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저 일이 하고 싶었던 한 남자의 조용한 비극
《딸에 대하여》의 저자 김혜진이 2년여 만에 펴낸 장편소설 『9번의 일』. 권고사직을 거부한 채 회사에 남아 계속해서 일을 해나가는 한 남자를 통해 일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혹은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그 둘 사이를 채운 어떤 보이지 않는 것에...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을 근무를 하고 있는 그는(이 책의 주인공) 부장에게 권고사직을 권유받 고 있었으며, 동료들로부터도 연장자가 알아서 퇴직해주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권유와 바람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몇 달 전에 오래된 다세대 건물 을 구입했고,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으며, 아내 해선이는 마트에서 2교대로 힘든 일을 하 고 있기 때문이다.
Ⅰ. 들어가며
소설 ‘9번의 일' 속에 나타난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아버지 모습이 불쑥 떠오른다. 남자들은 10대를 제외한 평생토록 스트레스 지수와 우울증 정도가 높다.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하여 자살율도 월등히 많다는 것은 전 세계적이며, 특히 한국에서 남성의 자살은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소설은 아버지들, 정리해고, 구조조정, 무능력, 저성과자, 실직, 0.5, 명예퇴직, 강제전보, 자본주의 사회, 신자유주의 등을 키워드로 진행된다. 자본주의의 실체와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들에 대해서 더 깊이 알고,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설 ’9번의 일‘ 속으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Ⅱ. 소설 ‘9번의 일’ 속으로
소설 속 ‘그’가 다니는 회사는 ‘그’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하고 조직에 쓸모없는 사람인지 깨닫도록 시험판 속으로 '그'를 몰아세운다. 자신의 무능함과 무력함을 처절하게 느끼도록 극한 상황으로 그를 몰아넣는 것이다.
새 건물이 들어서며 기존의 낡은 건물은 뜯겨지거나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이런 과정 속에 오래된 것들은 없어지고 새로운 것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사람의 인생도 동일한 수순을 거친다.
젊고 활기찬 신입으로 시작해 한해 두해 경력이 쌓인다. 회사에 필요한 갖춰진 인재로 그 안에 서서히 녹아든다. 회사의 이익과 개인의 발전이라는 인생의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자신이 탄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돌리는 것이다.
밟고 있는 페달에는 더 탄력이 붙고 멈추기 어려울정도로 계속 달리다 보면 어느새 누군가를 앞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로 인한 성취감과 희열감이 더욱더 그를 내달리게 한다.
반면에 누군가의 추월을 받은 또 다른 이는 밟아도 나아가지 않는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게 된다. 과거에는 나도 저렇게 달렸었으니 지금도 충분히 가능할거라는 한 가닥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의 위치가 극명해지고, 나보다 젊고 능력 있는 이들이 많다는 현실적인 상황 앞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달려왔던 길을 한순간에 멈출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중간 중간마다 내 머리 속에 되새이는 질문이다. 나 역시 한 직업을 20년 넘게 지내온 나로서 더욱이 이 책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같은 직장 26년간 다녀온 그에게는 장인의 존경심보다 다른 새로운 신입들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퇴물취급을 받는 현 상황과 똑같은 일들을 겪게 되는 내용 에서는 너무나 속상하고 왜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사회구조에 너무나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경력을 인정받고 그에 대해 당연히 대우받아야 하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나 역시 오랜 일 한 년륜과 경험보다는 보다 효율적인고 경제적인 원리에 의해 값싼 새 인력을 보충하여 다시 기존의 인력를 무시하는 풍토로 가는 지금에서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에게는 명예퇴직의 기회를 저버린 대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현장근무의 업무나 판촉업무등으로 떠밀려 수개월 지내는가 하면 심지어 그에게는 그 일은 이제는 꼭 다녀야 할 의무감보다는......<중 략>
노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물론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성장과 성취감을 위해 필수적으로 영위해야 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과 같이 100세 시대가 된 지금, 정년을 앞둔 많은 노년세대들의 걱정은 더욱 커질 것이다. 기술과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들이 가진 경험과 능력들은 사회에 필요 없는 것으로 치부될 것이고 아직 먹고 살 일이 한참 남았기에 그들은 어떤 일이라도 뛰어들어 기꺼이 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회사를 그만두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자신의 모습이 아닐 거라 믿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나는 일이라는 것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의 차원을 넘어서 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각자 삶의 현장에 뛰어 들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일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일을 옮겨 다니면서도 꿋꿋이 일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한 가장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