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29년 노벨상을 수상한 독일작가의 단편집. 경건한 시민적 세계와 관능적 세계를 반어적으로 그린 소설들로 순진무구한 젊은이의 사랑을 그린 <타락>, 질병과 인간사이의 상관관계를 그린 예술가소설 <행복에의 의지>,<토니오 크뢰거>,<어릿광대> 등 8편의 단편수록.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의 "트리스탄"은 예술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대한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예술가의 삶과 그의 사랑,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미술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독후감에서는 "트리스탄"의 주요 내용과 주제, 그리고 작품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에 대해 상세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트리스탄"의 중심 주제는 예술가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입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토마스 만의 대표작 중 하나로, 중년의 작가 구스타프 아슬렌바흐의 내면적 변화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베니스라는 아름다운 도시의 배경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아슬렌바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욕망,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을 탐구합니다.
구스타프 아슬렌바흐는 중년에 이르러 작가로서의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의 내면은 공허함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제: 작가인 슈피넬은 옳고 그른 것을 안다. 하지만 당당한 사람 앞에서 비겁하게 숨는다. 변호는 어렵고 패배가 쉽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 시민과 예술가, 정신과 삶, 이원적이다. 대립도 하고 합일도 하지만 조화를 찾지 못한다.)
트리스탄은 성배에 대한 이야기나 아서왕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중세 유럽의 서사 문학 중 가공된 이야기 소재 중의 하나다.
프랑스, 독일, 다양한 문학 장르의 수많은 시인, 작가들이 극적인 소재로 문학적 능력을 실현한다.
아인프리트 요양원, 레안더 박사가 요양원을 이끌어 가고, 오스틸로 양은 요양원 살림을 꾸려간다.
그녀는 레안더 박사의 부인이 되고야 말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요양원에는 온갖 병을 지닌 유명인들이 많았다. 갖가지 요법들이 현대 의학의 모든 성과를 갖춘 다양한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어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요양원이다.
주제: 마술사는 관객들을 장악하는 교묘한 술수를 부려서 홀리게 하지만 마리오는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았다.
부제는 어느 비극적인 여행 체험기다.
독일의 한 가정이 아탈리아 토레 디 베레네 휴양지에 가서 겪은 이야기다.
대형 호텔에 투숙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류 손님이 된듯한 느낌이다.
3,4주 동안이나 투숙한다. 베란다에서 식사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만도 한데 종업원이 그렇게 해 주지 않았고 식사도 평범했다.
모 왕실 가문이라는 로마의 고위 왕족이 가까운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중에 애 엄마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백일해 기침의 뒤끝 증세를 보이자 질겁을 했다.
주제: 눈을 감고 바다 물결 소리를 듣는다. 질서와 형상을 부여 받고 싶어 안달하는 세계가 보인다.
토니오의 살아온 삶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키가 큰 학생들은 점잖을 빼는 태도로 책가방을 왼쪽 어깨 위에 높다랗게 올려놓은 채, 오른팔은 마치 바람에 거슬러 노를 젓듯이 흔들고, 키가 작은 축들은 명랑하게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는데 물개 가죽 가방 안에 든 온갖 학용품들이 달그락 거렸다.
토니오 크뢰거, 크뢰거 영사의 아들이다. 조상대대로 유서 깊은 저택에서 살고 있다.
토니오는 한스를 기다리다가 마주 쳤고 둘은 둑 위를 걸어간다.
토니오는 한스를 사랑하고 사랑을 많이 해서 패배자이고 괴로워 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작품을 매개로 ‘작가’와 ‘주인공’의 관계에 있는 토마스 만과 아셴바하는 출생에서부터 유사성을 보인다. 토마스 만과 아셴바하 모두 양친의 상반된 혈통을 물려받았고, 그로 인해 이질적인 성향을 동시에 지닌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명망 있는 성공한 작가. 단 한 번도 빈둥대거나 방종하게 시간을 보낸 적이 없는, 자기 통제와 규율의 대가. 그것이 바로 초반의 구스타프 ‘폰’ 아셴바하에 대한 묘사이다. 그의 엄격성과 자기규율은 다음과 같은 묘사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러분. 아셴바하는 예전부터 이렇게만 살아온 겁니다」─ 그러면서 그 남자는 왼손의 다섯 손가락을 오므려 주먹을 단단히 쥐어 보였다. ─「단 한 번도 이렇게 지낸 적이 없습니다」─ 그러고는 왼손을 펴서 안락의자 등받이로부터 편안하게 늘어뜨려 보였다.
그는 쉰이 되어도 젊었을 적의 규율 잡힌 습관을 유지한다. 나태해지거나 일을 미루는 것 없이 ‘찬물을 가슴과 등에 끼얹고’ 정해진 일과에 맞춰 하루를 시작했으며, 끈질긴 근성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작품 속에 묘사된 바와 같이, 아셴바하는 천부적인 창의성을 지녔다거나 특출난 천재성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그가 시민사회에서 인정받고 품위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끈질긴 근성의 산물 덕분이었다. 이는 아셴바하가 부계에서 물려받은 강한 의지를 대변하는 것으로서, 그의 예술이 프로이센적 정신의 산물임을 드러낸다.
‘트리스탄’은 기본적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오페라의 내용과 구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해 나간다. 토니오 크뢰거처럼 주인공 이름인가 싶었던 트리스탄이라는 제목은 슈피넬을 상징하는 트리스탄이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을 이미 알고 있어서 소설을 읽으면서 상징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원래 있던 전설에서의 남녀사이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외하더라도 흥미있는 구도였다. 슈피넬과 가브리엘레의 예술적 감정의 교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밀회장면을 연상케 하는데, 가브리엘레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피아노 연주장면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곡을 씀으로써 이러한 상징성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는 동시에 서로 융합되어왔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예술을 탄생시키는 등 인간 사회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요즘 인간에게 디오니소스적 욕망은 분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통제하고 절제해야하는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자신의 열정과 광기를 남의 눈치나 현실의 벽 때문에 아폴로적 인간으로 통제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의 아폴로적인 것의 지나친 우위는 두 힘들의 상호보완 관계를 파괴하고 인간을 형이상학적 환상 속에 가두어 버렸다. 두 대립되는 가치들은 갈등적 관계를 벗어났으나 동시에 인간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가치 창출의 과정으로부터도 벗어나버렸다. 즉 현대인의 삶에 디오니소스적 생동감이 허락되지 않으면서 인간의 존재를 이끄는 힘이 은폐되고 소멸된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두 힘의 균형이 깨져버린 현대인들에게 디오니소스적인 것들이 허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아폴로 적이었던 사람들이 대안 없이 무조건적으로 디오니소스적인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것의 힘에 압도되어 두 힘의 균형이 깨져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인물의 전형으로서 에우리피데스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에우리피데스는 ‘아폴로적인 것’만을 추구하며 삶의 전반에 걸쳐 줄곧 디오니소스에 저항했지만 결국 강렬한 디오니소스에게 매혹되고 그를 찬미하며 자살하고 만다. 김희보,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가람기획, 2002) p37.
뿐만 아니라 토마스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의 주인공 아센바흐도 비슷한 경향을 나타낸다. 명성 높은 작가로 아폴로적인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베네치아에서 미소년 타치오를 직면하는 순간 그의 삶은 디오니소스적 욕망으로 가득 차게 되고 그는 파멸로 향하게 된다. 필연적인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노출에 대비하여 어떻게 하면 현대인들이 두 힘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