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타자화는 우리 사회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가시적인 예로 우리 사회에서 남성은 어떤 직업인지간에 그 직업의 이름으로 불리는 반면 여성은 똑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직업의 이름 앞에 ‘여’자가 붙는다. 세상의 주류이자 주체인 남성에게는 굳이 ‘남’자를 붙일 필요 없이 그저 남성이라는 존재만으로 표준이 되지만 여성은 세상의 비주류이자 객체이기 때문에 ‘여’라는 접두어를 붙여 남성이라는 표준으로부터 ‘분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의 시선에서 여성의 정체성은 하나의 개인, 또는 인간으로서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만이 존재한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고 있어도 남성은 직급으로 불리는 반면에 여성은 ‘아가씨’, 혹은 ‘미스 김’ 정도로 불리는 일은 너무도 흔하다.
한 여자가 있었다. 물론 그 여자에게도 이름이 있었다.
‘하나코’라는 이름은 술자리에서 우연히 튀어나온 농담조의 별명이었다. 그들은 모임에 분위기 전환이 필요할 때, 사귀고 있던 여자와의 심리전에 지쳐 있을 때 하나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에게 하나코는 시시껄렁한 얘기를 잘 들어주는 여자였다. 그들은 어딘가 고상하고 철학적인 하나코의 편지를 소중하게 간직했다. 아내와의 연애에는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한 번도 없던 편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툭하면 하나코를 불러내어 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내밀한 얘기까지 했지만 하나코의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특히 ‘그’는 이탈리아에까지 갔지만 하나코를 만나지 않았다. ‘나를 그렇게 몰라요?’라는 대답이나 들을 멍청한 질문을 하며 만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하나코는 일본 여자의 이름이 아니라 주인공이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여자인 친구의 이름이다. 대학시절, 그녀는 코가 오똑해서 하나코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남자들이 대부분이던 모임에 항상 참여하던 그녀였고, 그녀는 항상 친구들에게 진지한 태도로 대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를 대하는 남자들은 그냥 여자인 친구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은연중에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여자인 친구에게도 당연스레 해 주는 배려라는 것이 주인공을 포함한 그 무리의 남자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하나코는 그 모임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존재였다.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드는 의문이 있다.
하나코는 무엇일까? 하나코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기에 작가는 제목부터 하나코가 없다고 할까? 지금부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의 말 속에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별명 “하나코”
소설의 시작과 함께 드러나는 ‘그’는 대학시절을 회상하면서 하나코라는 인물을 떠올린다. 하나코는 대학 때 ‘그’의 대학모임에 함께하게 된 여성으로서 남자는 하나코가 ‘그녀의 코 하나는 예쁘다’에서 비롯된 별명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왜 그녀를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부르는 걸까? 남자의 대학모임에서 처음 만나게 된 하나코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지닌 사람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한 그녀는 대화 중 조곤이 허를 찌르는 말을 해 그들의 주목을 끌거나 이야기에 기분 좋은 호응을 보여준다. 또한 남자들이 모임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만나고 싶어 할 때는 항상 정성을 들여 그들을 만나고 고민을 들어주며 만남을 거절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가 유일하게 표시하는 의사 또한 다음의 문장이 전부이다.
‘하나코는 없다’는 출장으로 로마로 간 ‘그’가 업무를 마치고 며칠간의 베네치아 여행에서 ‘하나코’를 회상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나는 발표 과제 준비를 위해서 이 책을 많이 읽었다. 하지만 볼 때 마다 느낀 점이 달랐다. 이 책을 읽고 느낀 다양한 생각을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처음 책을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아 이 책은 많은 상징적 기법를 사용하고 있구나.’이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상징들은 바로 ‘베네치아와 카페 그리고 이니셜’이다. ‘물과 안개의 도시’ 베네치아는 바로 하나코를 상징한다. 물처럼 포용력을 가지졌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안개처럼 뿌연 하나코. 많이 아는 것처럼 느꼈지만 실상 잘 모르는 하나코. 이와 같이 이 책의 주된 배경 또한 상징적 표현이다. 또 다른 하나의 상징은 바로 ‘카페’이다. 하나코는 ‘그’나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카페에서 이야기를 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 반에 체구가 아담하고 예쁜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하나코처럼 어떤 특별한 외관상의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걸음걸이나 몸짓 하나하나가 요정처럼 사뿐사뿐 걷는다고 해서 ‘중앙고의 요정’으로 불리던 아이였다. 그 여자아이가 꼭 하나코처럼 신비로운 분위기의 사람이였다. 우리 반 뿐만 아니라 다른 반까지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두루두루 친한 그 여자아이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는데, 자신의 이야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게 했다. 그 아이에 대한 나와 다른 친구들의 태도 또한 소설속의 ‘그’와 친구들인 ‘p', 'j' 와 닮아있었다. 다들 그 여자아이를 무신경하게 대하는 듯 하였으나, 그 아이의 생일에 몰래 선물을 챙겨주는 등 알게 모르게 그 아이를 신경쓰고 있었다.
요정같은 그 아이처럼 주위를 둘러보면 꼭 한명정도 비슷한 유형의,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가까운 듯, 멀리 유지하며 조용하지만 필요할 때는 가볍고도 웃기게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자 들이다.
이 책을 읽는 누구나가 한번쯤은 그랬겠지만, 이 책의 제목인 <하나코는 없다>를 보고 처음에는 일본작가의 단편 소설로 생각을 하고 이 책을 처음 접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하나코는 주인공과 친구들이 자신들의 편의대로 부르는, 장진자라는 예쁜 코를 소유한 여자일 뿐이었다. 전반적 책의 구성은 남성 우월적이고 권위적인 남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장진자 라는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과 나머지 친구들은 하나코에 대하여 오똑한 코가 예쁜, 조각과를 졸업한 여자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하나코가 자신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코에게 사적인 질문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코는 그 남자들에게 은밀한 비밀이나 고민을 들어주는, 흥을 돋우기 위한 여자일 뿐이다.
<하나코는 없다>는 1994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어느 정도 읽을 만한 것이 아니라 추천작으로, 필독으로 소개되어도 손색없는 글이라는 것이겠다. 책 표지부터 ‘대상 수상작’ 이라는 경력을 과시하며 책을 드는 순간부터 사람을 묘한 기대감에 젖어들게 한다. 그러나 읽고 나서 나는 고뇌에 빠졌다. <하나코는 없다>라는 이 단편 소설이 정녕 대상의 작품인 것인가에 대해서이다. 단순히 재미로만 평가하자면 이 소설은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의미에서 부족함을 느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소설자체에서 느껴지는 무게도 상당할뿐더러 추천평과 수상작 선정 이유서에서 질리도록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에서도 대단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나는 <하나코를 없다>를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사실 아무 생각도 없었다고 볼 수 있겠다. 처음 시작부분을 읽을 때부터 추상적인 느낌이 많이 들어간 것처럼 여겨졌고, 덕분에 소설을 읽는 내내 왜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되는지, 이 부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지 궁금증만 생겨갔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이름이 없네?’였다.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든 생각, 이 책 안에서 ‘그’의 이름이 나왔던가? 책에서는 마지막 부분에 하나코의 본명이 한번 언급된 것 말고는 그 누구의 이름도 나오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이름은 누군가를 지칭할 때 쓰이는 고유명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름 대신에 책은 ‘그’, K, J 등으로 사람을 지칭하였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그녀를 하나코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하였다. 아마 작가는 인간사회의 무미건조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많은 의미들이 담겨있는 것 같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어떠한 의미들이 담겨있고 글쓴이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고자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하나코가 일본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하나코는 이름이 아닌 동창들이 그녀를 지칭하는 별명이었다. 친한 친구들끼리 별명을 지어주고 별명으로 이름을 대신해 부르는 일은 의문을 가질만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나와 내 친구들도 별명이 있었고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는 것은 친근감의 표시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남자인 친구들이 장진자를 하나코라고 부르는 것은 친한 친구에 대한 애칭, 또는 친근감 표시라고는 볼 수 없다. 하나코가 그들의 모임에 계속해서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늘, 흔적 없이 그들 옆에 있다가는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