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혐오스러운 수용소 생활의 현실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고통과 절망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의 삶을 통해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조건과 인간의 내면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비극 속에서의 완벽한 하루>
특별히 재미가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그런 유희와도 같은 감정이 내게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되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디스토피아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임에도 이 책에 재미를 못 느낀다는 사실은 내가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람임을 알게 해줬다.
억울한 수용소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순응한 체로 생활하는 모습에서 어쩌면 희망을 일찌감치 포기했기 때문에 의연해진 것 같은 모습이 일반적인 소설 속 주인공과는 달리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억압받은 자유와 박탈당한 희망 그 속에서도 주인공은 자유를 갈망하고 그 욕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책을 읽으며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한 개인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지배권력의 허상을 폭로하고 있는 작품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노동수용소 생활의 하루 일상을 세련되고 절제된 필치로 묘사한 작품이다. 출간과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스탈린 치하의 강제 수용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이었기 때문에 서방 세계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내용은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가 기상 신호를 듣고 잠에서 깨어 강제 노동 후 취침에 들어가기 까지 꼬박 하루 동안 그와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통해 당시 소련 굴라그의 생활상을 묘사하고 있다.
1918년에 태어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서방 세계로부터 ‘러시아의 양심’이라 불렸던 작가다. 그는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고, 육군 포병 장교로 임관하여 군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그는 친구에게 스탈린을 비판하는 편지를 썼다가 발각되어 무려 8년이나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된다. 수용소 생활 후 3년간의 유배생활을 더 견딘 후에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솔제니친은 교사생활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초기작인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스타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수용소에서의 딱 하루를 표현하고 있다. 왜 하루를 표현한 것일까? 이반 데니소비치는 같은 하루가 반복되면서, 10년을 복역을 한다. 즉, 매일같이 비슷한 하루가 흘러가는데 그 안에서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슈호프는 분명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각자 취하는 태도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슈호프의 경우 사람들과는 다른 행동을 취한다. 별 것 없는 양배추국 한 그릇과 죽 한 그릇에 행복을 느낀다. 특히, 체자리가 먹을 것을 넘기겠다고 하자 기쁨에 식당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는 모습을 통해 알 수가 있다.
수용소에서 살면서 이반 데니소비치는 빵 한 조각이 생겨서 더 행복해 하고, 삶을 편리하게 해줄 수 있는 작은 줄칼을 가질 수 있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묘안을 짜내서 수용소의 안에서 나름의 자유를 얻고자 노력한 것이다.
주제: 슈호프의 삶의 방식은 기도와 감사였다.
...손가락 두 마디 만큼이나 두껍게 낀 성에가 낀 유리창...이란 글을 보고 손가락을 펴본다.
사오센티미터쯤 된다.
눈처럼 하얗던 성에를 본 것은 구닥다리 냉장고의 냉동실에서 보았다.
물건 놓을 자리를 확보하려고 성에를 깨다가 선을 잘못 건드려 냉장고를 고장 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당시를 이해해야 했다. 해설을 참조했다.
소련의 스탈린 시대는 개인숭배와 대대적인 공포정치, 권력이 정치적 지배 논리에 반대하는 문학 작품을 억압하고 금지했다.
작가들은 그러한 정치 권력에 대항하고 예술에 대한 자유와 진실을 말할 권리를 얻기 위해 대항하고 투쟁했다.
스탈린 시대의 강제 수용소 묘사는 스탈린의 상징적인 악행에 대한 고발이다.
그러한 고난과 고통 중에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약하고 힘없는 동정의 눈길과 사랑의 철학을 추구해야 했다.
솔제니친이 친구에게 보낸 글 때문에 1945년에 수용소로 갔다.
불순분자, 반동분자 그런 이유일 것이다. 8년의 형기를 채웠다.
솔제니친이 그 때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 소설이다.
이 소설로 인해서 솔제니친은 저항작가, 반체제 작가로 유명해졌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 친구 그리고 사회로부터 강자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교육받아왔다. 하지만 막상 현실을 살다 보면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괴롭히고, 빼앗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회의감에 빠져들 때가 많다. 이 작품은 수용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담하게 서술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약육강식의 사회를 더욱더 극명하게 표현한다. 이 책을 보면서 수감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동정 감을 느꼈고, 가혹한 환경 속에서 같은 인간을 탄압하는 불합리한 지배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포로가 된 다음 풀려난 것은 독일 첩보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모티브란 문학에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중심 설정요소로, 한 작품에서 반복되어 언급되는 성질을 가진다. 모든 작품은 모티프를 가지고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도 여러가지 모티프가 등장한다. 이는 작품의 전체적인 환경,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일조하며 각자 작품의 특정 주제를 강조하면서 작가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라는 작품에 있어 배고픔은 가장 강력한 모티프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배고픔은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의 욕구와 본능을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요소로 작용한다. ‘하루’를 담은 소설 안에서 배고픔은 아침, 점심, 저녁 때마다 죄수들의 삶을 잇는 원동력과 같다. 이는 이야기와 사건의 진행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설정이다. 또한, 생선가시만 가득한 국이나 썩은 양배춧국이 나오는 식단, 20 분이라는 짧은 식사 시간, 그리고 닷새마다 절식을 하는 수용소의 환경은 죄수들의 비인간적인 삶을 극대화시킨다.
하루살이 인생,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속 주인공 슈호프의 인생은 하루살이 인생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도 하루하루가 하루살이 인생이다. 소설 속 슈호프의 하루 남짓한 생활을 둘러보며 기운을 낼 수 있었던 까닭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된 하루하루 삶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자잘한 행복을 발견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아침 다섯 시가 되자’ 하고 소설이 시작된다. 슈호프가 수용소에서의 하루를 끝내고 잠이 들기 전까지, 그러니까, 소설이 끝나기 전까지의 처음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슈호프는 이제 저 살을 애는 듯한 추위 속에서 (하지만 사실, 책을 읽다보면 까무러칠 정도의 추위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아마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수용소 생활의 고됨을 그리는 것은 작가의 목적이 아닌 듯 하다.) 하루의 노동을 피하기 위해 잔꾀를 부리게 되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작업장에 나가게 되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인 식사 시간을 위해 고분분투하고,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면서 오늘을 되새겨보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슈호프의 일상이다. 학창시절 누구나 그렇듯, 오늘만은 수업을 빠졌으면 하고 꾀병을 부리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사실, 책을 읽으면서 아..여기서는 무언가 사건이 터지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이 몇 번 쯤은 나온다.
책을 처음 잡는 순간, 충격적인 내용들에 사로잡힌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빠른 호흡으로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나는 슈호프가 빠진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한 께름칙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책의 내용은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의 하루를 그린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보내는 그의 하루는 말할 수 없이 끔찍하다. 인간의 존엄성은 찾아볼 수 없고, 비참한 환경에서 배를 곪지 않는 것에만 전념해야 한다. 주린 배에 간신히 음식을 채울 궁리만 하는 이들에게 인간의 사유란 없다. 책에서 묘사한 대로 개의 삶이나 다름이 없다. 척박한 상황에서 생각은 그 자리를 뱅뱅 돌며 정신의 자유조차 박탈한다.
슈호프의 입을 빌려 솔제니친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지나치게 담담해서 나는 비참한 느낌까지 들었다. 솔제니친의 이야기에는 다른 러시아 작가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일단 호흡이 매우 짧고 간결하다.
나는 책을 읽기 전 시대적 배경을 알고 난 후에 책을 읽으면 책을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 알고는 있었지만 시대적 배경을 다 이해하고 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하진 않았다.
그렇게 세세하게 찾아보고 알아보려면 책을 읽을 시기가 늦춰지기에 성격 급한 나는 앞표지에 나오는 작가의 내역과 스탈린과 스탈린체제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찾아보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만약 이 책을 좀 더 이해해하고 넘어가고 싶다면 맨 마직막장에 작품해설을 읽고 첫장으로 넘어와 읽기 시작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정식명칭은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으로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작가가 태어난 때는 스탈린이라는 인물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 지고 있던 시대였고, 그 스탈린과 스탈린체제를 비판한 한 것이 문제가 되어 팔년이라는 긴시간동안 강제 노동형과 삼년의 유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수용소 생활이 모티브가 되어 ‘이반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이 태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