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전영택 중단편선『화수분』. 전영택은 1919년 김동인, 주요한 등과 함께 문예지 '창조'를 발행하고 잇달아 작품을 발표하며 문학적 열정을 불태웠지만, 이후 여러 고난을 겪으며 종교적인 활동에 주력하였다. 종교적인 색채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영택의 작품은 작가의 체험과 한국...
화수분은 많이 들어봤지만 무슨 뜻인지 정확히도 모르고 내용도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이 내용은 뭔가 슬픈 내용같다. 화수분이라는 사람이 너무 가난해서 딸도 어쩔 수 없이 딴 집에 보내고 너무 슬퍼하기도 하고 먹고살기도 힘들 가난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화수분의 형이 다쳐서 추수를 못한다는 말에 화수분은 그 형에게로 갔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난후에도 화수분이 돌아오지 않고 아는 동생으로부터 화수분의 소식을 듣는데 화수분이 아프다고 해서 아내는 아이와 함께 화수분을 찾으로 간다. 하지만 화수분도 그 때 편지를 받고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는 눈밭에 덩그러니 있었다. 그리고 달려간 화수분은 아이를 가운데 두고 아내와 껴안고 밤을 지냈다.
‘나’는 어느 초겨울 추운 밤 행랑아범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다. 그 해 가을에 아범은 아내와 어린 계집애 둘을 데리고 행랑채에 들어와 있었는데 굶기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서 아홉 살 난 큰 애를 어멈이 어느 연줄로 강화로 보내 버렸다는 말을 듣고 아비가 슬퍼서 울고 있었던 것이다. 화수분은 원래 잘살았으나 가세가 기울어 집을 나왔고, 형에게 얹혀살 만도 했으나 부끄럽다고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화수분은 양평에 사는 형이 발을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형네 집으로 일해 주러 갔다가 고된 일 때문에 앓아눕게 된다. 서울에 남아 있던 세 살 먹은 어린것과 어멈은 남편을 기다리다 주인댁에게 화수분에게 보낼 편지를 적어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행랑채에 살고 있는 화수분이 울음이 가난으로 인해 큰딸을 양녀로 보낸 슬픔 때문임을 알게 된다. 얼마 후 화수분은 형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형을 돕기 위해 양평으로 떠난다. 화수분을 기다리다 못한 어멈도 둘째 딸 옥분을 업고 양평으로 떠난다. 이 무렵 어멈의 편지를 받은 화수분이 서울로 향하다가 높은 고개에서 어멈이 옥분을 안고 떨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이를 껴안고 밤을 지새운 부부는 결국 추위를 이기지 못해 얼어 죽고 부부의 사랑으로 살아난 옥분을 나무장수가 데리고 간다.
전영택(1894~1968) 작가는 1919년 <창조>의 동인이 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에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은데 작가가 목사여서 기독교적 영향을 받은 것을 보인다.
「화수분」은 그 안에 온갖 물건을 담아 두면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는 전설의 보물단지로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할 것 만 같아서 만약에 정말 있다면 한 번쯤 손에 넣고 싶은 물건이기도 하다. 물건을 넣어두면 새끼를 쳐서 그 물건이 끝없이 나와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들게 할 것 같은 그 단지 이름이 소설의 제목임과 동시에 주인공의 이름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화수분은 삼형제의 막내아들로 장남 이름은 <장자>, 둘째 이름은 <거부(巨富)>였다. 이름 그대로는 아니어도 삼형제는 양평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는데 안 좋은 일이 겹치고 가세가 기울더니 이름 덕도 미처 못 보고 거지 신세로 전락했다고 한다.
화수분? 화수분이 뭐야?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난 이 뜻은 이해하기는커녕 짐작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래서 때마침 내 옆에 있는 국어사전을 이용해 찾아보았다.
화수분 : 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그 안에 온갖 물건을 담아 두면 끝없이 새끼를 쳐 그 내용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설화상의 단지를 이른다고한다.
나는 얼마 전 전영택 작가의 소설 ‘화수분’을 읽었다. 평소 경제학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와 관련된 한국 소설을 찾아보다가, 일제의 경제 침탈로 인한 비극을 다룬 소설인 ‘화수분’을 알게 되었다. 일제가 어떻게 우리나라의 경제를 침탈했고 그에 따른 화수분 일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화수분’은 30세 전후의 인물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남의 집 행랑살이를 한다. 행랑살이하며 어렵게 삶을 전전하다가 고향에서 추수를 거두어 달라는 연락을 받고 그 즉시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고향에 내려간 화수분은 서울에 처자식을 두고도 보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남편을 기다리다 굶주리고 지친 아내는 어린 자식을 업고 남편을 찾아 떠난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추수를 마친 화수분도 가족 걱정이 되어 서울로 올라간다. 그런데 화수분은 올라오는 길에 길가에 쓰러져 있는 아내와 어린 자식을 발견한다.
1. 들어가며
이 작품은 작가 전영택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1925년 발표되었는데, 가난에 고통 받고 결국 그 가난 때문에 죽어간 화수분 일가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작품은 철저하게 사실주의에 입각해서 내용을 전개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적 작위성, 픽션에서만 보이는 작위성이나 어색함과 같은 구절은 보이지 않는다. 당시에 우리 민족이 겪었던, 가난에 시달렸던 우리 민족이 겪었던 슬픔과 고통, 가난과 같은 문제를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대개 절망적이고 슬픔과 같은 그런 어두운 감정이 전반부를 차지하고 있으나, 이 모든 내용이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에서 비롯된 것을 생각하면 단순히 막연하게 슬프다거나, 안타깝다거나 느낄 게 아니라 우리 민족이 이러한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고 역사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이 감상했을 때 남을 수 있는 명확한 의의이기도 하다.
가난은 우리 민족의 숙명이었다.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터를 잡고 산 이래, 오랜 세월을 가난에 시달렸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에는 국가 경제가 발전하고 제도와 정치가 정비되면서 예전만큼 가난에 시달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명백히 존재한다. 이 작품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슬픈 민중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가난한 부부는 가난을 이기지 못해 딸아이를 다른 집에 버리다시피 입양을 보내야만 했으며, 일을 하러 떠난 남편을 찾으러 간 아내는 길가에서 남편과 함께 얼어 죽고 말았다. 여러모로 씁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은 1925년이다. 그때는 일제에 의해 수탈에 극에 달해가던 시점이었고, 많은 민초들이 가난을 이기지 못해 이 작품처럼 처참한 일들을 많이 겪었던 시절이었다. 이 작품은 당시에 우리나라 백성들이 겪어야만 했던 가난을 아주 단적으료 묘사하고 있다. 가난이라는 것이 단순히 돈이 없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화수분 독후감' 본문 내용 中 발췌]
1920년 일제 치하 시절, 일제의 수탈로 우리 민족은 가난과 빈곤의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런 시대상 속에서 당시의 사람들이 겪었을 고난과 비극의 삶들을 우리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영택의 단편소설 ‘화수분’은 이런 우리들에게 한 가족의 이야기를 빌어 그 비극적 시대상을 전달하고 있다. 가난으로 인해 한 가족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그려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역경 속에서 피어나는 진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중 략>
밤새 화수분 부부의 식어가는 체온으로 목숨을 부지한 딸 아이. 부부의 시체와 ‘따뜻한 햇볕’을 받고 있다고 표현한 어린 생명은 매우 대비되는 이미지로서 결코, 그들의 비극적 인생이 아이에게까지 번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이를 나무장수가 소에 싣고 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며 희망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로 말미암아 시대의 희망을 꿈꾸고자 하는 저자의 바램과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듯 했다.
소설가 전영택(田榮澤 : 1894∼1968)
장르 : 현대 소설, 단편 소설, 사실주의 소설
경향 : 사실주의 · 자연주의적 경향
시간적 배경 : 1920년대 전반기
시점 : 대체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볼 수 있으나 혼합 시점(1인칭 관찰자 시점 - 1, 2, 4, 5장. 전지적 작가 시점 - 6장. 혼합 시점 - 3장.)
주제 : 자식에 대한 부모의 희생적인 사랑
작품 개요 - 빈궁한 생활 속에 피어나는 부부애
이 작품의 주인공은 "화수분"이다. 시골에서 올라와 지게벌이를 하며 행랑살이하는 이들 가난한 젊은 내외 일가족의 살림은, 이름과는 딴판으로 거지나 다름없이 궁핍하게 살아간다. 어멈은 알사탕 하나 사 먹여 보지 못한 아홉 살짜리 큰 딸을, 굶겨 죽이느니 보다야 낫지 않겠느냐는 동네 사람의 주선으로, 생전 보지도 못했던 남의 집에 양녀로 맡긴다. 어느 날, 행랑아범은 추수철에 발을 다친 형 대신 양평에 일손을 도우러 갔다가 그만 고된 일에 지쳐 쓰러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