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장편소설 『복자에게』. ‘우울이 디폴트’인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찬란한 순간을 날렵하게 포착해내는 김금희의 소설은 무심한 듯 다정한 인물들이... 또래 여자아이 ‘복자’와 마주친다. 당차고 무람없는 성격을 지닌 복자는 섬에 왔으면 할망신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며 이영초롱을 할망당으로 안내한다.
1. 들어가며-‘고고리섬’과 그곳의 사람들
김금희의 장편 소설 <<복자에게>>는 제주도의 한 의료원에서 일어난 산재사건과 그 소송을 모티브로 한다. 작가는 2018년 제주의 한 섬에서 가을을 보내며 이 소설을 착안했다고 한다. 소설이 배경으로 하는 ‘고고리섬’은 가상의 섬이다. ‘이삭’이라는 뜻의 제주어를 붙여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지만 사건의 전개과정이나 인물은 모두 각색되었거나 허구이며 창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산재 인정을 위해 무려 팔 년간 싸워온 분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가져와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짚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작가의 말’, 241)
이 소설에는 유난히 여성 작중이물이 많이 등장한다. 제주의 산재사건을 중심으로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제주라는 역사적으로 핍박받던 땅에 그럼에도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던 토박이들, 외지인이지만, 엄혹했던 군사시절의 억압 아래 ‘동지’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 대체로 이 땅을 살다 간 여성들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오세의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삶을 더 깊이 참아내는 의미를 담긴 현자의 말이다. 냉동실에서 녹인 아이스크림도 즐길 수 있다는 복자의 말이 오랫동안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인생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인생을 위로하고 응원해줄 수 있어야겠다.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 수많은 복자들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소설은 1999년 초 봄, 야무진의 초등학생인 이영초롱 동생 대신 제주 본섬에서 다시 한 번 배를 타야 하는 고고리도 이모에게 맡겨지면서 시작된다.
책제목 : 복자에게
지은이 : 김금희
유년시절의 풍광은 내가 결정하기 어려운 것일 것이다. 물론 성인이 된 다음에도 내 마음대로 되는게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유년시절처럼 완벽히 부모에 의해 내 삶이 결정되는 것은 아 닐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이영초롱은 이름처럼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아이다. 이영초롱은 초등학 교 6학년때 제주도 근처의 고고리섬으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것도 엄마, 아빠와 남동생과 헤어져 혼자서 고모의 손에 맡겨진다.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부모의 사업이 부도가 나게 되어 이영초롱 은 제주도의 고모에게, 초등학교 3학년인 남동생은 서울의 큰아버지에게 맡겨지게 되어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성장기에 부모와 떨어져 친척집에서 지낸다는 것은 큰 심리적 타격을 수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