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황순원 문학의 지향성과 실험성이 대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작품들을 통하여 황순원 문학세계가 새롭게, 깊게, 그리고 넓게 이해되기를 바라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독자들에게 황순원 문학이 가지고 있는 재미와 현실인식과 정신적 자세를 이해하는 안내서가 된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인간적 절조와...
다음은 <늪>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문장이다. “검은 늪을 내려다보면서 태섭의 공상은 자기가 이번에 늪을 한 바퀴 다 돌기 전에 소녀가 몰래 숨어와서 자기의 눈을 가리우는 장난을 하고, 그러면 자기는 처음으로 소녀의 손을 잡고, 그러면 소녀는 할말은 다른 것이 아니고 원반이나 창을 던지고 난 순간처럼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같이 늪으로 뛰어들어보자고 할 것이고, 자기는 또 그러기를 허락하여 둘이는 그 원앙새가 쌍쌍이 뜬 무늬가 있는 치마로 허리를 묶고 늪에 뛰어들 것이고, 그렇게 하여 둘이는 늪 밑으로 가라앉느라면 늪 밑 어느 한구석에서 솟아나오는 차가운 샘물이 둘이의 등을 스치고 지나갈 것이고, 그러면 둘이는 퍼뜩 정신이 들어 늪 속을 헤어나오려고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고, 그때 갑자기 소녀는 짐되는 자기를 허리에서 풀어내려고 애쓰고 자기는 또 떨어지지 않으려고 소녀의 머리카을 꽉 감아쥘 것이고, 그러면 나중에 소녀는 자기를 허리에 단 채 헤엄쳐 늪 밖으로 나올 것이고, 거기서 자기는 소녀가 허리를 풀어놓는 대로 추워서 덜덜 떨 밖에 없고-사실 태섭은 떨고 있었다.” 이 문장은 길이가 굉장히 길다. 하지만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보면, 어느 한 군데 흐름이 끊기는 부분이 없이 잘 연결되어 있다. 호흡 또한 마치 시의 운율처럼 리듬감을 지니며, 문장의 호흡이 상승함과 동시에 소설에 긴장감을 준다. 황순원의 초기 작품인 <늪>은 특히 황순원 소설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뛰어난 문장력과 더불어 이 작품에서 드러난 황순원 소설의 특징은 어린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점이다. 황순원 소설에서 주인공은 대부분 소녀나 소년, 노인 같은 사회적 갈등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물이다. 또한 소설의 배경도 주로 도시보다는 시골인데, 이는 어른들의 각박한 마음이나 야박한 마음을 꾸밈없는 어린이들의 동심과 순수함을 나타내고 싶어 하는 황순원 작가의 마음이 반영되어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