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들인 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는 모습을 집에 비유하여 묘사하고 있다. 서재, 주방, 침실 그리고 벽장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을 모두 예수님께 내어놓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1981년에 출간된 책을 따스한 느낌이 도는 일러스트와 함께 새롭게 꾸몄다.
우선 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은 무교인이다. 평소 종교를 가지는 것에 대하여 딱히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지 않았고, 주위에도 그리스도인이 꽤 많았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생각과 달리 이해가 잘되지 않고, 낯선 기분이 들어 하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가르침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계속하여 책을 읽고, 또 읽었고 끝내 나의 마음 속 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발짝 들어오신 듯했다.
이 책은 나의 마음의 방들을 집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은 로버트 멍어(Robert Boyed Munger)의 설교를 누군가가 잘 정리해서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새로 나가게 된 교회의 새신자 교육을 마치고 나니 선물로 받게 되었다. 옛날에 읽은 기억이 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해져서 다시 책 표지를 본 순간 잊고 지내던 오래 된 친구를 만난 것 같이 기분이 좋았다.
내가 살고 있는 호주의 퍼스에서는 사람들이 책을 한 권씩 들고 다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해변가에서도 책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서 나도 책을 받은 김에 그들의 흉내를 내 보기로 했다.
학교에 가는 기차 안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교양 있는 그림 속에 들어가 그 분위기에 녹아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교양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은 덤이었다. 한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 느낌이 겨우 20분 정도 밖에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을 읽고 이 책의 내용과 내 생각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주님께 내 마음의 집을 소개해 드리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서재, 주방, 거실, 작업실, 오락실, 침실 그리고 벽장을 차례로 소개한다.
첫 번째는 서재의 마음의 방이다. 주님과 함께 둘러본 가장 첫 번째의 방이다.
‘이곳은 깨끗하지 못하고 복잡한 상념들로 사로잡힌 나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기꺼이 그분은 깔끔하게 정결하게 그 방을 정돈해주셨다.’ (p.6-7)
두 번째는 주방의 욕심의 방이다. 이곳은 내가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으로 정신적인 것이 아닌 돈, 학위, 증권, 명성과 같은 물질적인 것으로 가득 채워진 방이다.
‘이러한 물질적인 것으로 가득 찬 음식을 좋아한 나는 주님께 이 음식을 차려놓았지만 드시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오히려 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의 양식과 같은 참 만족이 무엇인지 알려주셨다.’ (p.9-10)
‘세상에 신이 존재하는 가’에 대한 물음은 단순히 과학적 지식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신의 존재는 우리가 고대부터 끊임없이 토론해왔던 주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소망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그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그 존재가 신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신이 없다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누구에게 의지하고 있단 말인가. 애초에 어떤 이가 존재하였으니 자연스럽게 사람들도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은 이 의문에 대한 나의 답을 더 구체화를 시켜주었다. 처음에 하나님이라 한다면 전지전능한 신이자, 구원 이 두 가지만 막연히 떠올렸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은 너무 단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서재를 마음의 어지러움으로 비유하는 것을 시작으로, 예수 이전의 죄악의 습관들을 담고 있는 벽장까지의 공간이동으로 이루어진다.
서재 ,주방
현재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가치는 사랑과 균형이다. 내 삶의 궁극적 목표인 따뜻한 행복을 위해 사랑과 균형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이나 타인으로부터의 인정도 나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지만 행복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사랑이라 느꼈다. 사랑 중에서도 자기애, 즉 스스로 자기에게 주는 사랑이 확실하고 지속적인 행복의 근간이라 생각한다. 자기애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타인에게 의존하는 사랑은 불안정하다. 자기애가 없는 타인에 대한 사랑 또한 불가능하다. 부지런함과 게으름, 믿음과 의심, 현실과 이상과 같이 대립하는 특성의 사이에서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지킬 때도 나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삶에서 균형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
작업실
결혼 전에는 병원에 갈 일이 많지 않아 간호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지만, 결혼 후 출산이라는 과정 때문에 병원에 입원할 기회가 됐는데, 이 때 의사의 뒤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4년 전, 출산 당시 28시간동안 물 한방울도 먹지 못하고, 정신이 아득한 채 출산의 고통을 느꼈던 경험이 있었다.
모두가 예민해져있는 환경에도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고 분만과정의 시작에서 끝나는 시점까지 산모케어와 보호자의 안정에 집중하시는 간호사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나도 나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스한 손길과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어떤 간호사가 되고 싶은지, 어떠한 간호사가 되어야할지 고만하던 중 교수님이 내주신 꿈과 목표를 위해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하나 곰곰이 생각해봤다. 간호학을 배우는 학생의 입장으로 일반인들은 간호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찾아보았다. 간호사의 이미지에 관한 2019년도 설문조사 결과, 일반인들은 사회통념상 간호사에게 푸근한 모성의 이미지를 기대하나 실제로는 쌀쌀맞고 감정이 없는 얼음 여성의 이미지를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방
(인용 구절) 나는 돈, 명예에 대한 욕구가 많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저런 요소들이 충족되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수준에서 즐기면서 해야 하는데 요즘 욕구가 욕망으로 변질되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에 만족감이 별로 들지 않고 계속 탐하려고 한다. 또 경쟁이 과열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필요 이상으로 냉정해지고 이기적이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돈과 명예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고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선한 마음에 에너지를 쏟아야겠다고 반성하게 되었다.
거실
(“여기는 정말 좋은 방이구나. 이방에 자주 오도록 하자. 은밀하고 조용하니 대화하며 함께 교제를 나눌 수 있겠구나.”-11P) 최근에 나는 휴식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도 초조하고 불안해서 잘 쉬지 못하겠다. 내가 휴식을 가지는 동안 도태될 것 같다는 마음 때문에 계속해서 무리를 했다. 이로 인해 몸살이 나 되려 결과가 안 좋았던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을 읽고 솔직하게 글을 쓰려고 한다. 충분히 거짓을 보태고 좋은 말로 글을 써서 제출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내 마음의 그리스도의 집’과제를 시작하려고 책을 폈지만, 한 문장을 읽고 총 몇 페이지로 구성이 되어있는지 살펴보았을 정도로 나에게는 심적으로 읽기 힘든 책 이였다. 페이지를 확인하고 처음 들었던 생각이‘맙소사... 25페이지나 되다니’ 이었다. 책의 페이지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나의 마음이 지금 이 책을 읽기에는 너무 닫혀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첫 번째 문장부터 다시 읽어 내려갔다. 한 페이지를 읽었을까.. 오늘은 이 책을 읽을 좋은날이 아니고 아직 나의 마음이 읽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서 빠르게 포기하고 이 작은 책을 접어서 책상위에 올려놨다. 책을 덮은 지 4일이 지나서야 나는 책을 펴봤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일부러 책을 읽어 보려고 생각했다.
만약 내 마음의 집을 주님께 구경시켜 드려야 한다면…….
아니, 나의 마음을 주님과 함께 하나하나 보아야 한다면…….
난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과 같이 숨을 곧을 찾아 숨어있을 것이다.
서재.
나의 서재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관심 갖고 볼 필요가 없는 잡지들과 만화책들이 있다. 성경에는 주일만 사용이라는 표시가 보이지 않게 붙어 있는 것 같다.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날들…………. 그것들을 성경보다 많이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경보다 가까이 하는 날 발견하게 되었다. 주님은 얼마나 속상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