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여성영웅서사의 고전, 『홍계월전』이 새롭게 번역, 출간됐다. 오늘날 읽어도 ‘전복적’인 대목이 많아 통쾌한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최근 화두였던 페미니즘 이슈를 돌아볼 계기도 마련해준다. 흔히 조선시대는 유학의 논리로 여성을 억압했던 시대라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인간...
홍계월전은 한국 고전소설이자 대표적인 여성 영웅 소설로, 수능 고전문학 작품으로 처음 접했다. 당시 읽으며 내용이 왜인지 낯설지가 않았다. 우리나라 고전소설 중 영엉서사의 구성을 정형화하여 가르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영웅소설의 구성이 비슷비슷하서 내가 익숙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수업에서 다룬 중국 설화 방한림전에서도 여성 영웅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도 주인공은 남장을 하고 뛰어난 재주를 가졌으며, 전장에 나가 큰 공을 세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구성을 지닌 여성 영웅 소설이 존재하는 것이 참 신기하다.
명나라에서 홍 시랑 부부의 무남독녀로 태어난 계월은 어렸을 때 겪은 반란에서 아버지와 헤어지고 수적을 만나 어머니와도 헤어진 후 여공에게서 구출된다. 여공은 계월에게 평국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자신의 아들인 보국과 함께 길렀는데 계월은 장원으로 보국은 부장원으로 과거 급제한다. 서번과 가달국이 중원을 침범하자 계월과 보국은 출정하는데 그 과정에서 계월은 부모와 상봉한다.
홍계월전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여성 영웅 소설로 주인공 홍계월의 영웅적 활약을 담고 있다. 보통 영웅 소설의 주인공은 남성이지만 홍계월전의 주인공은 ‘여성’이며 등장하는 남성들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신선함이 돋보인다. 주인공 홍계월은 남성 우월주의에 도전하는 여성으로 나타나며, 기존 여성 영웅 소설에서는 여자주인공이 투쟁의 주체로 활약하는 남자 주인공을 돕는 모습으로 나오곤 했는데 홍계월전에서는 홍계월이 주체적으로 나라를 구하고 활약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런 한계를 뛰어넘었다.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등장하는 홍계월의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과, 이에 질투하면서도 홍계월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남성의 모습은 쾌감을 유발한다. 보국이 계속해서 열등감에 휩싸여서 다른 사람에게 홍계월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해도 다들 보국 편을 들어주지 않는 장면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가 ‘홍계월전’이라는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약 5년 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일 때였다. 당시 홍계월전은 고등학생들이 꼭 읽어야 할 ‘필수 고전’ 중 하나로서 당당히 교과서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전국단위 학력평가 및 모의평가에서도 빈출 되는 작품이었다. 이처럼 홍계월전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Great Book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연 이 작품이 그만큼 인정받았기에 교과서에도 실린 것인지, 아니면 교과서에 실렸기에 좋은 작품으로 인정하도록 교육받은 것인지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래에서는 먼저 “여성들의 잠재적 욕구를 반영하고 대리만족을 준다.”라는 창작 의도를 기준으로 홍계월전이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는지 비판적으로 다루어본 뒤 그럼에도 홍계월전이 Great Book으로서 지니는 가치는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홍계월전>이 쓰여진 당시 사회는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존재로 인식될 때였다. 능력이 아무리 출중한 사람이라도 여성이면 사회에서 능력을 뽐낼 수 없었다. 이렇게 억압받으며 살던 당시 여성들은 현실이 매우 답답하고 고달팠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것이 문학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여성 영웅 소설이다.
여성 영웅 소설은 대표적으로 <박씨전>, <홍계월전> 등이 있다. 하지만, <박씨전>과 <홍계월전>은 큰 차이점이 있다. <박씨전>의 주인공 박씨의 능력은 병자호란을 통해 발휘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박씨의 신통한 능력 덕분에 청나라 군대가 물러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박씨가 직접 전투에 나서지는 않는다. 여성의 잠재된 능력과 사회적 성취에 대한 열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홍계월전>의 주인공 홍계월은 남장을 한 뒤, 자신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며 많은 병사들을 이끈다.
<홍계월전>의 주인공 계월은 어렸을 때부터 남장을 하고 보국과 함께 여러 도술을 배우고 한림이 된다. 더구나 여자인 것이 밝혀졌음에도 천자가 벼슬을 그대로 가지게 하여 결혼을 한 후에도 높은 지위에서 전투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다른 여성 영웅 이야기와는 정말 다르게 계월이 남편 보국을 더 낮은 지위에 두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고, 결혼 후에도 다시 여자의 전통적인 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매우 참신하다.
그런데 글을 읽으면서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계월이 보국의 애첩 영춘을 죽이는 부분이다. 영춘을 죽인 이유는 이러하다.
시대를 초월한 여성영웅을 다룬 ‘홍계월전’은 조선후기에 소외계층이었던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루어 홍계월의 일대기를 그린 고전소설이다. ‘홍계월전’은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를 충실하게 반영해왔던 기존의 고전소설과 달리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권위를 여성에게 부여함으로써 당시에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했으며 당시 독자들의 여성해방 욕구를 담아냈다. 특히 조선후기의 여성영웅소설들은 남성과 여성이 대등하게 영웅적 활약상을 펼쳐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점을 지녔지만 ‘홍계월전’은 능력과 지위의 측면에서 여성을 남성보다 우위에 위치시킨다. 또한 여성의 성을 따르는 자녀를 등장시켜 홍계월의 비범하고 뛰어난 능력을 최대한 확장하여 여성에 대한 긍정적인 존재적 가치를 인식시킨다.
계월과 보국은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전쟁에 출전하여 수많은 공을 세운다. 홍시랑과 그의 부인이 여전히 전국을 떠도는 중, 어느 풀숲에 숨어 있다가 마침 계월의 부하들에게 발각되어 잡혀간다. 그때 계월이 그들을 역적으로 판단하여 목을 치려할 때 부인이 아이고 계월아 하며 통곡한다. 이 소리를 듣고 계월은 자신의 부모라는 것을 알아채고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하며 기뻐한다. 황제께도 이 소식을 알리자 황제는 감동하여 시랑과 부인에게 큰 벼슬을 내리고 함께 기뻐하였다.
그 이후에도 계월은 수많은 전쟁에서 활약을 해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후 계월은 사실 자신이 여자였다는 사실을 황제께 고백한다. 그러나 황제는 계월의 벼슬을 박탈하기는커녕 여자가 이렇게 큰 공적을 세운 것을 극찬하며 보국과의 결혼을 제안한다. 황제의 중매로 계월과 보국은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된다. 그 뒤에도 반란군들이 쳐들어오자 계월과 보국은 공을 세우며 행복한 부부생활을 영위한다는 내용이다.
홍계월전은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여성영웅 소설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남성보다 우월한 여성영웅의 탄생과 이의 영웅일대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을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단편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텍스트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한다. 즉 글 그 자체를 넘어서 작품창작을 둘러싼 환경이나 장르적, 역사적 맥락을 살필 필요가 있다.
우선 독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독자에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여성들이 조선후기의 주 독자층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미뤄보아 홍계월전은 여성독자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여장군전>이나 <황운전> <이춘풍전> 등의 소설들이 여성의 사회 출세를 다루고 있으며, 이처럼 조선시대에 여성위주의 소설이 적지 않게 존재했다. 이들의 존재는 조선시대에 실재한 여성주의 문학양상의 입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