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표지글]만주는 동북아 근대사의 터부이자 블랙박스였다. 저자는 이 블랙박스를 열고 숨겨진 동아시아 근대의 복잡한 면모를 밝힌다. 우선 만주국은 신체규율 및 사회동원에 입각한 파시스트적 발전국가의 모델이었다. 또한 중심과 주변의 차이 대신 동질성을 동원한 일본의 만주 지배는 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만주는 동북아시아 압록강 북쪽의 광활한 지역을 일컬으며, 만주족이 발상하여 거주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만주 지역은 과거에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해 부여, 고구려, 발해와 같은 우리 역사의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요, 금, 청, 중화민국을 거치는 중국의 역사가 겹쳐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현재는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의 영토인 만주는 남부의 간도 지역을 둘러싼 영토 분쟁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내가 만주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은 '수많은 한국인들의 이주처'였다. 항일투사들에게는 일종의 피난처였고, 고향을 잃은 이주민들에게는 중국인들이 질시와 견제가 가득했던 험하고 낯선 공간이었을 것이다. 1910년대 조선초옥부가 실시한 토지조사 이후 자신의 토지를 잃은 수많은 농민들은 갈 곳을 잃고 만주로 이주하였다. 그렇기에 만주는 우리에게 착잡하고 마음아픈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만주를 이야기할 때 빼놓아서는 안될 것이 바로 '만주국'이다. 만주국은 오늘날의 중국 동북지역(만주)에 주둔한 일본의 위수군인 관동군(關東軍)이 일본정부나 육군본부의 명령과는 무관하게 전쟁을 도발, 수행하여 세운 괴뢰 국가이다. 만주국의 체제는 무척이나 잔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주국을 사실상 다스렸던 관동군은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세력을 잔인무도하게 숙청했고, 하얼빈에 주둔했던 731부대의 인간생체실험 역시 그 잔인성으로 알려져 있다. 만주국에서 이루어진 일본의 제국주의적 통치와 그 안의 숙청과 수탈, 저항의 키워드는 만주국 연구에 있어서의 주된 주제였고, 동시에 만주국을 '괴뢰국'이라는 수식어 안에 단단히 봉인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한국은 냉전시대를 거치며 만주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였고, 중국은 일본 제국주의를 규탄하는 시각에만 크게 중점을 두었으며, 일본은 일부 과거 일본의 과거를 반성하는 진보적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제국주의 시절 만주에 대한 향수에 머무르고 있어 오랫동안 만주국은 동아시아 연구자들로부터 가려져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