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폐로 기울어지며 입 속에서 자라나던 가시 같은 언어들을 한바탕 회오리바람 덕분에 세상에 내어놓게 되었다는 이동백 시인은 월간 [현대시]로 문단에 등단(1996년)하였다. 시 52편이 수록된 시집 <수평선에 입맞추다>는 언어의 섬세한 세공으로 빛이 난다. 순화된 언어, 혹은 곱게 갈아진 언어의 표면, 등을...
맑다’ 와 ‘탁하다’ 에 대한 생각해 본다. 세상의 온갖 것은 ‘맑거나’ 혹은 ‘탁하다’. 이 계절의 구름 한점 없이 ‘맑은’ 가을 하늘, 오랜 빚어짐의 시간을 거쳐 세상에 나온 한 잔의 ‘맑은’ 술, 전쟁터의 군인들 사이를 철없이 뛰어다니는 어느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 무지한 인간들의 만들어낸 죽음의 호수 ‘시화호(始華湖)’ 의 ‘탁한’ 물빛, 막 걸러 낸 곡주(穀酒)의 ‘탁한’ 목 넘김과 다음날 아침 감당하기 힘든 숙취의 ‘탁한’ 정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수십 명을 살해한 어느 연쇄살인마의 ‘혼탁한’ 눈빛. 이렇게 이 세상은 ‘맑음’과 ‘탁함’이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