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좋은 시 상 수상자인 최금진 시인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행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세계에 대해, 또 당연한 것에 대해 회의와 의심을 품음으로써 세계의 변화를 만든다. 현실을 비판하기도 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이 세상의 문제를 인식시키고 더 나아가 변화를 도모하기도 한다. 때문에 누군가는 시를 통해 위로 받고, 시를 통해 현실을 깨달으며, 시를 통해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 끊임없이 회의를 품어 무언가를 알리고 변화를 위해 애썼지만, 너무 많은 절망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말한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옛날사람들은 부조리한 사회를 노래나 희곡으로 풍자하며 풀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시인은 시를 통해 풀지 못하고 절망을 느끼며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할까?
‘죽은 사람을 나누어 가졌다.’-금시아
나는 죽음에 관하여 종종 생각한다. 이 시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쩐지 나를 위로해주는 기분이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