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 그는 역사가인가, 이야기꾼인가? 미지의 땅에 대한 경이로움과 흥미진진한 동서 문명의 첫 대결을 기록하다! 헤로도토스의『역사』. 기원전 5세기에 집필된 인류 최초의 역사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원전 그대로 번역한 책. 특히 이 책은, 40여 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인터넷을 찾아보니 고전 추천 도서라길래 한 번 빌려 읽어보았다. 헤로도토스는 무려 기원전에 산 사람이었다. 읽어보니 서양의 ‘사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만 신화적이랄지 진짜 역사가 맞는지 의심되는 듯한(물론 내가 문외한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는 있다) 구절도 많았다.
저자가 역사라는 표현을 썼으나 사실적 역사와는 좀 다른 것 같았다. 성경처럼 막장스러운 내용이 참으로 많았다. 아스티아게스라는 사람이 딸을 시집보내고 자식을 낳으니 죽이려고 한다던지 사생아도 나오고 이 때야말로 뭐 법도 질서도 없는 시대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중학교 역사 수업시간에 얼핏 들은 책이지만, 그 책을 읽어볼 마음도 없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추천 도서로 이 책을 접하는 순간에도 어색함이 남아있었다. 네이버에서 도서에 대한 큰 가닥을 잡고 나서야 각 권에 있는 내용들이 조금 다가올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차츰차츰 내가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 현장에 서 있는 착각에 빠졌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도무지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과 지명들의 끝없는 나열, 본문만큼 어려운 주석, 교과서의 10줄을 책 1권으로 풀어놓은 것 같은 스토리 전개, 옆길로 빠지는 산만한 이야기 전개 등이 어려움을 주었지만,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면서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그 흥미로움이 앞부분을 다시 읽게 만들었다.
2017년 같은 학과 선배님의 추천으로 영화 300을 보게 되었다. 서양사에 대한 기초조차 없던 시절이었지만 스파르타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꼭 한번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자세하게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가 내 지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되어 이번 서평의 주제로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선택한 것은 헤로도토스가 지필하고 김봉철 선생님께서 옮긴 역사(Historiai)로 2016년 도서출판‘길’에서 출판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익숙하지 않은 지명(地名)과 인명(人名)이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어려움으로 느껴졌다. 난해한 부분에 대해서는 교수님과의 문답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지만, 이 책의 세밀한 내용 전부를 단 한 번에 흡수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책의 절반 분량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여 원전에 익숙해지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헤로도토스,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세무사 1차 시험을 치고 휴식을 취하자는 생각으로 이 책을 사서 읽게 되었습니다. 헤로도토스는 여행자 겸, 역사학자로서 고대에 10년간이나 여행을 하며 그 당시 지방의 문화와 풍물 역사 등을 탐방한 여행기이자 역사책이 바로 이 ‘역사’입니다.
그리스와 이집트, 페르시아와 스키타이 등 수많은 여행을 하며 들은 내용을 적고, 그 내용을 나름 자신의 생각을 곁들여 판단하는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웠습니다.
이집트의 풍습과 생활양식을 보면서 그 당시에도 지금과 별반 다를 바가 없구나 하는 생각과 부정직한 정치인을 시민들이 힘을 합쳐 물리치는 ......<중 략>
그리스 역사가. 키케로가 '역사의 아버지' 라고 불렀다. 페르시아 전쟁사를 다룬《역사》를 썼다. 《역사》에는 일화와 삽화가 많이 담겨 있으며 서사시와 비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스인 최초로 과거의 사실을 시가가 아닌 실증적 학문의 대상으로 삼았다.
첫째, 헤로도토스는 식민도시 할리카르나소스 출생의 망명자이다. 그가 식민도시 출신이라는 점은 그에게 자유로움과 지적 호기심, 모험심이라는 특성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가 기술한 ‘역사’에서 방대한 지역과 시간속의 여러 민족을 기술하는 데에 있어서 편견이나 민족적 배타성없이 담담하게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그의 개인적 배경에 기인한다. 덕분에 현재를 사는 나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여러 민족의 다양한 관습과 생활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현재의 관습과 법의 근원이 어디서 출발했는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각 상황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었다.
둘째, 헤로도토스는 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그의 친척인 파니아시스가 점술가였다는 점, 그의 이름인 헤로도토스의 의미가 ‘여신 헤라가 내려주신 자’라는 점 등에 기반하여 볼 때 그의 집안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환경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만큼 ‘역사’안에서의 거의 대부분의 사건들에는 전조나 신의 계시 같은 것들이 등장하고 그는 이에 대해서 대단한 신뢰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는 고풍스러운 운명관을 가지고 있다. 7권에 저술된 아르타바노스의 말은 인간의 지나친 행운과 그로부터 생기는 교만심이 신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데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러한 그의 보수적인 인생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 헤로도토스는 만성적인 여행자이자 조사자이다. 그는 광대한 지역을 실제로 여행하면서 확인한 내용을 기반으로 ‘역사’를 기술하였다. 그리고 그 기술내용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관찰을 기반으로 한 것과 곳곳에서 들은 이야기들과 설화, 추정들에 기반한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Ⅰ. 작가 - 헤로도토스의 생애
그리스의 역사가를 떠올리면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들은 같은 제목의 다른 내용인 『역사』라는 책을 쓰고 각각 ‘역사의 아버지’, ‘역사의 어머니’ 라고 불리었다. 하지만 둘의 역사 서술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다. 헤로도토스가 흥망성쇠 패턴의 보편적 원리에 관심을 가졌다면, 투키디데스의 주관심사는 아테네 연맹과 스파르타 연맹 사이에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이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은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풍토와 사람들의 기질과 같은 것도 다루고 있지만, 투키디데스의 기록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주제 하나가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다룰 내용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책이기 때문에 헤로도토스의 생애를 알아보고 그의 가치관과 저술 의도를 통해 『역사』라는 책의 의미를 파악해보자.
헤로도토스는 키케로 등에 의해 ‘역사의 아버지’로 불렸지만 그 생애와 관련된 자료가 적어 알 수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인 기원전 484년경에 소아시아의 할리카르나소스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도시는 그리스 도리스인의 이른바 6개 도시 연맹의 일원이었지만 가까이에 사는 이오니아인의 문화가 스며들어 있었다. 헤로도토스 자신도 이오니아인에 대한 상당한 편견이나 반감을 갖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저작에 이용된 언어가 이오니아 방언이었을 뿐 아니라 그 정신이나 성격에 있어서도 대단히 이오니아적 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생가는 명문가 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저작으로 엿볼 수 있듯이 그는 어릴 적부터 풍부한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어 진다. 또한 그가 문학이나 역사, 과학에 정통하고 경건한 신앙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이같이 훌륭한 집안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고, 또한 이로 인해 정치계와도 무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그리스 세계와 페르시아의 전쟁의 원인을 밝히고 후세의 사람들이 이 역사적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책입니다. 여기에는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비롯한 고대 오리엔트와 그리스 세계의 많은 사실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내용은 영화 300(Rise of an Empire, 2014)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300은 ‘테르모필라이 전투’를 토대로 제작되었습니다. 페르시아의 대군을 300명의 정예 병사들이 맞서고 레오니다스의 왕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통해서 고대 스파르타의 풍경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학원들에서 ‘스파르타 학원’ ‘스파르타 교육’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광고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매우 엄격하고 강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사람들은 재산을 많이 축적하는 것보다 검소하고 자존심을 지키는 생활을 유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