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옛이야기에 숨어 있는 여성성을 되살려낸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다양한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모두 지금 우리 안에 존재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건강하고 완전하게 빛나는 여성성과 움츠러들고 왜곡된 여성성, 불처럼 분노하고 질투하는 여성성과 물처럼 깊고 생명의 근...
이 책의 첫 목차인 ‘심청 이야기’는 어머니를 위해 희생하는 아들의 이야기보다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딸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은 현상과 한국인의 집단 심리의 상관관계에 대한 의문을 품으며 시작된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시공을 초월하는 신화적 인물로 재탄생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원형적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보편적 심리 패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배경조차 개인과 집단의 심리를 대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이야기적 장치가 될 수 있다. 그 예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가라앉다, 잠기다’라는 뜻의 심(沈) 자를 성씨로 가졌다. 이러한 표현은 주로 물과 관련하여 사용되는데 이 이야기 속에서는 물과 연관짓든 물이 배제되든 하강, 저하, 침잠, 침울, 낙하, 추락이라는 하(下)향의 의미들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톤을 그려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청이를 낳다가 죽은 아내 그리고 딸을 혼자서 돌봐야 하는 맹인 심봉사의 내용으로 시작된다. 맹, 즉 눈이 멀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야기 속에서는 심봉사라는 원형적 인물이 빛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과 동시에 그의 주변인들 또한 어두움과 절망의 상태에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야기의 시작에서 나타난 아내의 죽음은 심봉사 내면과 외적인 삶 모두의 여성성과의 단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남성성 중심의 사회에서 지치고 공허하고 우울한 남성, 혹은 남성 우위 사회 전체로 바라볼 수 있을까? 화자는 이를 개인적인 투사를 통해 탈진한 남성성에 손 내미는 어린 딸의 손길을 지친 가부장에 대한 치유를 담은 희망적 메시지라고 말하고 있다.
흔히 이야기에 등장하는 ‘유혹의 손길’은 심리학적으로 ‘그림자(shadow)’라고 한다. 심봉사와 스님의 만남이 바로 심봉사가 자신의 그림자를 만나는 순간이다. 그림자가 표면으로 노출되는 순간 자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과 만나게 되며, 그림자는 보편적 가치나 개인의 의견, 그리고 사실과 거짓 등이 적당히 혼재되어 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그림자의 대조적 특성을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심봉사와 스님과의 ‘공양미 삼백석’의 거래와 그 속에 녹아있는 심리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나에게 이 글은 마치 정곡을 찌르듯 매우 의미 있게 다가왔다. 저자는 과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남성과 여성의 심리에 대해서 선녀와 나무꾼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무의식이다. 저자는 이 무의식을 현재 자기 곁에 있는 상대와 혼동하지 않고 상대방의 본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고 이해해야 연애를 넘어 결혼에서도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로 유지,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이것은 선입견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갖고 있던 여성상에 대한 선입견, 즉 아니마는 실제로 연애를 함에 있어서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현재 교제하고 있는 사람을 통해 절실히 느꼈다. ‘집에 늦게 들어가는 여자는 행실이 바르지 않을 거야’ 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나의 아니마는 ‘언제나 일찍 귀가하는 여자‘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