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제13회 이상문학상 선정이유서`에서 세련된 언어 감각으로 여성의 일상 생활과 그 내면의 풍경을 가장 섬세하게 묘파해 온 김채원, 소설의 형식을 통해 자기 탐구의 가능성을 가장 진지하게 추구해 온 김채원, 그가 1989년의 소설 문단에 새로운 충격으로 기억될 〈겨울의 幻〉으로 이상문학상의 열세 번째의...
줄거리
언젠가 당신은 제게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을 한번 써 보라고 말하셨습니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서술사는 마훈셋의 나이에 들어서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현재 생이 지니는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서술자는 과거에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고 이를 포용하게 된다. 이제 서술자는 자신에게 남은 것은 결핍된 것으로서가 아닌 베풀어야 할 것으로서의 사랑임을 깨닫는다.
1인칭 서술자 시점으로 글을 풀어나가는 ‘가혜’가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살아온 타인 중심적 삶은 딸은 어머니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가혜의 말에 한 부분도 틀린 것이 없이, 자존감이 낮고 타인-특히 남성-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깎는 모습이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드러났는데, 그림일기에 눈 위의 기와집, 꼬리를 흔드는 바둑이, 지팡이를 든 눈사람을 그렸지만,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먼 곳의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었다. 몸속에서 자신이 경험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동경하는 세계를 감당하지 못하고 멀리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 부분의 의미는 단지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는 투정 정도로 치부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혜가 어린 시절부터 ‘나’의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타자의 삶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온 증거이다. 남편과 시댁을 위해 살려고 노력했던 할머니와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든 생각일 수도 있고,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어릴 적부터 ‘인간’으로서의 가혜가 아닌 ‘여성’으로서, ‘객체’로서의 가혜로 살아왔다는 것은 확실하게 드러난다.
‘겨울의 환(幻)’이라는 제목에서 환(幻)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헛보이다, 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바라봤던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모든 것이 헛보였던 거일수도 있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과는 다르게 새롭게 변했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솔직히 맨 처음 읽었을 땐, 43살의 나이에야 어머니의 마음을 깨닫는다는 것에서 보면 살짝 어려보이는(?)생각도 하였는데, 이 같은 좋은 깨달음이나 늦은 나이에 진짜 사랑에 빠지는 것에서 바라보면 멋있는 여자라는 생각도 들었고, 중년 여성이 느끼는 여자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