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특히 표제작 「등신불」에서는 한국적 전통의 세계를 통해 초일상적이고 원형적 차원을 탐구하는 경향과 사회 현실의 문제에 대한 작가적 인식을 탁월하게 접목시키고 있다. 근대·반근대·탈근대 등의 개념을 둘러싼 논의의 장에서 김동리의 문학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고 있는...
'나'는 일본의 대정 대학에 다니다가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의 남경에 주둔하고 있던 중
그가 곧 죽음의 장소인 인도차이나 반도로 투입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큰 괴로움을 느끼고
같은 대정대학의 동문인 진기수의 도움으로 탈영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땅거미가 끼일 무렵 남경의 교외에 위치한 정원사라는 절에 의탁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선배 진 기수에게 자신의 처지와 용건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진 기수는 적국의 옷을 입은 생면 부지의 한국인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손가락의 살을 물어 떼어낸 후 피로서 살생을 면하고 부처의 은혜에 귀의하고자 한다는 내용의 글을 써내려 간다.
처음 등신불을 접하게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이다. 한창 수능 준비로 바쁜 때에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을 통해서 배운 작품 중 하나였다. 수능 공부를 위해 접했던 작품이기에 작품 전체를 읽지는 못했었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 이번 기회를 통해 읽기 전까지는 정말 ‘불교문학’이라는 이미지만이 내게 남아있었다. 몇 년이 흐른 뒤에 다시 접한 ‘등신불’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 내게는 어려운 문학소설이었다. 불교적 단어도 많고 소재가 다소 철학적이라 나의 생각을 나타내고 느낌을 표현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한동안 독서를 멀리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 략>
등신불이 무슨 뜻인지 찾아봤더니 사람의 키와 똑같이 만든 불상이라는 뜻이다. 이 소설에서는 사람과 똑같은 크기의 불상 정도가 아니라 정말 사람으로 만들어진 불상이 나온다. 주인공 ‘나’가 느낀 것처럼 기묘하면서도 섬뜩했다. 스스로 불에 타면서 부처에게 공양을 하다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불교뿐만이 아니라 종교에서는 이처럼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서, 혹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자신의 몸을 해하는 경우가 있다. 고통을 인내하면서 깨달음이나 구원을 얻기 위한 이러한 행동들은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거부감이 들거나 비이성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신자들에겐 그런 행위자가 구도자나 신에 근접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중 략>
주인공 ‘나’는 태평양전쟁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군대를 벗어나 선배인 ‘진기수’를 찾아가고 거짓으로 불교에 귀의한다. ‘나’의 이러한 행동은 진심으로 ‘살생을 면하고 불교에 귀의하고자’ 하는 것과는 관계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오로지 살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능적으로 죽음으로부터 도망친 ‘나’는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자신의 죄를 탕감하고 구원받고자 죽음을 택한 등신금불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내가 주인공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버려서라도 얻고자하는 무언가가 과연 무엇이었을지 굉장히 궁금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