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독특한 심사 과정과 한국 소설 문학의 황금부분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탁월한 작품성을 지닌 수상작으로 인해 현대 소설의 흐름을 대변하는 한국 소설 미학의 절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특히 2012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문학사상이 창사 40주년을 맞아 새롭게 바뀐 디자인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권위와 전통,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책이라는 느낌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고 대상 수상 작가와 그의 작품이 한눈에 들어오게 디자인하였다.
"옥수수와 나"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로, 배경은 현대 한국의 도시와 시골을 오 가며, 주인공들과 함께 겪는 여러 상황과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은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삶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가치와 인간의 정서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줍 니다.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작가가 주인공들의 일상 속에 서 감동적이고 지혜로운 순간들을 잘 포착하고 그린다는 것입니다.
새벽. 일찍 잠에 들었는데 깨고 말았다. 다시 잠에 들길 기다리다 포 기하고 일어나 앉았다. 어지러운 책상 위에서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 가 보였다. 이 작품은 2012년 이상 문학수상작이다. 믿고 읽는 작가이기 때문에 그냥 읽었다.
나는 책을 잡으면 작가부터 본다. 작가의 소개나, 끝에 작가의 편지나 아니면 책 날개 같은데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 한다. 이 책은 작가론까지 있다. 마음에 든다. 김영하에 대한 작가론을 읽다 지금 나의 고민을 집어내는 표현을 발견했다.
“자기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스스로를 옥수수라 믿는 남자가 있다. 내가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닭들은 모른다는 환자와 의사의 대화가 우스꽝스러웠다. 소설의 첫 문단을 읽고 뒷내용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지만 무척 잘 읽혔다.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정신병원의 이야기로 시작하나 싶었는데 이내 빠져들었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작품 구석구석 박혀있는 잔재미덕에 감칠맛 나는 작품이기도 했다.
주인공 박만수는 소설을 쓰려한다. 소설을 쓰게 만드는 주체는 다양하다. 전부인, 쫑아, 너구리같은 사장, 거기다 철학교수 시인 친구까지. 그는 여러 요구에 글을 써야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구상을 편집자에게 말할 때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나 초현실주의를 슬쩍 언급해주는 게 좋다. (중략) 이게 바로 마술적 리얼리즘의 마술적이면서도 리얼한 힘이다.]
이 부분에서 스스로의 정신적 가치의 추구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순간을 넘기려는 박만수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뉴욕의 사장의 집에서 사장의 별거 중인 아내와 섹스를 나눈 후에 그는 미친 듯이 글을 써낸다.
줄거리
소설은 주인공과 전처인 수지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과거 데뷔작의 영광 이후로는 돈을 잘 못버는 작가로 현재는 계약금만 받고 원고를 못 넘긴 신세로 전처이자 편집자인 수지에게 원고독촉을 받는다. 월스트리트에서 온 사장과 수지의 내연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주인공은 그들 모두를 골탕 먹이면서 원고는 내기 위해 미국으로 가 소설『율리시스』에 버금가는 스토리도 없고 성적몽상만 가득한 소설을 쓰려한다. 월스트리트에서 온 사장이 자신이 살던 미국의 집을 빌려주었는데, 그곳에 가보니 사장의 별거중인 아내가 있다. 그녀와 술을 마시며 하룻밤을 보내고 둘은 급속도로 육체관계에 빠져든다. 그리고 소설을 쓰는데, 모든 소설가들이 갈망한다는 에피파니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고 이것이 자신의 예술혼이 불타는 작품임을 믿게 된다. 소설을 거의 다 써갈 때쯤 사장이 들이닥치게 되고 사장은 권총을 들이밀며 죽음이냐 아니면 수면제나 청산가리가 든 알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이 소설의 전반에 걸쳐 나오는 대립적인 두 표상은 닭과 옥수수이다. 소설의 시작에서도 닭에게 쫓기는 옥수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소설의 마지막에서도 박만수에게 위협을 가하는 사장은 닭의 모습으로 변화하고 나는 옥수수가 아니라고 외치는 박만수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옥수수는 닭의 모이로, 둘은 포식자와 먹이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옥수수 낟알이 닭의 모이가 되지 않는다면, 이는 자라 옥수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종합해봤을 때, 닭은 옥수수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소설 속의 사장이 될 수 있겠고, 사장 밑에서 소설을 써내야만 하는 그리고 그 소설의 출간 전 사장에게 가치를 평가 받아야 하는 박만수는 옥수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소설을 읽다보면 독자는 박만수의 처지에 공감하고 연민할 확률이 매우 높다.
수지와 안부를 주고받는 대화. 요즘 어떻냐는 질문에 ‘나’가 글쎄라고 답하자 화내는 수지. ‘나’는 글이 안 써진다고 호소한다. 그러자 수지가 ‘나’를 설득하기 위해 두가지 소식을 알려온다.
(1)월스트리트에 다니던 사장이 출판사를 인수함. 그 과정에서 계약금만 받고 원고 안넘긴 작가들의 리스트를 제출 받음. 거기엔 ‘나’도 포함. 최후 통첩 후 반응이 없으면 소송하겠다고 함.
(2)‘나’와 ‘나’의 전아내인 수지의 딸인 쫑이(호승심이 강함, ‘나’는 쫑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음). 미국 대학 몇군데에 지원해서 합격함. 첫해 등록금과 기숙사비만 빌려달라고 청함.
쫑이의 이야기를 하며 대성통곡하려는 수지. 글을 쓰게 하려고 설득하는 수지의 모습에 ‘나’는 일제시대의 유랑 곡마단 이야기를 쓰려고 하나 뉴욕 취재(곡마단의 최후 생존자가 뉴욕에 살고 있음)가 어려워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함.
간결한 문체와 담담한 문체로 시작하는 김영하 작가의 ‘옥수수와 나’ 는 단편소설이지만 장편소설을 읽은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처음 부분에서 정신병원에서의 서술은 ‘왜 이야기를 처음에 썼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하지만 곧 이어지는 소설의 내용을 읽다 보면 앞부분의 의문은 소설의 몰입감으로 인하여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만다.
사랑과 성에 대한 간결한 문체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몰입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었다. 한때 유명한 작가였지만 지금은 슬럼프로 인하여 글을 쓰지 않는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실제 작가의 삶은 이러지 않을까 라는 상상도 해보게 하였고 극중 소설 속 주인공이 10일 만에 원고지 1000장 분량의 글을 쓰는 부분은 문학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한테는 경의를 표할만한 장면이었다. 특히 글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저런 평생 저런 경험을 해 볼 수 있을까라는 판타지를 선물하는 장면이었다.
문학창작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그 정신작용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그 작가를 둘러싼 환경이다. 그런데 그 환경의 실체는 늘 일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변화한다. 예를 들면 근대 이전의 시대에 있어 작가의 문학적 창조 행위는 신이나 자연 따위였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심각한 갈등의 대상이자 밀접한 환경이 된 것은 바로 인간과 도시 그리고 양자가 만들어 낸 사회적 관습이었다. 인간의 창조 행위가 자연이 아닌 인간과 사회적 현상을 대상으로 하면서부터 그 진화의 속도는 급속도로 빨라졌고 사회의 분화와 발달, 변모의 속도만큼 그 정신적 분화의 조짐은 더욱 극심해졌다. 이러한 급속한 변화 속에서 나타난 사회의 양상은 작가의 시선 속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포착되기도 하며 이런 현상에 대한 비평의 가치평가와 해석의 역할은 자연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시대의 문학을 사회에 대한 작가의 저항 심리의 반영으로 해석한다던지, 허무주의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전쟁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나타낸 소설이 있다면 그 이유를 작가가 살아온 당대의 전쟁 상황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단편 <옥수수와 나>는 제36회 이상문학상의 영예의 대상작이다. 이상문학상이라는 명패라면 명패, 감투라면 감투가 주는 신뢰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김애란, 김중혁 작가와 더불어 단편을 잘 쓰기로 소문이 자자한 김영하 작가의 네임파워와 이상문학상 대상이라는 타이틀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뤄 서점에서 이 작품집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읽어치웠던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게 벌써 2-3년 전쯤인데 내가 요즘 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관계로 책을 다시 가까이 하게 되어 며칠 전에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읽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옥수수와 나>는 죽인다.
김훈의 <화장>과 더불어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이 아닌가싶다. <옥수수와 나>는 무거운 주제를 괜한 무게 잡지 않고 풀어간다.
텍스트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직업은 소설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주인공을 소개하자면 출판사로부터 계약금만 받고 작품을 출간하지 않는, 출판사입장에서는 손해만 끼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눈엣가시 소설가인 셈이다. 이러한 푸대접을 받는 그도 한때는 잘나갔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살고 있는 현재 삶의 모습은 작품을 출간하지 못해 출판사로부터 수많은 독촉을 받고 있는 소설가의 모습이다. 이토록 참담한 상황에서 듣게 된 전 부인의 말은 옥수수를 향해 달려오는 닭의 모습과 같이 그를 더욱더 치명적인 상황으로 만들었다. 자식교육비를 부담하라는 그녀의 말은 남자의 심리상태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기에 충분했다. 주인공은 현재 일반인처럼 정상적인 생각이 불가능한 상황이며 더불어 작품을 출간할만한 창의적인 생각 또한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