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김훈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공터에서』는 이승만, 박정희 등을 거쳐 국가권력이 옮겨가는 것을 목격하며, 그에 따라 영광은 작고 치욕과 모멸은 많은 우리 삶의 꼴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자전적 경험을 실마리로 집필한 작품이다.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을...
1. 작품 선정 배경
평소 김훈의 작품을 빼놓지 않고 읽는 편이다. 김훈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남성적인 간결한 문체를 쓰기 때문이다. 김훈이 쓰는 표현은 강하게 파고들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김훈이 2015년에 발표한 '라면을 끓이며'에는 아들로서 아버지의 삶을 반추하는 부분이 나온다. 소설 '공터에서'의 첫 부분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은 그의 자전적 소설임을 직감하였다. 이 작품은 '칼의 노래'나 '화장'과 같은 작품들에 비해 세간의 관심을 덜 받았다. 사실 소설을 읽다 보면 스토리라인이 극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심심하다고 느낀 독자들도 많았을 거라고 짐작한다. 김훈 스스로도 머리말에서 일종의 부채의식 때문에 이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 소설은 독자와 소통하거나 독자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서 썼다 라기 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썼다는 느낌을 준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돌아가신 연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버지 삶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작가 김훈의 팬으로서 작가의 개인사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 주저 없이 선택하였다.
2. 줄거리 요약
소설은 마씨 집안 2대에 걸친 가정사를 신문기사를 쓰듯이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아버지 마동수는 형 마남수를 따라 상해에서 머물다 흥남에서 어머니 이도순을 만난다. 그렇게 마차세가 태어나고 마차세는 아버지를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한다. 마차세는 군 입대 중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돌본다. 이후 박상희와 결혼한다. 소설의 줄거리 자체를 요약하는 것은 이 작품을 비평하는 데 있어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다. 이 소설의 육사의 '광야'에 비 대비해 보는 것이 백미다.
3. 자전 소설 : 마동수 = 김광주, 마차세 = 김훈
‘공터에서’는 작가 김훈의 자전적 소설이다. 김훈은 소설의 머리말에서 이 소설을 통해 단편적으로 어지럽게 널려 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을 ‘조각모음’한다고 밝혔다.
1.마장세 = 김광주, 마차세 = 김훈
‘공터에서’는 작가 김훈의 자전적 소설로 김훈은 소설의 머리말에서 이 소설을 통해 단편적으로 어지럽게 널려 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을 ‘조각모음’한다고 밝혔다. 그의 아버지 김광주는 식민지 시대 인물로 젋은 시절 중국으로 건너가 한의학을 전공, 상해임시정부에서 김구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으며 광복 후에는 신문기자이자 소설가로서 활동하였다. 소설 속 마동수가 김광주이며, 마동수의 차남 마차세가 바로 김훈 자신이다. 소설을 통해 김훈은 특유의 생생하면서도 건조한 어투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나간다. 소설속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마동수가 마차세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는 단서는 찾기 힘들다. 한글(언문) 대신 한자를 공부하라는 짧은 충고가 전부다. 하지만 김훈이 부친 김광주가 걸었던 길(신문기자, 소설가)을 똑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마씨(馬氏)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 마동수와 그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한 아들들의 삶을 그려낸다. 만주와 길림, 상하이와 서울, 흥남과 부산 그리고 베트남, 미크로네시아 등에서 겪어낸 등장인물들의 파편화된 일생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그 신산스러운 삶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제시대, 삶의 터전을 떠나 만주 일대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겪어낸 파란의 세월,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간과 연이어 겪게 되는 한국전쟁, 전후의 피폐한 상황 속에서 맺어진 남녀의 애증과 갈등, 군부독재 시절의 폭압적인 분위기,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인들의 비극적인 운명,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 세상을 떠도는 어지러운 말들을 막겠다는 언론 통폐합, 이후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자본의 물결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사건들이 마씨 집안의 가족사에 담겨 있다.
나는 이 소설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물론 이 소설 초중반에 아버지 마동수는 노환으로 사망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자리를 잡지 않고 이국땅을 떠돌아다녔던 마동수의 일생이, 전쟁 중에 아내를 만나고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었던 마동수의 인생이 뒷날 두 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마장세의 경우에는 한국에 살지 않고 외국 땅에서 고철 관련 산업을 하며 돈을 모으게 된 큰 계기 중 하나가 아버지였고, 그런 아버지와 마장세의 중간 지대에 있던 사람이 마차세였다. 마동수의 인생이 두 아들에게 영향을 끼쳐 한 아들은 범죄자가 되어 감독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고 한 아들은 이 맨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몸부림 치는 그런 가장이 되었다. 뭐랄까. 나는 이 소설에서 마동수를 시작으로 한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적인 면을 본 것 같았다. 결국 가난한 아버지에서 인생을 시작한 두 아들은 아버지의 흔적을 없애려고 했지만 결국 다른 방향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의 과거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경제 고속 성장의 시대, 그리고 다시 등장인물이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작가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의 줄거리가 우리나라의 과거를 모두 상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시절 겪었던 고난이나 어릴 적 마장세, 마차세 형제가 겪었던 가난과 이후 이 형제의 성공과 실패의 굴곡진 인생까지. 이 소설에서는 마장세와 오장춘이 범죄에 휘말리면서 그동안 쌓아왔던 탑이 우르르 무너졌지만 역사적으로는 외환위기, 경제 위기로 인한 IMF 구제 금융이 이 시기의 실패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마장세 형제나 오장춘처럼 경제 고속 성장의 단맛을 맛보며 실패를 예상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결국에는 어떠한 이유로든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마는 현실, 이러한 상황이 우리나라의 역사와 닮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실패와 성공의 역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