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신이 관여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린 개인은 어떻게 생을 이어갈 수 있는가?한국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의 첫 장편소설을 탄생시킨 문학동네소설상의 스물세 번째 수상작 『알제리의 유령들』.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선을 엮어 빈칸으로 남아 있던 삶의 풍경들을 희미하게 그려나가고, 그렇게 채워진...
율이 있고 징이 있다. 율은 여자고 징은 남자다. 율의 부모와 징의 부모는 친구 사이다. 율과 징도 친구다. 율의 아버지가 죽고 징의 아버지도 죽었던가? 율의 어머니가 죽었던가? 징의 어머니는 몽롱한 의식과 죽음 직전의 몸으로 간신히 살아 있던가? 누가 죽고 누가 살아 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율과 징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징이 제주도에 간다고 했다. 율은 슬퍼진다. 아니 슬퍼해야 할 것 같다. 징마저 가면 율에겐 아무도 남지 않는다. 징은 제주도에 가서 율에게 편지를 쓴다. 보고 싶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립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율은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그냥 응, 그래, 라고 말한다.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징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율은 아무에게도 버려지지 않았는데 혼자 남겨져 있다. 그 집에서 율은 이런 고백을 남긴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려준 집이었다. 아버지는 그 집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나 역시 그 집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어머니는 그 집으로 시집와서 그 집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