 거인국에서의 체험은 인간이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몸소 깨닫게 했고, 소인국에서는 주인공이 거대한 존재로 군림하면서 자신이 속한 문명이 정말로 우월한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행동 하나하나가 자칫 폭력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떠오른다. 거대한 신처럼 군림하면서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저자는 그 점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특히 브롭딩낵에서 마주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가장 인상적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커다랗다. 음식부터 의자, 그 나라 백성의 손가락까지 하나하나가 무서울 정도로 커다랗게 다가온다. 처음엔 낯선 구경거리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곧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수그리며 조심스레 움직여야만 한다. 작은 동물 취급을 받으며 더 이상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다. 소인국에 있을 땐 자신이 너무 크다고 느끼더니, 거인국에서는 그 반대가 벌어진다. 그래서 무척 혼란스럽다. 독자로서는 같은 인물이 완전히 다른 처지에 놓일 때 그의 생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거대한 존재가 되고, 작디작은 존재가 되는 양면을 모두 지켜보게 된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저자는 하늘을 떠다니는 섬 라퓨타나, 말들이 주도권을 쥐고 사는 나라까지 보여준다. 그 묘사는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고민해 보면 그 세계들이 지닌 특색이 결코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고국에서 마주하는 부조리나 이중잣대, 과학 발전에 대한 맹목적 기대, 말 못 할 역설을 거울처럼 비추는 것 같다. 라퓨타에서는 과학과 지식이 풍부해 보이지만 그들이 실제로 사회에 제공하는 이점은 의심스럽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다양한 모험을 통해 인간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풍자하는 소설입니다. 이 책은 걸리버라는 인물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겪는 기이한 사건들을 담고 있습니다. 소인국, 거인국, 날아다니는 섬 등 상상력이 풍부한 나라들을 배경으로 인간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꼬집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소인국과 거인국의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소인국에서는 모든 것이 작고 세밀하게 이루어져 있어,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면, 거인국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아무 의미 없게 보였습니다.
설정이 매우 독특해서 인상깊게 본 소설이었고 다시 읽게 되었다. 그 설정이라고 하는 것은 ‘걸리버’라고 하는 인물하면 떠올리는 소인국, 반대로 거인국에 가서 겪은 것들을 떠올리기 쉽다. 이 여행기에는 멋진 비유가 잘 들어가 있다. 소인국 사람들의 행태만 지켜봐도 잘 알 수가 있다.
『걸리버 여행기』는 주인공 렘륄 걸리버가 네 차례에 걸쳐 가공의 나라들을 여행하며 겪는 모험과 풍자를 그린 작품입니다.
제1부에서 걸리버는 소인국 릴리퍼트에 표착하여 15센티미터 정도의 키를 가진 난쟁이들을 만납니다. 초반에는 왕의 총애를 받으며 지내지만, 점차 궁정의 파벌 싸움에 휘말려 곤경에 처하게 되고, 결국 탈출해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이를 통해 스위프트는 당대 영국 정치계의 부패와 당파싸움을 풍자합니다.
제2부에서 걸리버는 거인국 브로브딩내그에 도착해 자신보다 12배나 큰 거인들 틈에서 살게 됩니다. 그는 궁정에서 여왕의 사랑을 받으며 지내지만, 거인들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스위프트는 브로브딩내그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오만함을 풍자하고, 인간중심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제3부에서 걸리버는 공중 부양 섬 라퓨타를 방문합니다. 라퓨타의 학자들은 온갖 터무니없는 연구에 몰두하느라 현실을 돌보지 않습니다. 걸리버는 이들의 극단적 이론주의와 비현실성을 비판하면서, 근대 과학과 계몽사상의 맹점을 풍자합니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 걸리버는 야후라 불리는 인간과 흡사한 짐승들이 사는 나라에 도착합니다. 야후는 추악하고 폭력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반면, 야후를 지배하는 이성적 존재 후이넘은 고결하고 건전합니다. 걸리버는 문명화된 인간으로서의 우월감에 도전받고, 인간 문명의 근간이 되는 이성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귀국 후 걸리버는 인간 세계의 부조리와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인간을 야후와 동일시하며 혐오하게 됩니다. 그는 말과 대화를 나누며 여생을 보내려 하지만, 가족들의 설득으로 인간 사회로 되돌아오면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거인국 왕은 걸리버에게 걸리버 크기의 여자를 얻어 주어 후손을 보기를 바란다. 그러나 걸리버는 후손을 남길 바에는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그곳에서 자식을 남긴다면 그의 후손들은 ‘카나리아 새처럼 조롱에 가두어지고’ ‘진기한 물건으로 팔려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다. 걸리버가 소인국에 있었을 때도 역시 소인국의 동물들을 영국으로 데려갔고, 소인국 사람들까지도 12명 정도 데려가려 하지 않았던가? 그때 소인국 왕은 ‘설령 그것을 희망하고 동의하는 자가 있더라도 단 한 명도 데려가지 말라’고 강하게 당부했었는데, 이 대목에서 그 이유를 새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소인국 왕은 소인들이 걸리버들로만 이루어진 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 어떤 취급을 받게 될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걸리버는 그들의 처지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하지 못했었다. 단순히 ‘신기하니까 고국에 좀 데려가면 좋겠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소인들을 데려가고자 한 것이다. 결국 걸리버는 소인들이 아무리 대단한 기술과 지능을 가졌던들 상관없이 오직 자신보다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그들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애완동물 정도로 여겼던 셈이다. 그리고 정작 본인이 거인국에서 그런 취급을 받았을 때에는 분개하고 슬퍼하며 끊임없이 자신도 동등한 인격체임을 증명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거인들은 걸리버 자신이 그랬듯 끝까지 걸리버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서점을 둘러보다 걸리버 여행기가 눈에 들어왔고 두께도 적당해 킬링타임용으로 구매했다.
어릴 때 읽었지만 그냥 소인국에 잡혀서 속박당해있던 걸리버의 모습 말고는 기억에 남는 게 없어 결말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어릴 때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와는 너무나도 딴판이었다.
책 설명에 쓰여있는 강력한 해학과 풍자가 어떤 건지 절실히 깨달았다.
1부는 내가 알던 걸리버 여행기다.
릴리펏이라는 소인국에 표류하게 된 걸리버.
장님 마을에선 외눈박이가 괴인 취급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모두가 난쟁이라면 걸리버가 거인이 되는 것이다.
그는 자신과 다른 소인국 사람들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내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며 그들의 삶에 쉽게 동화된다.
불이 난 성의 화재를 진압하고,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끄는 등 많은 공을 세웠지만
명분을 중시하며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소인국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판타지 소설인데 이것만큼 고전이면서도 재밌는 소설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어릴 때 동화책 비슷한 형식으로는 많이 접했는데 소설로 다시 읽어보니 굉장히 설정이 촘촘하고 판타지이긴 해도 보는 맛이 아주 좋았다. 걸리버는 의사였는데 배를 타다가 혼자 섬에 떨어지게 되었다.
작은 섬에 도착해서 불이 난 걸 오줌으로 끈 거는 다시 봐도 레전드였다. 걸리버가 착하네 마네 하면서 봐주려는 분위기가 일었음에도 벌을 가하겠다고 했고 결국 걸리버는 도망갔다. 또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사실인데 소인국 사람들이 계란을 어디서 깨느냐 같은 사소한 걸로 싸웠다고 한다.
이거는 인터넷을 찾아보니 당시 영국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한다. 거인국에서는 작다고 무시당하는 게 안타까웠다. 어릴 때 이것을 보고 나는 절대 작은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걸리버가 완전 꼭두각시 인형 취급을 당해서 더 마음이 아팠던 걸로 기억한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1667년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작가, 시인, 정치인으로 유명했고, 대표작인 "걸리버 여행기"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인기를 누렸습니다. 어릴 때 걸리버 여행기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소설을 아동소설로 알고 있지만, 사실 성인소설이고 당시 정치 상황을 풍자한 풍자소설로 유명합니다.
스위프트는 퀸즈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문학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리하고 비판적인 글을 주로 썼고, 정치적인 주장과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풍자적인 시를 썼으며, 이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걸리버 여행기"는 네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의 어리석음과 사회의 비극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걸리버여행기를 읽고 즐거운 상상을 했었던 아이였다면, 성인이 되서 실제로 걸리버여행기 완역판을 정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걸리버여행기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풍자가 무엇인지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지구 상의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며 경험을 쌓은 주인공 걸리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여행기 이상으로 인간 세상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단순한 모험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의 다양한 측면과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걸리버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상황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작은 인간들인 릴리퓨트 사람들은 사소한 불만이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진실을 왜곡하고 변형시키는 모습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인간 세상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는 브로브딩내그와 라퓨타입니다. 브로브딩내그는 거대한 자연의 힘을 상징하며, 인간이 그것에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