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신과 기장의 신앙고백『역사를 살다』. 이 책은 한신과 기장의 선언(MANIFESTO)이다. 격동하는 20세기 한국 역사 속에서 한신과 기장이 무엇을 하였는지를 되돌아보며, 21세기 무엇을 할 것인지를 밝힌 책이다. 총 3장으로 구성하여, 새 시대를 꿈꾸는 창조적 소수자부터 광야의 고난을 통해 이룬 기적,...
◎ 본서의 내용 요약
전체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신과 기장의 신앙고백을 담은 연규홍 교수의 역사를 살다라는 책은 한신과 기장의 선언(Manifesto)으로 오늘날 한국 역사 속에서 한신과 기장이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를 되돌아보고 또한 앞으로 이 한신과 기장이 과연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지를 담은 책이라고 본다. 기장과 예장이 어떻게 분리되게 되었고 조선신학교의 설립과 그 주역에 대한 이야기와 칼빈의 신학적 정신을 계승한 기장이 민주화 투쟁에 어떤 업적을 갖게 되었고 남북한의 분단의 현실에서 한반도의 통일과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기장의 앞으로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하기 위한 방향성에 대한 모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책의 구성을 바탕으로 총 3장으로 나누어 새 시대를 꿈꾸는 창조적 소수자, 광야의 고난을 통해 이룬 기적, 새 하늘, 새 땅을 향한 기도의 행진까지의 주된 내용을 요약하고 본서에 대한 서평과 소감을 적어보고자 한다.
Ⅰ. 새 시대를 꿈꾸는 창조적 소수자
1. 기장 50년의 회고와 전망
해방 후 우리나라는 자주적 민주 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미국과 소련에 의한 신탁 통치로 둘로 분단되어 있게 되자 남북한 교회는 각기 교회 재건을 추진하게 되었다. 기장은 1953년 6월 10일 분립되었고 이 땅에 실천하는 선교 운동적 차원에서 새 역사를 이룩하기 위해 교회는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라 할지라도 이 땅에 존재하는 한 허물과 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교회는 성서의 말씀에 비추어 언제든 올바른 교회로 개혁되어하며, 교회의 개혁은 교회만의 개혁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인간에 대한 책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3가지 전제 안에 교회는 개혁되었고, 또한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최종 슬로건으로 교회 갱신을 목표로 하였다. 기장의 출발은 1940년 설립된 조선신학교로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대다수 신학교들의 경우 교회들에 의해 설립되는 것과는 반대로 기장은 신학 운동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절대 긍정을 위한 부정
머리말을 읽어보면 책이 어떻게 쓰였고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으며 어떻게 전개해 나갈지 알 수 있다. 저자의 생각에 기장은 완결된 교회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예언자적 관점에서 글을 쓴다고 말한다. 제1부는 기장이 한국 교회 개혁의 주체적 교회 형성을 위해 1953년 박해와 고난 속에서 분립되기까지의 과정, 제2부는 기장이 광야같이 험난했던 한국현대사 속에서 교회의 경계를 넘어 민족사와 지성사에 기여한 바를 소개, 제3부는 21세기 세계화 사태, 기장이 감당하고 꿈꿔야 할 미래상을 모색했다.
Ⅰ.새 시대를 꿈꾸는 창조적 소수자(과거)
한국 교회의 보수 교권주의자들은 1940년 조선신학교 설립 때부터 조선신학교를 자유신학의 본거지로 생각했다. 그러나 조선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신학의 자유’를 지향했던 것이다. 특히 조선신학교는 “조선 교회를 위한 세계적인 교역자”를 양성하고자 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지하에서 한국 민족은 해방되었다. 해방 후 남북 장로교회 재건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는 북한에서 박해를 피해 내려온 개신교 지도자들과 본국으로 귀환하였다가 돌아온 외국 선교사들이었다. 선교사들은 해방 전의 그들의 위상과 권위를 찾고자 하였다. 결국 그들은 조선신학교의 신학과 교수 요원들에게 불만을 가졌고 조선신학교의 신학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는 김재준 목사를 목사직에서 박탈한다.
기장은 이 땅에 교회와 사회 개혁을 위한 예언자직을 감당하였다. 기장과 예장이 나누어지면서 자신을 새롭게 정리한 개념이 ‘새 역사 운동’이었다.
기장이 역사 현실에 눈뜬 것은 1960년 4.19혁명을 기점으로 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기장이 민주화 통일 운동의 선두 주자로 나가게 된 것은 1970년에 들어서이다. 기장은 1960, 70년대 역사의 한가운데서 기장은 4대문서를 만들었고 ‘하나님의 선교’를 지역 사회, 노사, 인권 문제 등 사회 선교를 위한 교회 갱신의 다양한 구조를 제시하며 이것을 두 가지 차원에서 추진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짧지 않았던 역사를 모두 담아낸 책이라고 생각을 하게되었다. 기장의 역사 속에서 왜 투쟁이란 단어를 가지게 되며, 고난이란 단어가 그토록 잘 어울리는지 다시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이신 연규홍 목사님은 아마도 기장의 진실에 대해 밝히고 싶어하신 것 같고, 또한 그 동안 기장의 잘못된 오해들을 풀어내기 위해 이 책을 장(場)으로 삼아 모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고 조선신학교가 들어서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과정에서 생겨난 오해와 기장의 탄생을 말하고 있다. 후에는 기장의 정체성을 찾으며 1970년대 유신헌법에 대항하는 유일한 교단으로서의 사회참여를 시작으로 많은 고난을 받으며 앞으로 기장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수업시간에 다뤘던 논쟁들이 이 책에서 그대로 다뤄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먼저 기장과 예장의 분리와 조선신학교와 평양신학교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많이 익숙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남아서 누구도 하지 않은 이 땅의 정의와 진실, 그리고 평화를 위해 소리 없이 녹고 자기를 버리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재준 목사님과 같이 소신을 가지고 끝가지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싸울 만한 인내가 있는가? 송창근 목사님 같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있나? 아마도 한국기독교장로회라는 교단이 그렇게 수적으로 크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정말 필요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힘든 것도 그 이유 중 하나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살다』에서 많은 내용이 나에게 그들과 같은 고난을 겪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겁쟁이로 만드는 것 같았다. 내가 만약 1970년대 목회를 하고 있었다면 정부에 대항하는 운동을 할 수있을까? 하는 질문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장공 김재준 목사님과 만우 송창근 목사님 또한 그렇게 대단한 성인으로 만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소감-
이 책을 보면서 기장의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정체성, 출발점을 추가적으로, 그리고 새롭게 더 많이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를 향한 우리의 전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방해하는 요소들, 나는 이것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고민이 되고 고민이 됩니다. 단지 이기고 가야되는 것인가. 글의 마지막에서 통합의 목표를 향한 한 가지 방향일 뿐이라 하고 있기에, 이러한 생각이 들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교를 향한’이라고 쓴 것은, 하나님의 선교 안에 많은 갈등들과 분열들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방해요소들을 피해가야 하는 것인지, 처리하고 가야하는 것인지,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전 항상 이것을 피해 가야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 나의 자리에서, 위치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내가 맡은 일을 해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살다”라는 책을 읽으며, 조금씩 바뀌어 나갔습니다. 피할 것이 아니라, 해결해나가야 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해결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 방해물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안고 가야하는 것 입니다.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닌 세상을 향하는 세상에 눈을 돌리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게 하는 교회, 평화와, 정의가, 사랑이 넘치는 우리의 사랑을 전해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나 실상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분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사랑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라는 이 문장을 보고, 머리와 가슴에 많은 것이 지나갑니다. 사랑하기 위해 모이는 곳인데, 그곳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튕겨져나가는 성도들, 조그마한 사랑을 느끼기 위해 다른 곳으로, 혹은 이단으로 떠다는 성도들을 보며 안타까움이 넘쳐 나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가?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떠한 것을 바라보며, 신학도로서 어떠한 자세를 지녀야하는가. 자유와 진리와 사랑을 기준으로 하는 신학도가 되길 다짐하게 됩니다.
근현대사는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보다 기간은 짧지만 알아야할 것이 너무나도 몇 배로 많기 때문에 평소에도 좋아하지 않았다. 커다란 사건들만 외워두고, 나머지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는 것이 태반이었다.
나는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한신과 기장의 역사는 우리가 한신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면 접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한신 신학’하면 지금도 어른들은 데모하는 골치 아픈 이미지이다. 때문에 내가 한신에 대해서, 기장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과거 우리의 역사는 단지 정치에 무턱대로 반기를 들고 긁어 부스럼만 만든 문제아의 기록이 될 뿐이다.
진정한 한신을 들여다보고 올바른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역사를 살다’를 꼭 읽어봐야 할 것이다. 사실 많은 학생들이 신학에 대해서는 많은 탐구와 고민을 하지만 그 뿌리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기장과 한신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게 되어 스스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Ⅰ. 새 시대를 꿈꾸는 창조적 소수자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가 세워지기 전부터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주신 소수자들의 노력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다.
장로회는 분단 이후 남한 교회에서 1946년 6월 12일에서 13일까지 남부 총회를 열었다. 이 총회는 통일을 기원하고 남과 북이 하나 된 총회를 그리워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또 신사참배를 범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조선신학교 출신 교역자들에게 정통성을 부여했고, 여성 장로직의 설정을 통일까지 유보하였지만 여성 지도력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다고 평가된다.
조선신학교는 1940년 설립 때부터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자유주의 신학이 본거지, 친일 교육기관으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조선신학교는 교육이념에도 밝혔듯이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하지 않았고, ‘신학의 자유’를 지향하였다. 그리고 평양장로회신학교가 폐교하는 시기에 맞물려 조선신학교가 개교하자 이를 친일적 성향이라고 주장하지만 조선신학교는 1930년 초부터 송창근을 비롯한 진보적인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서 조선신학원 기성회 조직은 이미 구상되어 있었다. 단지 공교롭게 일치하였을 뿐이다.
기장은 1953년 6월 10일 분립되었다. 2003년은 기장이 분립된 지 50년, 즉 희년(禧年)이 되는 때였다. 기장은 3가지 전제 위에서 희년을 강조해야 한다. 첫째, 교회는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라 할지라도 이 땅에 존재하는 한 허물과 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교회는 성서의 말씀에 비추어 언제든지 올바른 교회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셋째, 교회의 개혁은 교회만의 개혁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인간에 대한 책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전제는 기장이 스스로 절대화하지 않고 한계를 인정하여, 새롭게 개혁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환기시켜 준다.
기장은 교회들에 의해 설립되는 여타 대부분의 교단들과는 달리 신학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신학 운동은 1940년에 서울에서 개교한 조선신학교를 그 일차적 결과물로서 만들어내었는데, 이 신학 운동과 학교가 기장이 기존의 예장과 갈라서게 되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그 일련의 과정은 1945년에 일제 치하에서 해방을 맞이함으로서 본격화된다. 한국의 개신교는 해방 전 일제에 의해 교단이 통합되어 있었으나, 감리교를 선두로 각 교단들이 교파 환원을 전개하였다. 이에 장로교도 1946년 6월 12일에서 13일까지 승동교회에서 남부 총회로 모였다. 이렇게 시작된 장로교는 계속해서 많은 문제와 논란 속에서 진통을 겪는다. 그 중 대표적인 주제들은 일제 하 식민지 시대의 신사 참배 문제, 이에 따른 출옥성도들의 공격, 그리고 조신측의 신학적 노선으로 인한 보수 진영의 신학적 공격과 서북 세력의 정치적 공격 등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기장, 그리고 그 모태에 있는 조선신학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신학교는 먼저 외래 자본이 아닌 민족 자본으로 만들어진 학교라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또한 그 설립 목적도 조선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에 두었다. 이것은 단순히 자주성의 문제에 국한되는 사안이 아니다.
1) 전체적인 줄거리
<역사를 살다>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역사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학교가 걸어온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1부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가 한국예수교장로회에서 어떻게 분리되었는지에 대해서 다루었다. 또 조선신학교의 설립과 창조적 소수자였던 그 주역인물들의 삶을 그려놓았다. 2부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칼빈의 신학적 정신을 계승하며 한국근현대사에 민주화 투쟁에 기여한 업적을 다루었다. 3부에서는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 그리고 한국사회의 갈등을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미래상을 모색했다.
1-1) 1부 새 시대를 꿈꾸는 창조적 소수자
해방 후 한국의 상황은 자주적인 민주 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미·소에 의한 신탁 통치에 놓여 있어서 둘로 분단되어 있었다. 그렇게 남북한 교회는 각기 교회 재건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리교를 선두로 각 교파가 교파 환원을 선언하여 장로교도 남부 총회로 모였다. 그러나 장로교 총회의 이름을 남부 총회라 이름 붙인 것은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을 빼놓고 완전한 총회로 모일 수 없다는 것과 통일이 되기까지 한시적인 총회로 모이겠다는 의미이다.
남부 총회는 조선신학교를 직영신학교로 지정한다. 그러나 보수 교권주의자들은 조선신학교 설립 때부터 설립 시기와 성격 문제로 조선신학교를 자유주의 신학의 본거지로, 그리고 일제에 동조한 친일 교육기관으로 매도하였다. 그러나 조신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신학의 자유를 지향했다. 또 조선 신학교가 일제 식민 교육 정책에 동조하는 교육기관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1939년 조선신학원 기성회 조직은 이미 1930년 초부터 송창근을 비롯한 진보적인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구상되어 있었다. 단지 인적, 물적 요소들이 집결되어 개교한 시기가 평양신학교기 문을 닫을 때와 일치되었다는 것뿐이다.
제 37회 총회는 김재준은 웨스트민스터 신조 제1조를 범하며, 조신 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한다고 판단하고 불법적으로 조선 신학교에 불리한 결의안을 채택한다.
한신은 지난 역사 속에서 그 시대의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했다. ‘역사를 살다’는 바로 그 ‘기장’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자기 성찰적 이야기이다. 또한 이 책은 기장의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설명만이 아닌 기장의 역사를 회고하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기장의 정체성과 미래를 향한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책의 첫 부분에 “교회는 개혁되었고,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cclesia reformanda)라는 글을, ‘통일시대의 교회일치운동’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글은 그 목표를 향한 하나의 모색인 것이다.”라는 것으로 글을 마치는 것을 보고 기장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있다는 것을 느꼈다. 책에서 느껴지듯이 우리들은 기장의 옛 선배들이 행했던 ‘진리를 향한 몸부림’을 본받아 세상을 개혁할만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내기 위한 끊임없는 갱신이며, 주님이 주신 약속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믿음’의 고백과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