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무』라는 제목은 여기 수록된 한 이야기에서 따온 것으로, 미래의 모든 가능성들을 나무처럼 계통도로 그려서 검토해 본다면 미래를 정확하게... 수록된 이야기들 하나 하나가 그러한 정밀한 예측의 나무 그림을 위한 작은 가지들이라 하겠다. 이번 한국어판에는 특별히 프랑스 최고의 만화가 뫼비우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는 읽는 내내 나를 당혹스럽고, 놀랍고, 때로는 부끄럽게 만들었다. 인간 중심의 시선을 벗어나, 나무라는 존재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는 설정은 단순히 독특한 상상력을 넘어서 삶의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나무에게서 나오는데, 그 질문이 오히려 더 진실되고 간절하게 다가온다는 것이 이 책의 힘이다.
초인종이 울리자 겁에 질린 프레드 할아버지와 뤼세트 할머니.
초인종을 울린 것은 ‘그들’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그들’은 자식들로부터 소식이 끊기면 찾아온다는 CDPD(휴식, 평화, 안락센터)의 사람들이다.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이들은 반항하는 노인들을 잡아갔다. 설마 했는데 프레드 할아버지와 뤼세트 할머니는 자식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노인들은 사회보장 적자의 원인으로 치부되면서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노인 배척 운동가들은 처방전을 남발하고 마구잡이로 노인들의 생명을 연장시킨다는 이유로 의사들을 비난했다. 학자들의 분석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산도 대폭 삭감되었다.
정부는 인공심장의 생산을 중단시켰고, 피부, 신장, 간의 대용물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동결시켰다. 대통령마저 노인들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나라의 모든 경제문제가 노인의 증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별똥별 같은 [고약한 것]이 파리의 어느 공원 한복판을 덮쳤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른 새벽시간의 이 충격으로 세 명이 희생되었는데 그들은 마약 밀매업자였다고 한다.
그 별똥별은 직경이 70m나 되는 바윗덩어리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약한 악취까지 풍겨 큰 문젯거리였다. 신문에서는 그 골칫거리 바윗덩어리를 [우주의 배설물(똥)]이라고 규정했다.
바람을 타고 다니는 냄새 때문에 주민들은 고통스러웠다. 사람들은 향수를 뿌리거나 방독면을 쓰고 다녔지만 악취는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파리들도 손절하고 도망갈 정도였다.
어느 과학자가 피부를 투명하게 만드는 연구를 했고 동·식물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는 성공을 거두었다. 장미, 참나무, 개구리, 쥐 등의 생체 피부를 투명하게 만드는 데 성공 후 이 과학자의 다음 실험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다. 궁극에 인간의 피부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이 실험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실험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밤, 과학자는 자신을 피 실험자로 하는 실험에도 성공을 했다. 투명해진 살갗을 통해 오장육부가 다 보인다. 거울을 통해 본 자신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고, 그 중에서도 눈이 가장 무서웠으며 그 외의 장기들은 살아있음을 알게 해주도록 팔딱거린다.
나무를 통해 본 삶과 존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는 단순히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무를 통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리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나무의 생태와 생명력,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나로 하여금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자주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 집 마당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 아래서 뛰놀던 나는 그저 나무가 주는 시원한 그늘과 감나무 열매를 좋아하는 아이였을 뿐이었다.
베르베르의 소설적 창의력, 창작력이 극에 달한 단편집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엉뚱한 전개가 많긴 하지만 소재와 배경을 토대로 매우 재미있는 글들을 많이 써냈다. ‘내겐 너무 좋은 세상’도 짧지만 매우 인상 깊었는데 우선 먼 미래라고 생각이 안 될 정도로 인공지능이 하는 일들이 매우 많았다. 요즘 회사에서든 가정에서든 인공지능을 많이 쓰는 추세가 확실히 돋보이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그렇게 살기 좋은 마당에 뤽은 갑자기 이상한 강도에게 휘말린다. 결말이 다소 엉뚱하지만 편한 시대에 인공심장을 달고 있다는 것, 그것도 나름 신선하게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여자의 말을 해석을 하면 인공심장 같은 걸 달고 있으면 인간답지 못하다, 사랑도 못한다, 이렇게 이해가 되었다.
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 능력은 저자의 특기라고 할 만 하지만 솔직히 다 읽고 보면 그냥 신선한 소재에 너무 기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단편선이라서 확확 넘어가는 맛이 있지만 ‘응?’ 이러고 끝나는 작품도 적지가 않았다. 특히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은 그냥 기계 문명에 대한 단상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네 안에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그러니 네가 하는 일은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배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은 유명한 의사인 귀스타브 루블레 박사의 아버지가 그에게 한 말이다. 경험을 쌓는 일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귀스타브 루블레는 누군가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이다.
모든 게 애초부터 자기 안에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자, 방안에 틀어박혀 명상만 하고 다른 일을 하지 못하며 사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아내는 그의 생각과 반대로 학교교육을 통해 사는 법을 배웠다고 믿는다. 대부분이 그녀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귀스타브 루블레는 이미 방에 가만히 있었어도 살아가는 방법은 터득될 거라고 여긴다.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배운 게 세계여행하면서 배운 것보다 더 많다는 남편을 아내는 납득하지 못한다.
짧고 딱 끊고 넘어가는 편이라 단편소설집 치고 읽기는 편했다. 그런데 좀 어디서 본 거 같기도 하고 글, 소설로서 수준이 그렇게 높았냐 하면 명성에 비해서 그건 또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내겐 너무 좋은 세상’에서는 완전 생활이 인공지능, 기계 문명에 잠식이 된 환경이 제시된다.
강도의 역할이 이해가 안 된다. 인공지능 없앤 환경이 더 나았다고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면 왜 하필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었다는 점을 마지막에 작위적으로 제시했을까 아쉬운 느낌도 들었다. 시사하는 바는 현대인에게 나름 있다고 보나 그래도 소설로서는 좀 뜬금 없게 느껴지곤 했다.
‘6월이다.’
이 말은 2003년 6월 초판 인쇄된 베르나르베르베르의 「나무」라는 단편소설집에 수록된 「바캉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다. 20년이나 된 소설책을 책꽂이에서 꺼낼 때에도 이런 문장이 있는 소설이 있는 줄을 몰랐다. 20년 전에 제대로 안 읽은 모양인지 모든 소설이 생소하고 낯설었다. 아무리 재미있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해도 읽는 사람의 상황이 읽을 여건이 되지 않으면 죽어도 안 읽히는 것이 책이기도 해서 그런 상황이었는지 몰라도 20년 째 제대로 읽지 못하고 책꽂이에 재워 두고 있던 소설을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