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김예슬 선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한 서글픈 20대. 진리는 학점에 팔아 넘기고, 자유는 두려움에 팔아 넘기고, 정의는 이익에 팔아 넘긴, 대학大學 없는 대학을 거부한 한 젊은이가 있다.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기 보다...
이 책은 2010년 당시 SKY 학생 자퇴생 사건 중 K에 해당하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던 김예슬씨가 자퇴를 하며 학교에 붙인 대자보를 바탕으로 그녀가 작성한 글이다. 필자는 이 책을 평생교육론 서평 쓰기 과제를 하기 위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김예슬이라는 이름은 그녀가 대자보를 썼던 10여 년 전, 어렴풋이 당시 뉴스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필자는 부모님께 “너는 저렇게 되면 안 된다.”라는 식으로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후 학교 토론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예슬 선언의 전문을 우연히 읽었던 기억도 난다. 당시에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소년이라 그 책에서 나온 내용이 전혀 이해되지도 않고 마치 한 편의 공상 소설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랬다가 약 4년 전인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장혜영 국회의원이 2010년 당시 SKY 자퇴생 사건의 주인공
김예슬, 그녀가 고려대 교정에 대자보를 붙였을 때 나는 갓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였다. 그때의 나는 아직 대학을 구체화할 수 없던 나이였다. 시간이 흘러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대학의 환상을 꿈꿨다. 마침 이 책을 읽게될 기회가 닿았다. 책 앞머리에 인쇄된 대자보가 붙은 사진을 보며 그때 당시 신문과 매스컴에 몇 일간 오르내렸다는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기억속에 존재하는 나는 그저 명문대생인 언니가 쓴 글에 궁금해하던 소녀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 그녀가 쓴 대자보의 전문을 찬찬히 읽어보며 그녀가 대학을 그만두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대학은 과연 어떤곳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된 것이다.
30분 전,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책을 읽는 순간순간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김예슬의 용기에 대한 존경, 내 자신에 대한 성찰, 나를 비롯한 대한민국 대학생들에 대한 연민 등등 그로 인해 얼굴이 화끈거려 부끄럽기도 했고,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동시에 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정해진 답이 없기에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지금까지 일부러 미루기만 했던 이 문제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면으로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기회 삼아 물음에 답을 해보고자 한다.
나는 현재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25살 청년이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나는 모른다. 초중고 12년간 입시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왔기에 그 목적지인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학교 다닐 때에 또래 친구들보다는 약간 더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그렇다고 전교 1,2등을 다투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번에 교수님께서 지정해주신 필독서 여러 가지 중 몇 가지 것들을 읽어 보았지만 읽고 나서 가장 생각이 많이 들고 현재 내가 처해있는 현실과 가장 관련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책은 바로 “김예슬 선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이다. 이 책은 고려 대학교 대학생이였던 김예슬이라는 학생이 현대 사회와 대학의 모순에 대해 알게 되며 대학을 자퇴하고 쓴 책이다. 책의 내용을 보니 김예슬이라는 학생이 나를 포함한 현재의 평범한 대학생과는 달리 생각하는 것이 보다 성숙하고 현대 사회의 모순의 심각성에 대해 깨닫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이나 이 학생의 생각이 담겨있는 것이 느껴졌다. 몇 가지를 들면 우선 대학입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학생은 대학입시에 대해 도달할 수 없는 트랙을 달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며 대학 입시라는 것은 끝없이 자기 이외의 사람을 탈락자로 만드는 끝없는 경쟁이라고 비판하였다.
‘청춘(靑春)’이라는 단어는 그저 그 단어를 되뇌어 보는 것만으로, 그럼으로 해서 생겨나는 단어의 울림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떨리는 단어다. 어느 시절을 청춘이라 불러야 하는지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청춘의 반짝임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세대는 아무래도 20대일 것이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열정으로 똘똘 뭉친 빛나는 G세대, ‘20대’일 것이다. 그 청춘의 범위에서 탈락한 20대들은, 그러니깐 ‘취업’이라는 시장에 당당히 입성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나는, 아무래도 루저이고, 잉여이고, 88만원 세대라는, 어딘지 칙칙한 단어들 속에 파묻힌다.
20대 담론, 좁혀 말하면 지금의 대학생들을 향한 사회의 냉소적인 비난에서 꽃핀 수많은 수식어들 속에 파묻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축축한 청춘의 자취를 더듬고 있기에 나는, 우리들은 솔직히 말하면 좀 억울하다. 세상은 넓고 우리는 작기 때문에 움츠러든 우리의 어깨를, 더욱더 움츠리게 만드는 사회가 과연 우리들의 ‘청춘’을 빼앗을 권리가 있는가, 우리들의 ‘청춘’을 부정할 권리가 있는가, ‘우리’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