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선『라쇼몬』. 이 책에 수록된 총 열네 편의 작품들은 이지적이고 합리주의적인 단편 안에 인간의 심연과 예술에 대한 열망을... 헤이안 시대의 어두운 밤거리에 횡행하는 괴담(「라쇼몬」), 호화로운 귀족 저택 뒤편에서 벌어진 참극(「지옥변」) 등 일본 설화와 고전을 차용한...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35년을 살고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 후 생을 마감했다. 일본 근대 단편 소설을 본격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인간 심리의 미묘함, 모순, 추악함을 간파하고, 인간성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추한 에고이즘의 정체 최은영,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역사소설에 대한 연구, 2004.
를 날카롭게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쇼몬>이 발표된 초기에는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스승 나츠메 소세키가 <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한 이후 재조명되었다. 특히 어머니의 정신병으로 칩거하다가 생을 마감한 것을 경험하면서 마음속 깊게 염세주의와 허무주의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각기 다른 인물들의 진술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언뜻 보면 파편적이다. 독자는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에는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혼란에 빠진다. 범죄 소설을 읽듯이 추리하며 읽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 “무녀의 입을 빌린 혼백의 이야기”에 다다르게 되면, 독자는 그제서야 범인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덤불 속”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 안에는 목격자, 피해자, 가해자가 모두 존재한다. 그러나 덤불에 가려 팩트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덤불 속”이라는 공간은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진실의 세계가 아닐까? 여기서는 진실이 곧 사실이 된다. 덤불에 가려진 그곳에서는 믿을 수 있는 목격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제: 일하던 집에서 쫓겨난 하인은 을씨년스러운 라쇼몬으로 와서 굶어 죽을 것인가, 도둑질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러다가 죽지만 않는다면 도둑질하리라 다짐했다. 비가 오고 까마귀 우짖는 시체가 즐비한 라쇼몬에서 지새려고 하는데 위에서 불빛이 어른거렸다. 누각에 올라가 보니 시체 사이에 노파가 있다. 노파는 죽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뽑았고 그것으로 가발을 만들거라면서 자신이 못된 일을 하는 줄 알지만 이런 일도 안하면 굶어 죽으니 할 수 없이 한 거라며 어쩌면 죽은 여자도 눈을 감아줄 거라고 말했다. 하인은 노파의 옷을 벗기며 자기도 이렇게 안하면 굶어 죽을 것 같다며 기모노를 들고 도망친다. 사람은 굶어 죽지 않으려고 도둑질을 하는 슬픈 이야기다.
라쇼몬은 일본 역사 시대를 구분할 때 헤이안 시대는 794년 간무왕이 현재의 교툐로 천도할 때부터 1185년 가마쿠라 막부가 들어서기 전까지의 시기인데 헤이안 시대 수도 교툐의 성문이 라쇼몬이었다.
라쇼몽, 코 등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신경쇠약을 앓았던 어머니를 두어 자신에게도 유전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 늘 불안에 떨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 불안은 곧 그를 우울증에 빠뜨렸고, 자살로 죽기 전까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써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순수소설 톱니바퀴를 통해 작가의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였으며 언제라도 죽을 위험에 처해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세 개의 창을 보면 계속해서 자신의 죽음을 암시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인은 <라쇼몬>의 주인공이다. 주인집에서 쫓겨난 하인은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되어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노파를 발견하고 도둑이 될 결심을 하게 된다.
도쿄 대학 재학 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무명 작가 시절인 1915년 11월 잡지 《제국 문학 (帝国文学)》에 <라쇼몬>을 발표하였다. 연도에 대해서는 『신사조』에 첫 작품인 단편「노년 (老年)」을 발표했고, 다음 해에는 같은 시기에 구상한 《코》를 같은 잡지에 발표하였다. 1917년 5월에는 《코》《마죽(芋粥)》의 단편과 같이 제1단편집 『羅生門』이란 제목으로 출판, 1922년에 출판된 선집(選集)『沙羅の花』에도 수록되어 있다.
1.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생애
아쿠다가와 류노스케는 일본 소설가이다. 그는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다. 도쿄대학 재학 중인 1916년 제4차 『신사조(新思朝)』 창간호에 발표된 단편 「코(鼻)」가 스승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격찬을 받았고, 『라쇼몬(羅生門)』(1917)으로 문학계에 이름을 떨쳤다. 그의 문학 창작 방식으로는 동서의 문헌 자료 참조, 제재에 따라 다양한 양식을 구별을 통해 새로운 문체의 시도 등 신기교파의 작가로 알려졌다.
날카로운 신경과 강한 자의식 때문에 만년에는 시대의 동향에 부흥하지 못하고 허무적인 심정이 깊어진데다 건강도 악화되어 심한 신경 쇠약에 빠져 1927년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이라는 글을 남기고 자살한다. 1935년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아쿠타가와상이 제정되었다. 대표작으로는『코(鼻)』(1916),『라쇼몬(羅生門)』(1917),『지옥변(地獄變)』, 『갓파[河童]』, 『톱니바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