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러시아에 체호프, 프랑스에 모파상, 미국에 오 헨리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이태준이 있다. 이태준이야말로 우리나라 단편 문학의 완성자라 이를만하다. 이태준이 이룩한 예술적 성취는 단지 수려한 문장이 보여주는 기교나 서정적인 분위기라기보다는 그가 그려내는 선명한 인물상에서 비롯된다. 그는...
보통 고향을 떠올리면 정겹고 따뜻하고 그리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새로 정붙이고 사는 동네나 오래 살던 타향을 지칭할 때 제2의 고향이라고들 표현하기도 한다. 이 <꽃나무는 심어놓고>에서의 고향은 그리움과 휴식의 공간이자, 주인공 방 서방에게 고통스러웠던 공간이기도 하다. 방 서방에게 고향이 왜 그런 공간이 된 것인지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작품의 배경은 일제 강점기로 일제의 수탈로 인해 고통 받던 서민의 삶을 잘 보여준다.
방 서방의 고향은 본래 아주 평화로운 곳이었다. 방 서방은 비록 소작농이었지만 지주의 성품이 괜찮아 내 땅처럼 농사짓고 살았었다. 그런데 지주 김 진사의 아들 김 의관이 일본인에게 땅을 팔면서 고통을 겪게 된다. 이는 방 서방뿐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 모두가 농사를 짓는데 도리어 빚이 생겨 소를 팔고, 집을 파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이태준 소설이 서정적인 경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작가가 근대 권력의 작용점을 소외된 인물의 심리적인 억압으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인물이 환경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없거나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경우 이들은 세계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변두리적·주변적 인물(marginal man)이 된다. 변두리적·주변적 인물들을 서사 공간에서 환경과 대결하는 적극적인 행동적 인물이 아니라 정한, 애수, 설움과 같이 정서적·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수동적 인물로 등장한다. 이들에게 있어 세계와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는 주어지지 않고 이미 그들이 대결하고 있는 현실은 자아와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환경에 대한 패배는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읽으니 바로 앞 시간에 살펴본 달밤의 황수건과 밤길의 황서방 나아가 김유정 작품에 등장하는 바보들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