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천황의 초상사진 '어진영'의 형성과정을 연구한 책. 어진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것이 근대일본의 정치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였는지를 살펴본다. 어진영의 형성과정 속에 내재되어 있는 권력과 예술의 관계, 즉 '권력의 시각화'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어진영을 둘러싼 정치과정의 역사를...
제 1장: 보이지 않는 천황에서 보이는 천황으로
(1) 보이지 않는 천황
막말에 이르기까지 천황이 진정한 주권자이고 장군은 단순히 그 대리자에 불과하다는 의견은 제기되지 않았다. 봉건시대의 천황은 대체적으로 장군에 의해 권위가 유지되고 장군의 필요에 의해 수시로 제한을 받는 ‘소극적 권위’에 불과했다. 메이지변혁은 이러한 봉건적 권위가 수동적으로 명목상으로나마 권력주체를 바꿔치운 사건이었다. 사실 봉건시대에는 천황이 민중의 현실생활에 권력으로 침투할 여지가 없었다. 민중의 입장에서는 천황의 존재를 알고는 있지만 어떤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존재였다. 메이지 유신과 함께 권력의 교대가 이뤄지고 새로운 정치형태가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민중의 생활이 봉건시대로부터 갑자기 변화할 리는 없었다.
오쿠보 토시미치 등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봉건시대의 천황과 민중의 소원한 관계가 새로운 국가의 권위를 만들어 내는 데 방해가 되고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천황을 일반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존재로 만들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오사카친정이나 동행등과 같은 일련의 정책에 의해서 그 자체가 정치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천황의 시각화를 수단으로 하는 하나의 정치적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는 천황의 성숙을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궁정 깊은 곳에 있던 천황을 사회라는 가시적인 공간으로 끌어내서 그 내실과는 상관없이 민중에게 위력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이것은 비단 국내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외교상태가 막부에서 새로운 국가로 변한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강하게 품고 있는 여러 외국이 새로운 국가를 승인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매우 긴급한 사안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리하여 천황은 궁정을 나와 바깥 땅을 밟게 되었다.
(2) 민중의 정치적 경험인 니시키에
1868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을 그린 몇 종류의 니시키에에 처음으로 천황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천황의 즉위, 오사카친정, 동행 등이 니시키에로 그려지고 이것들이 상당수 퍼진 것은 민중차원의 정치적 경험을 명확히 보여준다. 니시키에는 우선 천황의 모습을 그렸다고는 하지만 결코 사실적인 초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