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테마로 읽는 세계의 명단편『광인일기』. 고골리, 모파상, 루쉰의 동명 소설《광인일기》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유고《어느 바보의 일생》을 새로운 문체와 문장으로 번역하고, 김동인의《광염소나타》를 원문 그대로 수록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들의 ‘광기’어린 눈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처음 책을 펼쳤을 때 번역 특유의 어색함을 느낀 적이 있다. 그 순간에는 무언가 부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그래도 한 문장씩 읽어나가며 이상하게 빠져드는 느낌이 있었다. 고골리의 글에서 엿보인 혼란은 조금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광기의 속성을 미리 알고 있었는데도 머릿속에 그 내용이 또렷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작가가 노린 흐릿함이었을 것 같다.
루쉰의 글로 넘어가니 언어의 무게가 더 강해졌다. 낯선 표현이 더 많아 어지러웠다. 미묘한 충격이 일었다. 독자가 소설 속 주인공의 심리를 아주 깊은 곳에서 체험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한편, 글에서 중국 사회의 배경이 엿보였다. 개인의 광기라기보다 집단 속에서 미묘하게 작동하는 구조로 느껴졌다. 계속 읽어나가다 보니 다른 작가들과 다르게 루쉰 특유의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다음은 모파상의 글이었다. 전체적으로 문체가 부드럽고도 어둡게 물들어 있었다. 문장 흐름이 평온해 보이다가 막판에 감춰진 음울함을 내뿜었다. 읽어갈수록 사람의 정신이 옅은 안개 속에서 헤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몽롱함이 거부감보다는 묘한 매력을 주었다. 단어 선택이 예리한 칼처럼 날카롭다는 생각도 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은 읽는 이에게 음습함을 던져줬다. 그러나 그 분위기가 거부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물들의 숨 막히는 심리, 그리고 기묘한 결말이 더 많은 의문을 낳았다.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이 혼재하는 느낌이었다. 문체가 간결하면서도 예리했다. 마치 절벽 끝에서 허공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글을 마주하게 됐다.
김동인의 글까지 포함해서 책 속의 다섯 편은 작가마다 색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 고골리의 광기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의 뒤틀린 시선이었다. 모파상은 감각적인 필치로 정신의 틈을 끈덕지게 파고들었다. 루쉰은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서, 사람들을 죄어오는 시선과 두려움을 글에 담아냈다. 아쿠타가와는 예민한 서술로 사람의 깊은 내면을 흔들었다. 김동인은 원문 그대로의 생생한 표현으로 독자를 옛 시기로 이끌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광인은 타인을 잡아먹는 식인종을 묘사한 것에 가까웠다. 사실 우화 같은 이야기로 자식이 자신의 살을 뜯어 부모에게 공양한다는 건 매우 유명한다는 것인데 이 소설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었다. 가족을 잡아먹는 게 당연했고 자식도 부모에게 공양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소설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 책에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그 원인이랄까 기본 이유는 ‘예전부터 그런 습관’이 있었으니까 이런 것이다. 즉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비인권적이고 야만적인 일에 대해서 생각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 예전부터 했으니까 이런 무감각한 허무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아큐정전에 맞먹을 정도로 조금 내용이 심각하다. 아큐도 정신적으로 상당히 트러블이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광인일기의 ‘광인’도 말 그대로 정신적으로 이상이 상당히 있는 사람이었다. 광인일기는 그 내용이 단순하고 비판적이기까지 하다. 광인이라고 보는 것은 결국 중국 자체였다.
당시 중국 상황, 과학을 경시하고 사는 세태. 발전 없는 봉건적 사회상. 그것에 염증을 느껴 광인으로 묘사한 것이다. ‘나’라고 하는 인물은 계속 남을 경계한다. 자기가 살해 당하고 잡아 먹히고 말 것이라는 엉뚱한 피해망상적 모습을 보인다. 다만 이 피해망상적인 것이 시대를 이상하게 보려고 한 장치 같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루쉰이 중국인들을 계몽시키고자 문학작품을 썼다고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최초의 현대 백화문 소설인 광인일기를 통해 루쉰이 어떠한 방법으로 당시 중국인들을 비판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고 계몽하려 하였는지 알 수 있었으며, 왜 그가 ‘문학’을 그 도구로 사용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루쉰은 「『중국신문학대계』 소설2집 서」(『차개정잡문이집』)에서 이 작품이 “가족제도와 유교의 폐해를 폭로하는 의도가 있었다” 루쉰 지음, 조관의 옮김, 『루쉰의 소설』 134p, 마리북스
고 말했다. 나는 루쉰이 말하고자 한 중국 봉건제도와 유교 제도의 폐해, 그리고 낡은 관습과 가족제도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소설에 나타났는지 집중했으며, 이를 통해 루쉰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
소설 <광인일기>는 액자식 구성으로, 등장인물 ‘나’가 친구인 ‘모군’ 형제 중 형을 만나 동생의 일기를 건네받음으로서 그 내용을 알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생은 과거 피해망상증 환자였는데, 당시 일기를 2권 작성했다. 일기의 서사는 자신의 형을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이 식인 풍습에 길들여져 있고, 자신이 식인 풍습에 반대하기에 그들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는 망상으로 흘러간다. 자신은 식인 문화로부터 깨끗한 존재라고 생각하여 형과 마을 사람들에게 식인 문화를 버려야 한다고 간절히 호소하지만, 결말에 이르러선 자신 또한 식인 문화의 산물임을 깨닫고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신 식인을 해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주목하며, 이들을 식인 문화로부터 구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서사는 마무리된다.
아큐정전, 광인일기 등으로 유명한 루쉰. 이 책은 이주노 교수에 의해 해체되었다. 한국에서만 하루에 200권 이상의 책이 출판된다. 그중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은 그것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며, 이유 없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있는 것은 드문 일일 것이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책 외에도, 많은 좋은 책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그 책들 중 많은 것들이 빛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조금 어렵고 지루해 보이는 주제인지 그 뒤에 진주 같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이 넘친다.
“오늘 밤은 달이 밝다. 나는 30년동안 혼미 속에서 살아왔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소설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개의 시선 때문에 화자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자는 자신을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개를 무서워하고, 개가 자신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작자는 개를 폭력성의 상징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또한 루쉰은 소설의 전개과정에 달과 해를 중심으로 전개하는데, 달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화자가 처한 상황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화자는 달의 변화, 개의 시선, 조귀영감 및 타자들의 시선을 통해 화자의 불안함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아이들까지 내게 욕하는 것 같았다. 나는 분통을 참을 수 없었다. 밤에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소작인과 형이 나누는 대화에서 ‘식인’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에 있을 때 중국친구를 따라 청강했던 문학 수업이 떠오른다. 중국에 온지 한 달도 안 되었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작가 노신에 관한 이야기들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외국인이고 청강 수업이어서 자주 수업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중국친구말로는 한 학기 내내 노신에 대해서만 공부한다고 했었다.
지나간 일이지만, 학부 수업에서 한 학기를 노신 한 작가만 공부한다고 했을 때, 국문학을 복수전공하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놀라웠다. 과연 얼마나 중국문학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기에 한 학기 내내 수업을 할 수 있는지 말이다.
문학세미나 수업을 통해, 그리고 광인일기를 읽으면서 여러 배경지식들을 찾다가 노신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는데, 중국 최초로 현대소설을 쓴 작가로 중국 현대문학계를 이끈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근대화의 과도기에 문학을 통해 국민을 계몽하고 중국을 근대화 하는데 일생을 바쳤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미치광이이다. 미치광이가 쓴 일기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이 작품을 고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불안하고 분열적인 주인공의 모습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가 하는 생각들이 독특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오래된 외투를 입은 하급관리 포포리신은 길에서 우연히 상사의 딸인 ‘소피’를 마주쳤다. 그는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고, 그녀에게 직접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그녀를 미행하고 그녀의 집 근처를 서성였다. 그것을 눈치 챈 과장은 분수에 맞게 행동하라며 빈털터리에 빵점짜리라고 그를 모욕했다. 포포리신은 과장과 같이 그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낮잡아 표현하며 자신을 부러워한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방어적인 생각을 가지고 무시를 해버리는 그의 태도가, 누군가 자신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함부로 대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타난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조금은 공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