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현대 소설의 패러다임을 창조한 보르헤스의 미학 세계!아르헨티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집 『픽션들』. 1941년에 발표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과 1944년에 발표한 '기교들'에 수록된 17편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움베르트 에코...
호로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픽션들’ 작품을 발간함으로써 소설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작가로 알려져있다. 20세기 초는 모더니즘의 사상이 만연했던 시기이다. 모든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절대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적 사고가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 작용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나 이념갈등은 20세기 곳곳에서 일어났고, 이런 혼란을 겪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모더니즘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망감과 회의감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보르헤스 소설에 나타난 특징들은 사람들의 사고나 인식체계를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안내하기 충분했다. 보르헤스는 자신의 작품에서 탈구조주의를 강조한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이란 작품은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과 기교들’로 나뉘며 허구로 이루어진 소설로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기존의 접근법으론 해석하기 굉장히 난해하고 오직 자신의 상상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통해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작가 중심적이고 정해진 답만을 찾던 기존의 독서 방식에 물든 나에겐 굉장히 어렵고 난해한 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읽는 도중에도 수많은 각주와 각주에 또 다른 각주의 존재, 생소한 개념들로 인해 글을 읽는 도중에도 이야기에 전혀 집중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보르헤스의 ‘픽션들’이라는 책이 한 분야에만 집중되지 않고 많은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의 소설에 표현된 다양한 이야기식 구조, 탐정 소설 구조, 마술적 사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환상적 사실주의, 해체주의 등 다양한 패러다임에 대한 정확한 배경 지식과 개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 보르헤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픽션이라는 말은 사전으로 보니 소설이나 희곡 따위에서 실제로는 없는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창조해 냄, 또는 그런 이야기라고 소개 되었다.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세뇌 되어 있고 또 익숙해져 있는 것들에 대해서
비틀거나 뒤틀어 버리면서 알고 있었던 믿음과
지키고 있었던 의리를 저버리고 돌아 앉게 했다.
단편 하나 하나가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소설보다 반전과 사건 전개가 특이해서다.
이번 강의의 시작은 1주차였기 때문에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동서양 고전문학 강독 수업은 동서양의 문학에 포함되는 세계문학의 고전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키우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이다. 사상과 지헤의 보편성을 인정받아 온 동양과 서양의 여러 고전문학 작품들을 읽고 우리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 또한 이 수업의 목표이다. 그리고 이 수업은 일반적인 문학 이해 수업이 아니라 ‘강독’ 수업이다. 문학 강독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굉장히 오래된 형태의 수업인데, 문화 강독 수업은 원래 수업시간에 다함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형태의 수업이다. 현재 코로나 때문에 직접 토론을 하진 못하지만, 방향성만큼은 기존의 문화 강독 수업의 방식으로 잡고 공부를 할 것이다.
문학은 책으로 이루어진 예술 작품이기 때문에 다른 공부들과는 달리 단 하나의 정답이란 없다.
1. 먼저 지난 수업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써 주세요. 질문은 과학과 인문학, 기술의 윤리학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 담긴 한 문장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수업 불참자는 안 쓰셔도 되겠습니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인문학, 기술의 윤리학 또한 더욱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 과학의 발전이 가져오는 편리함은 인간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대해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써 주세요.
1) 틀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혹은 가리키는가)?
‘틀뢴’이 의미하는 것이 ‘시간’, 또는 ‘마음에 주어진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책에 있는 여러 단편들의 공통된 것은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환상과 허구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색해 존 바스나 움베르토 에코 같은 수많은 후배작가에게 영향을 끼친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작가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이다. 보르헤스는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최종후보로 올랐지만, 끝내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타계했다. 초기에 우파정부에 희망을 걸었던 보르헤스가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로부터 훈장을 받아서 노벨문학상에서 제외되었다는 뒷이야기도 있는데, 하지만 보르헤스는 좌우 이데올로기에 다 실망해서, 두 진영으로부터 다 미음을 받게 된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보르헤스를 “무정치적 작가”라고 부른다고 한다. 보르헤스가 버펄로에 있는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강연한 날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날이었다. 한 학생이, “올해에도 노벨상을 못 타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보르헤스는 대가답게 전혀 당황하지 않고, “내 이름이 너무 오랫동안 후보 리스트에 있다 보니, 이미 준걸로 생각했나 봅니다.”라고 대답해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인 보르헤스의 소설집 『픽션들』을 읽기 전, 이 소설이 난해하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읽기 어렵다는 전반적인 평을 무시하고 실제로 책을 읽기 시작해서야 『픽션들』의 난해성을 느낄 수 있었다. 문학 작품이라는 느낌보다는 여러 편의 논문을 읽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짤막하게 끊어지지 않는 문장들은 이해를 어렵게 만들어 몇 번이고 다시 되돌아가 문장들을 곱씹어보게 했다. 때로는 한 페이지에서 소설의 주 내용보다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수많은 각주는 가독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렸다. 지나치게 많은 각주는 비록 가독성 자체는 떨어뜨렸지만 『픽션들』의 이해를 돕는 데는 필수적 요소였다. 나는 많은 내용을 텍스트 자체에서보다는 오히려 각주를 통해 이해하였다. 이처럼, 『픽션들』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나와 같은 일반적인 문학 작품을 기대하고 읽을 독자들에겐 불친절하고 재미없는 어려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픽션들』이라는 제목에서 보이듯 허구로 구성된 책이라는 생각쯤은 했었다.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금 나와 같은 시간 이 책을 읽고 있는 모든 이들이 한번쯤은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284쪽이라는 짧은 글을 장기간 읽으며 처음 내가 느낀 것은 ‘지금 작가는 나를 농락하기 위해 이 책을 존재시켰다. 그리고 그는 분명 아이들이 미래공상 과학 이야기를 떠벌리거나, 누군가를 골려 먹기 위한 계획을 세울 때처럼 신이 나서 순식간에 이 글들을 그려 나가지 않았을까?’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헤매는 나의 ― 우리의 ― 모습을 보고 통쾌해 할 그의 얼굴이 그려졌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을 서너 번 읽어나가며 그는 참 친절하게 자신의 소설을 설명하고 우리를 들여 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그가 창조해 내고 있는 〈허구적 책에 대한 책 쓰기〉와 〈환상적 사실주의〉등에 익숙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고, 옮긴이의 각주가 없었다면 그가 소설에 담고 있는 방대한 사상들과 인물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 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반대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헤매고 있는 이 모습이 정말 작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은 시간에 관한 고찰이다. 이 소설에는 시간을 선형적 구조로 파악했던 고착화된 개념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모든 철학적, 예술적 시도가 녹아들어 있다. 소설 속 소설으로 등장하는 취팽의 소설은 시간이 가지는 무한한 결을 인정함으로서, 과거와 현재의 이어짐을 매 순간마다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 내는 반복으로 보여줌으로서 시간에 대한 관념을 뒤집었다. 취팽의 소설에 나오는 서사구조에서의 과거-현재의 시간성은 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미로라고 표현되는 취팽의 소설이 가지는 상호모순성이 시간의 면면을 대변할 뿐이다. 상호모순성은 곧 차이로 시간을 구성한다. 보르헤스가 보여주는 시간은 현재가 과거의 반복으로 진행되는 구조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현재라고 명명하는 것 또한 무수한 차이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줌으로서 시간을 무한한 우주, 순수시간으로 이끈다. 이는 취팽의 소설 뿐만아니라 보르헤스의 소설 속에도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