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영국의 주류 경제학의 부적절성에 항거했던 경제학자 E. F. 슈마허의 대표저작.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근거를 제공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가상의 인간문제에 비추어 경제학이 인간답게 살도록하는 상식의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프랑스문학과를 전공하던 시절, 에른스트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소설을 읽은 계기는 학교 도서관의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처 음에는 작품의 제목에 이끌려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몇 페이지를 넘 겨보는 것으로는 이 작품이 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기 어려웠지만, 계속 읽으면서 그 숨겨진 깊이와 아름다움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에른스트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1977)는 독일 태생의 경제학자, 철학자이자 환경운동가로, 그의 주요 작품인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1. 서론
진정으로 개발도상국을 위한 원조는 무엇일까?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인간적인 삶이 보장될 수 있는 원조는 어떤 것일까?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슈마허는 인간적인 원조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냈다. 지금까지의 대외원조는 ‘선진국에게 유리한 근대기술이 개발도상국에게도 유리하다.’ 라는 생각을 토대로 진행되어왔다.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대도시에 집중된 개발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러한 원조 형태는 개발도상국의 이중경제를 일으키고 농촌과 대도시를 통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원조는 개발도상국의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었다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근대 기술의 도입이 무조건적으로 경제성장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가령 근대기술을 개발도상국의 대도시에 도입하는 것이 경제성장을 일으킨다고 해도 그것이 제3세계의 구성원들의 인간적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교육과 규율 등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경제 성장은 단기적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지만 장기간의 자립적인 성장으로는 이어지지 못한다. 단기적이고 의존적인 성장을 이룬 국가의 구성원들 또한 인간적인 삶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지금까지의 원조 방식이 개발도상국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우선시 하지 않은 지금까지의 성장지상주의 원조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외원조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개발도상국 구성원들이 인간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토대로 논의해보려고 한다.
2. 본론
① 기존 대외 원조 방식의 한계와 보완할 점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에서 여우는 두루미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며 집에 초대한다. 여우는 음식을 넓고 얕은 접시에 내놓지만 두루미는 부리가 길어서 음식을 먹지 못한다.
제 목
: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통해 본 개발도상국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원조 방식에 대한 고찰
요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3부인 ‘제3세계’에서 대외 원조에 대한 작가의 견해가 나타난다. 슈마허는 중간기술을 통한 대외원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선진국의 상황에 부합하는 근대기술은 개발도상국의 빈곤의 상황에는 부합하지 않아 빈익빈 부익부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해외원조는 ‘지역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세금을 필요로 하는 공공 부문의 빈곤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부유한 국가이지만 공공 부문의 빈곤이 다른 국가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공공 부문은 빈곤하고 민간 부문은 풍요로운 불균형 사이에서 세금을 늘리자는 의견에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다. 이는 사유재산제 때문이다. 사유재산제 아래에서 산출되는 이익은 모두 이익을 창출한 개인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공공 부문의 빈곤은 늘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다.
위와 같이 해결하기 어려운 공공 부문의 빈곤 문제는 공적 부채라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이는 부차적으로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저해라는 문제를 초래한다. 그러나 결국 공동체의 구성원은 개인이기 때문에 공적 부채 문제는 개인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사유재산제를 통해 당장은 개인의 지갑이 두툼해졌을지 몰라도, 결국 그 부채는 공동체에 속한 개인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공공 부문의 빈곤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을 강구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개인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우리 사회 속 기업의 소유권 구조를 지적하고, 공공 부문의 빈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그 해결책을 무소유의 불교와 연관 지어 논할 것이다.
소유 구조 변화의 필요성
기업의 ‘소유 구조 변화’는 왜 필요한가? ‘재벌’의 존재가 그 이유를 대변해준다. 재벌은 기업의 소유 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기업의 소유 구조 중 하나인 소유경영체제는 소유권을 집중적으로 보유한 소유주가 기업 경영의 중요한 의사결정권까지 지배, 통제하는 경영체제를 지칭한다. 즉, 소유권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태에서 소유권과 경영권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높은 일치도를 보이는 경우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소유하고 이익분배를 집중적으로 받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존재하게 되고, 자본 또는 소유권을 대표하는 소유경영자가 경영정책과 자본의 수익 및 운영 활동에 대한 통제권을 지니게 된다.
▨ 들어가며 ▨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책 『엔트로피』에는 ‘중간 기술’이라는 말이 나온다. 제3세계의 경제 발전에 적합한 방법으로서 ‘중간 기술’을 창안한 사람은 E.F.슈마허이다. 본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슈마허의 대표작이다. ‘중간 기술’의 의미와 배경을 좀 더 알아보고 싶어서 이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 본문 요약 ▨
제1부 현대 세계
제1장 생산의 문제
현대 과학 기술의 경이적인 진보는 무한히 만들어지는 전력이라는 환상을 낳았다. 이로부터 생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환상이 동시에 생겨났다. 우리는 과학기술, 물적 기반, 설비 등을 자본으로 치고 생산을 도와줄 자본을 만들어내기 위해 일한다. 사실 자본은 대부분 자연으로부터 대가 없이 부여받은 것이다. 그런데 자연에서 얻는 것들은 자본이 아닌 소득으로 다루어져 놀라운 기세로 소비되고 버려지고 있다. 우리는 자연이라는 자본을 인공적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이 만든 물질이 자연을 훼손하는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바야흐로 공업문명은 재생 불가능한 자본을 태평스럽게 낭비하는 파멸의 길에서 탈출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제2장 평화와 영속성
과학기술 만능주의는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를 과학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펼친다. 그러나 간디가 ‘그 밑에서는 누구나 선인일 필요가 없는 완벽한 제도를 꿈꾸는 일’을 어리석은 일이라 말한 것처럼, 현대의 풍요로운 사회를 좀먹고 있는 인간의 병은 강력한 정부가 과학, 기술, 형사제도를 가지고 제거할 수 있는 종류의 일과성 현상이 아니다. 사람들의 어리석고 반사회적인 행동은 탐욕과 질투심으로 이상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케인즈는 탐욕이 부를 가져다주므로 부를 이룰 때까지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으로 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물주의는 자기 억제의 원리를 빠뜨리고 있기 때문에 유한한 환경과는 화합할 수 없다.
이 책의 제목인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중적인 표어이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문구이기도 하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지향하고픈 이상향이다. 물론, 슈마허가 1973년 이 책을 출판할 무렵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명제를 생소하게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제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그의 명제가 거대주의에 둘러싸여 있던 대중들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거대주의는 ‘무조건적으로 최대·최고만을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사회는 아직도 거대주의가 만연하다. 슈마허는 지나친 탐욕으로 인한 필요이상의 것들을 경계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현대인들은 수치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객관적인 결과물을 선호하였으며 이를 과시하는 것을 즐겼다.
- 왜 작은 것을 되찾아야 하는가?
슈마허가 이 책을 썼던 1973년은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자라나고, 대규모 제조업이 한창 발전하던 시기였다. 이 책이 써진 20세기와 마찬가지로, 21세기 현대사회 역시 거대 자본이 장악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의사소통 이상의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 극장에서 보는 영화, 등하교할 때 이용하는 대중교통 등 이 모든 것은 거대자본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1970년대에 비해 오늘날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했으며 우리의 삶은 훨씬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슈마허는 전 세계에 거대한 자본주의의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거대한 세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을 강조한다. 바로 인간이다.
거대주의의 희생자는 당연히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슈마허는 빈곤에 시달리는 하류층의 사람들을 ‘뿌리 뽑힌 존재’라고 일컫는다.
왜 이 사람들을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뿌리 뽑힌 존재라고 말했을까? 이 해답은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이 정립한 새로운 빈곤개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빈곤은 물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다. 잠재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상태다.
뿌리는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양분과 수분을 저장하고 줄기를 지탱하는 부분이다. 사람에 있어서 뿌리라는 것 역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창의성, 자아정체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 자신들의 창의성을 키우고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의 혜택이나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기본적인 권리 등을 박탈당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란 책을 쓴 사람은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입니다. 이분은 1911년에 태어나서 1977년에 돌아 가신 분입니다. 이책은 1973년에 나온 책인데요. 이책은 고전 책입니다. 그래서 평소 고전에 관심이없고 큰 흥미가 없어서 이 책을 읽기전에 이분에 대한 사전지식을 알기위해 인터넷등 자료들을 조사해봤습니다. 저는 이분을 잘몰랐지만 환경 분야에서는 많은 사람이 알고 널리 읽히는 책이라고 합니다. 이분은 특이한게 다순히 교수님이나 대학에서 공부하신 분이아니라 경제학자이거나 혹은 기업가이자 여러 가지 행정가 등 여러 가지 일들을 두루두루 하신 끝에 돌아가시기 전 몇 년전인 1973년에 그의 최초의 책인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내놓습니다. 이분이 평생 하신 일이 여러 가지 있지만 예를 들어서 재생 불가능한 자원에 의존하는 문명에 대해서 경고를 하고 또 버마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불교경제학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도대체 무엇이 아름답다는 것인가? 저자(슈마허)는 50년~60년대까지 경제 정책에 관련한 연설 또는 자문 내용을 엮은 책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펴는 순간 경제에 관한 이야기 뿐인 책이 내가 수강하는 환경과 생태 과목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문과 불신이 가득해 지기 시작했고, 한편으론 경제관념이 없는 나에게는 어렵고 이해하지 못할 까 걱정과 불안 때문에 처음엔 읽기가 꺼려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경제활동에서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인간중심 경제부흥을 이야기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 친화적인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들은 윤택한 삶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이용하면서 편리성을 추구해 왔고 그런 결과 편하고 윤택한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을 파괴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 마시는 물, 밟고 서있는 흙의 오염이 결국은 우리에게 다시 돌아와 생존의 위협에 이르는 문제를 불러왔다.
성장, 그것과 관련한 책들을 읽는 이유에는 미래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간혹 성장에 대한 비판을 넘어 비난에 가까운 글들로 인하여 염증이 느껴지기도 하였지만 가능성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본인은 충격적인 사실 두 가지를 접하게 되는데, 먼저 어떠한 경우에도 미래에 대한 증거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며, 본인은 성장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희망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종교 혹은 마약에 중독 된 것과 같이 오늘날 살고 있는 본인에게 어떠한 거부감도 없이 머릿속을 장악해 버렸다. 어느새 남보다 빠르고, 높고, 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의식과 행동을 조정하고 있었다. 이것은 충격을 넘어 이러한 오류에 잠식되어 버린 본인을 생각하면 두려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신기한 것은 이와 같은 사실을 출판된 지 무려 40년이 넘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이미 이러한 오류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