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무한히 증식하는 세계로의 초대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하재연의 세번째 시집 『우주적인 안녕』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두번째 시집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2012)을 출간한 이래 7년 만의 신작이자, “출판까지 할 때는 어떤 당위가 필요하다”라는 말로 새 시집에 대한...
8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던 내가 낯설었다. 명절에 찾아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흔한 안부 전화조차 한 적 없는 딸이 장례식장을 찾아와 오열하는 와중에도 나는 그저 멀뚱히 서 있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함께 살았던 할머니였다. 내가 기억이 없던 순간부터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었던 분이었다. 나 대신 분노해주고 기뻐해 주고 슬퍼 해준 분이었다. 그런 것들을 곰곰 생각하고 있자면 허전한 마음은 들었지만,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죽음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잔인할 정도로 단호하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천천히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할머니가 생각나는 순간은 허투루 보내지 않고 곱씹으며 추억했다. 나는 지난 8년간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할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삶과 죽음의 경계란 실로 모호하다. 살아있어도 오래전에 이미 죽은 것 같은 일상 속에서 오래전에 돌아가셨어도 여전히 살아계신 것 같은 할머니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