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회학자 김찬호, 모멸 권하는 한국 사회를 해부하다!『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은 ‘모멸감’을 키워드 삼아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조명하면서 한국인의 삶과 마음의 문법을 추적한 책이다. 모멸감은 ‘모멸스러운 느낌’을 의미하는데, 이때 ‘모멸’은 ‘업신여기고 얕잡아봄’으로...
사전을 찾아보면 ‘모멸’은 ‘업신여기고 얕잡아 봄’이라는 명사이고, ‘모멸감’은 그런 ‘모멸스러운 느낌’이라고 한다. 책 <모멸감>은 한국사회에 퍼져 있는 모멸감을 다뤘다. 사람에겐 다채로운 감정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모멸감은 분노의 또 다른 표출 형태다.
성격이 급한 한국 사람들은 쉽게 분노하는데, 여기에는 작은 일에도 자존심 상하고 모멸감을 느끼는 태도가 한 몫하고 있다고 하겠다.
최근 들어 급격히 늘고 있는 ‘묻지마 폭력’은 작은 일에 화를 내는 모습에서 비롯된 것인데, 여기에는 줄어든 자존감, 쉽게 느끼는 모멸감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모멸감’이라는 감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감정이 분노로 이어지고, 분노가 폭발하면 큰 사회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한국사람들의 마음이 메마르고 거칠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한국 사람과 한국 사회에 대한 안팎의 평가는 ‘화끈함’이었다.
김찬호의 <모멸감>을 이제야 읽었다. 한국사회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어둡게 덧칠된 내 마음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나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다수 한국인들은 타인의 욕망을 스스로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내면의 풍요로움보다, 학력, 사회적 지위, 외모, 경제력 등을 기준삼아 자신과 타인의 위치를 가늠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타인을 모욕하고,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을 깎아내릴까.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의 존엄을 일으키고 더 나은 삶을 가꾸어나갈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사회문화적 담론으로써 개인이 느끼는 모멸감을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로 지목하고, 구조적, 문화적, 개인적 차원에서 모멸감을 뛰어넘어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삶을 모색한다.
주차장 아르바이트생에게 무릎을 꿇게 하고 사과를 받아내는 중년 여성의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이른바 갑질이라는 ‘갑의 횡포’라는 이미지가 꽤 선명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도 한때 아르바이트생이었기에 알 수 있듯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손님은 왕이며 갑이다. 또 강남의 아파트에선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에게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빵을 주고 모욕을 하거나 욕설을 하여 그 경비원이 자살에 이르게 한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재벌가의 사회면 기사도 자주 볼 수 있다. 예컨대 국내 여객기에서 기내식에 불만을 품고 여성 승무원을 폭행한 대기업 임원, 일명 땅콩 회항이라고 하여,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욕설을 하는 것도 모자라 비행기의 항로 변경을 무리하게 요구한 재벌가를 비롯하여 차량의 이동을 부탁한 호텔 지배인에게 폭행을 서슴지 않았던 제빵업체 대표, 탑승 예정시간보다 늦게 도착해 놓고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며 항공사 직원을 폭행한 대기업 회장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신문 사회면의 기사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모멸감 처음엔 모멸감이란 단어가 확 다가오지 않았다. 뭔가 허공에 맴도는 말이었다.
모멸감이란 감정은 어디에서 자주 보았을까 생각해 보니 직장과 아르바이트 등 돈을 벌 때 자주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돈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모멸감을 겪으면서 돈을 버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좋은 직장 좋은 차 등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모멸감이라는 감정은 내가 평소 생활할 때도 자주 보고 경험할 수 있었던 단어였다.
우리나라 과거에는 신분사회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양반의 자식 또는 노비의 자식으로 능력과 상관없이 신분이 정해져서 태어났다. 특정가문이 아니면 끼어들 수 없는 시대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혼란기를 거치면서 돈이 많은 사람이 판을 펼치기 시작했고, 그 이후 자본주의 체제에 민첩하게 적응하여 사회적 인물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신분 구분은 희미해져 갔다. 자본주의로 평등한 세상이 찾아오게 되었다.
이 책에서 감정은 ‘개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관련된 것이면서, 집합적으로 구성되는 정교한 프로그램’으로 사회의 실체를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단서 즉, 일상의 감정의 덩어리를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통해 당연시했던 감정이 일정한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마음의 습관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정서를 비판적인 눈으로 평가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그 작업을 통해 인간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하는지를 구상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책에서는 그 다양한 감정 중에서도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인 ‘모멸감’을 중심으로 다뤄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조명하면서 삶과 마음의 문법을 추적한다. 사회를 넓은 시선에서 비판할 줄 알고 그 속에서 나다운 삶을 사는 것에 관심이 많은 독자로서, 이 책이 우리사회의 감정의 실체와 그 해결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저자인 김찬호 교수는 사회학을 전공한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이다.
저자 김찬호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로 사회학을 전공하신 분이다.
김찬호는 마음과 감정의 문제를 인문학적인 방법으로 다루는 작가이다.
‘모멸감’, ‘돈의 인문학’, ‘생애의 발견’ 등을 쓰셨고, 거리의 인문학자라고 표현할 만큼 그의 생각을 정리한 최근의 작품들은 많은 공감과 호응을 얻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인문학적으로 다루는 작가인 만큼 모멸감에 대해서 ‘나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움’이라고 책표지 뒤에 표현해 놓았다. 사전에서는 명사로 ‘모멸스러운 느낌’, ‘모멸’은 업신여기고 얕잡아 본다는 단어라고 쓰여 있다.
사실 ‘모멸감’이라는 단어는 나의 일상생활에서나 주변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다. 위에 뜻처럼 그러한 느낌이 모멸감이라면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이다. 나도 살면서 수많은 경험 중 특히 아르바이트를 할 때 짧은 시간 안에 정말 많은 모멸감을 느낄 수 있었다.
헬조선, 금수저, N포 세대, 김치녀, 한남충. 이 단어들은 모두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신조어이다. 언어는 사회의 모습을 투영한다. 신조어의 스펙트럼은 종으로 횡으로 무분별하게 나타나며, 이러한 광범위화는 한국사회에 모멸감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분포되어있는지를 보여준다.
김찬호의『모멸감』은 바로 이‘모멸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멸감은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게 되는 괴로운 감정이다. 저자는 모멸감에 대응하는 방안을 구조적인 차원과 문화적인 차원, 그리고 개인의 내면적인 차원에서 바라본다.
이 중 내면적인 힘을 기르는 방법은 스스로 자존감을 세우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배제하고, 모멸과 모욕에 의연하게 대처하며, 스스로가 감정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또 타인과의 비교를 거부함으로써 행복감이 우월감이라고 생각하는 세태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 있는 삶을 영위할 때 비로소 존엄해진다.
저자는 왜 구조적인 방안과 함께 이러한 추상적인 방안을 제시 한 것일까? 장 지글러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 가』의 서문에서 기아문제 해결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수치심은 동물도 느낀다. 침팬지 무리에서도 그들 나름의 '체면'작용
'부끄럽다는 감정은 인간에게서 가장 두드러진다'
<모멸감>이라는 책의 제목을 먼저 접했을 때, 이전에 읽었던 <미움 받을 용기> 책과 비슷한 느낌을 받은 건 왜 일까?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이 부제목으로 붙은 책 <모멸감>은 내 인간관계와 나의 행동과 말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흔히 인간과 동물이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라고 하면 '생각'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이 책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중에 하나로 '부끄러운 감정'을 말한다. 수치심은 동물도 느끼지만 부끄러움은 인간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책에서 침팬지를 예시로 들면서 침팬지도 그들 사회 안에서 체면을 중시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를 읽고 꽤 놀랬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부끄러움도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침팬지도 느낀다는 것에 놀라웠고 그들 사회에 체면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에 한번 더 놀랐다.
사회문제는 어느 하나의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영역 등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문제가 다발적으로 나타난 것이 사회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예컨대 한국인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단순히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그 배분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탓이고, 문화적으로도 개인의 자아 실현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 버린 탓이기도 하며, 급속한 발전과 달리 가족 등 사회 구성원들은 개인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중 략>
아르바이트생에게 손님은 갑이다. 최근에는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주거나 모욕하거나 욕설을 하여 그 경비원이 자살을 한 슬픈 소식도 들려온다.
재벌가의 사회면 기사도 자주 나온다. 예컨대 국내 여객기에서 기내식에 불만을 품고 여성승무원을 폭행한 대기업 임원, 최근 땅콩 회항이라고 하여, 사무장과 승무원에 폭언을 하는 것도 모자라 비행기의 항로 변경을 지시한 재벌가를 비롯하여, 차량의 이동을 요구한 호텔 지배인에게 폭행을 가한 제빵업체 대표, 탑승 예정시간 보다 늦게 도착하고도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는 이유로 항공사 직원을 폭행한 대기업 회장, 자신의 아들을 폭행했다는 이유로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생매장을 시도한 대기업 총수......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신문 사회면의 기삿거리는 풍부하다.
<중 략>
책의 전반부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타인을 향한 적의와 분노의 정체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는 시대의 모습이기도 하고, 문화적 영역에 해당하는 공동체 사회의 문제이기도 한데, 작가는 각 시대의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이러한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먼저, 모멸이 담고 있는 의미는 “타인을 업신여기거나 낮춰보면서. 모욕과 경멸을 주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타인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지적받는 것에 대하여 수치심을 느낀다. 모멸에 대해 작가는 “인간의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라고도 설명하면서, 자살의 느낌과 심리적인 수준이 비슷하다고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