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살아가는 개개인의 고유한 이야기가 법과 제도의 문에 들어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나아가 모든 존재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특징과 경험과 선호와 고통을 가진 사람인지를 드러낼 무대가 주어진다면, 소수자들 스스로가 ‘인간 실격’이라는 낙인에 맞서 자신을 변론할 수 있으리란 전망을 제시한다.
이 책을 접한 곳은 이 과제가 아닌 고등학생 때였다. 국어 시간에 독서 활동을 하고 감상문을 쓰는 과제가 있었고 이 책은 지정도서였다. 그 당시에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었다. 저자인 김원영 변호사님은 서울대를 나와 변호사를 하고 계신 분이다. 소위 언론에서 말하듯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하신 분인 것이다. 이 책에 좋은 점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작가님의 이야기 속에는 ‘장애를 극복하고 이뤄낸 감동실화’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다리가 불편해 같이 뛰어놀지 못하고 병원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나에게 다가오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내가 먼저 다가가기 전에 친해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학교에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리고 제약이 많은 환경 속에서 아이들과 친해지려 노력했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쓴 저자는 변호사이자 장애인이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은 다양한 측면에서 장애인들의 삶에 대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저자는 자신을 노련한 장애인이라고 한다. 그는 1.8초에 한 번씩 휠체어 바퀴를 밀 수 있으며 경사진 곳을 갈 때에도, 혹은 넘어질 뻔 했을 때도 신체적 한계를 침착하게 대응하며 능청스럽게 넘어간다. 또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할 때에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할지라도 유쾌하게 덮으며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를 분리하여 진짜의 내가 상처를 받지 않게 한다. 이렇게 장애인들은 연기자로서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연기자가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은 타인의 퍼포먼스에 강제로 동원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어떤 일본 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지만, 도전적이고 잘 헤쳐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그분의 모습을 보며 나는 반성을 하였고 삶의 동기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통해 장애에 대한 인식과 복지 같은 것들이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다큐멘터리에서 일본 분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을 좋지 않은 것으로만 이해로 다가가는 것은 장애인의 신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인간 존재성의 의미와 사회적인 맥락을 봉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분이 장애라는 규정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장애인은 나와 많은 연관성이 없다고 느꼈고 나의 삶과의 교집합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 책의 저자는 장애라는 것을 정복하는 것으로 서술하거나 극적인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저자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며 시작했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구현되는가? 나 자신의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기 위한 삶 태도
디보티즘
실격당한 자들. 이들은 누구인가?
첫 장을 들어가며, 목차 이전의 작가의 말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잘못된 삶’ 소송. 장애를 가진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으로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의 한 유형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원고로 서고, 부모가 그 대리인을 선다.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는 잘못 태어난 아이이고, 부모 또한 그것을 직간접적으로 긍정하며 ‘손해’를 배상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들어가며 잘못된 삶과 좋은 만남
8-9쪽. 잘못된 삶 wrongful life 소송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으로 산부인과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의 한 유형이다. 대개 중증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이 소송의 원고가 된다. 물론 어린아이가 직접 소송을 하는 것은 아니고, 부모가 아이를 대리하여 소를 제기한다. 즉 산부인과 의사의 실수로 장애아가 태어나 아이 자신에게 (부모에게) 손해가 발생했으니 그것을 배상하라고 청구하는 것이다.
9. 장애아의 출생은 엄청난 의료비 부담, 주위의 낙인(과거에는 장애아의 출산이 여성의 도덕성 문제나 실수, 잘못의 결과로 여겨지기도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돌봄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기를 계획하고 그 결과를 통해 자신의 꿈과 인생을 재시작한다는 생각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 큰 손해는 없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현실을 돌아보면 부모가 된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며 부당한 생각이라 비판하기도 어렵다.
9.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에서 자식은 부모의 기획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 긴 시간 수많은 관계와 사건을 통과하며 부모와 만나는 독립된 존재다. 현대 사회에서는 유전공학 기술의 발달로 일정 수준의 유전적 기획이 가능해졌다 해도 자녀는 수정란에서 태아 단계를 거쳐 세상에 나와 점차 하나의 고유한 인격을 형성하며 부모 앞에 ‘나타난다’. 출산과 동시에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점차 한 사람의 개인으로 성장하고, 확장되고, 여러 가지 경험을 축적하고 체화하면서 하나의 인격체로서 부모를 만나는 것이다. 부모 또한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 변화한다. 성숙을 수도 퇴보일 수도 있지만, 부모 역시 서서히 자녀와 ‘만나가는’ 것임은 틀림없다.
10. 특정한 집단을 위한 주택이나 시설이 건립될 때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가,
1. 들어가며
변호사이자 작가인 김원영의 책이다. 김원영은 골형성부전증이란 장애를 가졌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체성과 장애의 문제를 사회적 관점에서 다룬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책의 본론의 한 장에서도 다루고 있는 ‘잘못된 삶’ 개념으로 대표될 수 있다.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잘못된 삶’ 소송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자신의 장애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자신을 태어나게 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제기한 소송을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바 있으며, 한국에서도 사례가 존재한다. 삶을 손해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상상하는 슬프고도 참혹한 현실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과연 잘못된 삶은 있는가?
<중 략>
2. 타자화된 삶을 넘어
이 책은 장애인을 향한 인식의 현주소를 스케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신문지면이나 SNS 상에서 본 일들도 있다. 2013년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미팅을 하던 중, 특수교육과 여학생들에게 상대 남학생들이 ‘JM을 해보라’고 요구한다. JM 이란 자기소개를 뜻하는 ‘FM'을 ‘장애’의 ‘ㅈ’(J)으로 변형한 것이다. 특수교육학과 학생들을 모욕하고 조롱하기 위해 장애인 비하의 장난을 친 것이다.
<중 략>
3. ‘잘못된 삶’은 있는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앞부분 1장~3장에 걸쳐 장애를 둘러싸고 표면적으로 일어나는 차별 현상을 사회적 상호작용, 공연과 연극의 관점에서 분석했다면 4장과 5장은 장애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과 마음에 관한 보다 심층적이고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장들에 나오는 장애에 관한 법적 사례들을, 작가는 자신의 전공인 법 관련 전문지식, 인권위원회 활동의 경험을 통해 해석한다. 하지만 각 사건들의 단순한 법적 공방을 넘어, 그것을 둘러싼 사회학적, 철학적, 윤리학적 함의까지 심도 있게 다룬다.
잘못된 삶이 더 이상 잘못된 삶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고 말하는 책이다. 여기서 ‘잘못된 삶’이란 착하지 않거나 나쁜 짓을 저지른 삶이 아니라 존중받지 못하는 삶,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격당한 삶이다. 아무리 착하고 성실해도 가난하거나, 교육받지 못했거나, 장애나 질병이 심하거나, 다수가 혐오하는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잘못된 삶’이 되기 싶다. 이 말들이 피상적이지 않고 섬세한데다 무게까지 있는 것은 저자 자신이 분투하는 삶의 모습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수업시간 「 오체 불만족 」의 작가 오토다케 히로타다와 닉 부이치치에 대한 다큐를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난다 .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도전적이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반성하고 삶의 동기부여를 얻었었다 . 그러나 이를 통해 장애에 대 해 좀 더 이해하거나 인식의 변화를 느낀 것 같지는 않았다 . 저자는 닉 부이치치가 위대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 장애인의 삶을 이런 의미에서만 ‘미적으로 ’ 이해하는 접근은 장애인 의 신체가 가진 다른 실존적 의미와 사회적 맥락을 차단해버릴 수 있다 고 말한다 . 나는 작가의 말처럼 그들의 이야기에서 장애라는 ‘제약 ’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일종의 숭고미를 느꼈다 . 하지만 장애인은 나와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고 , 내 삶과 의 연관성을 느끼지 못했다.
노련함의 딜레마
2017년 가을, 서울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지역 주민과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 학생의 부모, 서울시 교육청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특수학교 부지에 한방병원을 세우겠다고 공약한 국회의원 김성태 씨는 차분하게 특수학교 설립이 중차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인사말만 남기고 토론회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리를 떴다. 토론회의 분위기는 점차 가열되었고 주민들 간에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보다 못한 한 장애아의 부모가 무릎을 꿇었다.
<중 략>
나의 의견
서울 강서지역에 특수학교를 설립한다고 하자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여 일어났다. 당시 동아일보에는 주민들이 특수학교의 설립을 혐오시설이라며 반대하고 막자 장애아의 부모님들이 모욕과 비난을 감수하며 주민들을 향해 무릎을 꿇는 일이 발생하여 기사에 났었다.
그들은 특수학교를 일종의 혐오시설로 규정하며 설립을 반대했고 의견이 일치되지 못하자 결국은 토론회가 열렸다. 의견을 조정하고 합의를 보기 위해 마련된 토론회가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하자 욕설과 고성이 오가는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고 마침내는 장애아 부모님들은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실격당한 자들? 실격은 누가 당하는데? 그리고, 누가 실격시키는데?’ 이 책을 접하기 전에 했던 생각들이다. 저자는 장애, 질병, 부족한 외모나 다수와는 다른 특성 등의 이유로 몇몇 사람들이 세상의 법정에서 실격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실제로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인간은 열등하거나, 우등한 사람으로 나뉘어지고, 무시받거나, 존경받는다. 혹자는 ‘멋있고 아름다운 사람이 환영받는 것은 당연한 세상의 이치니, 남들한테 자신을 예쁘게 봐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남들의 시선을 내 입맛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들의 시선이 잘못되었다면 올바르게 바꾸어 줄 노력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저자 김원영의 변론을 그러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