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전원주택과 더불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리라 기대했으나 종국엔 파국으로 치닫는 남자의 이야기인 <사육장 쪽으로>, 불길한 안개가 지겨운 동행처럼 주인공인 연인에게 달라붙는 이야기인 <소풍>, 도시 중산층 화이트칼라의 정체성 문제와 신경쇠약을 다룬 <분실물> 등을 통해 작가는 일상이...
주인공은 늘 쫓기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작품은 시작부터 주인공을 가혹하게 위기로 내몰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대문을 열자마자 그 앞에 놓인 것은 경고장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경고 장을 들고 충격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다. 출근시간에 쫓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속도로 위에서 위압적인 화물차나 트레일러에 사이에 낀 채 쫓기듯 출근길을 내달린다. 작품에서 묘사하듯 주인공은 평범한 여느 가장이자 직장인이다. 도시 외곽변두리에 살든 전원주 택에 살든 도심 속엔 살지 않지만 ‘도시인’이며, 그리고 안타깝게도 기댈 곳 하나 없는 피폐한 현대인이다.
“그는 이력서를 어쩔까 하다가 관람차 의자의 좁은 틈에 꽂았다. 바깥으로 떠밀린 이력서는 회전관람차를 타고 쉬지 않고 빙글빙글 돌 것이다.”(본문 229쪽)
‘헬조선’이라고들 부른다. 개인적으로 꺼리는 표현이지만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대 사회는 무미건조하다. 삭막한 사막에 갈린 퍽퍽한 모래 알갱이들과 같은 메마 른 현대사회의 모습. 편혜영 작가는 우리의 삶 속에 숨겨진 그러한 어두운 면모를 덤덤하고도 섬뜩하게 그려낸다. 여자와 남자는 여행을 간다. 여행은커녕 제대로 된 휴일도 얻지 못하고 일하기에 바쁘던 두 사람이기에 W시로의 소풍은 그들을 들뜨게 한다.
'사육장 쪽으로'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뭔가 섬뜩한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육장이라고 그러면 정답다는 느낌보다는 무섭고, 두려움이 먼저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왠지 잔인한 내용의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는 것을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깨달았다.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나에게 육감적으로 공포를 주기 보다는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공포를 주었다. 이 소설과 <보물선>을 같이 읽었고, 지난주에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와 <가을이 오면>을 읽었는데, 지난주에 읽은 소설은 주인공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라는 감정이 솟아났는데 반해, 이 소설과 <보물선>은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맨 처음에 나오는 편지 한 통 하나로 '그'라는 주인공을 시작으로, 가족에게 심리적인 공포를 주고, 그 편지 한 통 하나로 사건이 벌어지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