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적이고 복음주의적 기독교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초기 한국 교회사 속에서 초기 한국 장로교회는 그 형성기에 교회를 주도한 선교사들의 신학위에 정초되었다. 미국 장로교회의 해외 선교부 총재이며 철저히 보수주의적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던 브라운과 마포삼열은 이러한 한국 신학을 적나라하게 평가하고 있다. 한국의 초창기 교회는 보수적인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지도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철저히 보수주의 적이었는데 이들은 한국 장로교회에 복음주의적 사고방식, 보수주의적 사고방식을 배양 시켰고 성경을 모든 교인의 행동 규범으로 강조하는 성경중심의 네비우스 방법을 채택한 것은 앞의 사실을 증명해 준다. 또한1907년 최초로 노회가 조직되고 한국교회의 신조로 철저한 칼빈주의적 경향을 지닌 신앙고백이 채택되었는데 이는 더욱 연구를 필요로 하게하는 발판이 되어 평양의 신학교가 장로교 신학교로 인준되는 배경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신학교의 신학이 성경을 강조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마포삼열 박사, 곽안련 박사, 이눌서 박사의 영향이 컸다. 보수적 성향을 지녔던 마포삼열 박사의 상담력과 지도력과 더불어 곽안련 박사의 저술(한국어로 50권, 영어로 6권)들은 한국 신학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다. 또한 박사의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안수 받은 1892년 미국 장로교 한국 선교부를 설립, 후에도 선교사로 성경 번역가로 신학 교수로 일했는데 보수주의가 유행하던 당시 그는 평양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재임하며 완전히 말씀으로 가르치며 기독교의 기본적 사실과 진리를 가르치기를 힘썼다.
초기 한국의 신학의 보수주의는 한국 선교 사역이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기여하였다. 그러나 미국 연합 장로교 에큐메니칼 선교와 국제 관계 위원회 실행 위원장인 스미스는 자유주의든 보수주의든 한 가지 사상만을 강조하는 것을 현재의 교회 분열의 원인이라고 보았으나 그것은 새로운 서구 사상을 소개시켜 주려고 의도되어 전해진 것일 뿐이다. 현대 사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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