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현대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코메니우스의 대표적 저술 <대교수학>을 번역한 책. 특별히 교사가 되는 일의 막대한 책임감과 특권을 깊이 실감하게 하는 고전이다. 실물 또는 현실과 분리된 모든 추상적 교육은 절대로 허용하면 안 된다는 코메니우스의 반복적인 역설은 개념이나 원리 학습을 위해 효과 있고...
이번 대교수학이라는 책은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 기독교 고전교육과 연관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기독교에 기반한 고전 교육 더 나아가 인간 자체에 대한 교육에 관해 저술된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저는 세 가지 주제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인간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신 후에 그가 동방에 만드신 기쁨의 낙원에 두셨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이 낙원을 돌보고 가꾸게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인간 그 자신이 그의 하나님을 위한 기쁨의 정원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책은 교육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인간이라는 대상이 어떠한 존재인지 성경을 통해 기술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Ⅰ. 서 론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이 치유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심리학이나 정신상담은 문제를 발견할 뿐 근본적인 치유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내면의 치유는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육에 있어서도 단순한 지식과 정보의 기계적 전달은 인간에게 참 행복과 만족을 주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코메니우스의 주장처럼, 하나님 형상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하나님 중심의 교육만이 인간을 참 행복과 만족으로 이끌 수 있다고 본다.
1. J. A. Comenius의 생애와 사상
코멘스키(Komensky)라고도 하며 보헤미아(Bohemia)의 교육학자이다 모라비아에서 출생했고 빈곤한 탓으로 늦게 16세 때 취학하였으며,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 30일 전쟁 때문에 1632년 폴란드의 리사로 피신했고 영국•스웨덴•서(西) 프로이센(Preussen)•헝가리 등의 초청을 받아 학교제도 개혁을 연구했다. 1654년 리사로 돌아갔으나 전쟁으로 인하여 다시 피신, 독일의 각 지방을 떠돌다가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하였다. 루소(Rousseau), 페스탈로치(Pestalozzi)의 선구자로서 자연주의의 교육을 제창했고 교육 분야에서 동 시대의 철학자이며 사상가인 베이컨이나 데카르트가 과학 및 철학에서 이룩한 업적에 견줄 만한 공헌을 남겼다. 그의 교육학설은 1632년경에 체코 어로 쓰인 《대교수학(大敎授學 : Didactica Magna)》, 《세계도해(世界圖解 : Orbis Pictus ; 1658)》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교육학설의 원리나 방법은 근대적이지만 표현 형식에는 당시의 종교적 성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그가 완전한 지상(地上)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인간의 첫째 임무라고 주장하면서도 궁극적인 목적은 천국에 들어가 신의 세계에서 영원한 행복을 얻는 데 있다고 서술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코메니우스의 모든 교육사상과 방법론은 모두 그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메니우스는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이 본성이 왜곡되기는 했으나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소망에서 그의 교육사상이 출발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형상회복이라는 인간의 일생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코메니우스는 인간에 내재해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질서에 조화를 이루며 인간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음으로써 온전하게 발현되는데 인간의 불순종에 의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면서 죽음과 멸망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치유의 방법을 마련하셨고 그것을 통해 자신과 화해하게 만드셨다. 코메니우스는 타락한 인간을 소생시키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올바른 교육 외에 없다는 것을 성경말씀을 근거로 논증하고 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과의 인간의 관계회복은 인간이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의존하는 신앙과, 자연의 모든 사물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활동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신앙과 지식의 씨앗은 이미 인간 속에 있으며 이것은 오직 교육을 통하여 하나님의 질서와 뜻에 따라 성장해 나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도 역시 자연의 법칙과 질서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
코메니우스의 “대교수학”은 단순한 교수학이라기보다는 그의 포괄적인 교육철학과 아이디어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걸작이다. “대교수학”은 총 3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안에 나타난 사상들은 근대 이후의 체계적 교육이론들의 거의 모든 기본 물음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제1장부터 제6장까지는 교육의 목적과 내용을 다루고, 7장에서 10장은 학교교육의 필요성과 보편교육을 설명했으며, 11장~12장은 전통적인 학교를 비판하고 그 개혁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주장했다. 13장에서 19장까지는 교수법 확립의 필요성과 그 일반원리를 논했으며, 20~26장까지는 각 교과영역별의 교수법을 논술했으며, 27~31장까지는 학교제도와 그 관리 및 학교조직론을 상술하고 있다.
Ⅰ. 서 론
이 책을 처음 접하였을 때에 표지를 보면서 왜 ‘대교수학’일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였는데, 사실 대교수학이라는 책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수학과 관련된 책이라고 생각을 하였고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큰 교육학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큰 교육학이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그리고 평소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는 필자의 성격 때문인지 과연 이것을 잘 이해하면 남들 앞에 서는 것이 좀 자연스러워질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생겼다.
처음 책을 넘기면서 대교수학의 주목적을 보게 되었는데 대교수학의 주목적은 다음과 같다.
<중 략>
코메니우스는 교육이란 영원의 삶을 위한 준비로서 이 준비는 참 지식을 얻고 덕을 실천하며 심오한 경건에 이름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고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모든 방법으로 가르침”으로써 나타나는 하나님의 형상 회복과 자연 세계의 질서 속에서 선하고 참되며 의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인간 구원을 교육 목적으로 설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인종과 성, 계층과 국적, 신체 장애와 경제 규모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동일한 솜씨에 의해 창조된 똑같은 영원의 상속자이므로 인간 구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학교에 취학하여야 한다는 `전 민중 취학제`를 주장하였다.
<중 략>
지식에 대하여서 더욱 명확히 아는 교육자가 되어야 되겠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교육받는 것을 사랑하는 학습자가 되어야 하겠다. 아직 대학생인 내가 벌써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든다. 그만큼 더 열심히 차근차근 배움의 시간을 가지고, 많은 고민과 준비의 시간들을 가져야겠다. 대교수학의 저자는 또 교수법이 더 좋아지기를 기대하며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도 그의 모습을 본받아서 더 좋은 모습들을 후손에게 알려주기 위하여서 많은 것들을 고민하여보아야 할 것이다
교육이란 단지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한 인간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며, 한 생명의 시작에서부터 그 생명이 다할 때 까지 외부에서 개입할수 있는 하나하나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코메니우스는 “모든이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곧 모든 생명에 대한 교육을 의미하며, 모든 생명을 창조한 신, 곧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 할수 있겠다.
그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 살고 있다면 그 어떤 생명이라도 소중하며, 세상에 의미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며, 태어나 자라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는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잠재력을 펼쳐주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메니우스의 『대교수학』은 딱히 어떤 내용이라 집어 말하기 힘든 책이다.
교육은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백년지대계라고도 불리며 예전부터 중시되어 왔던 우리의 전통을 되돌아 볼 때, 교육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사안인 만큼, 많은 교육자들의 연구가 있어왔으며, 교육에 종사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 받아 왔다. 그리고 교육에 대한 이슈도 끊임없이 가십거리처럼 등장하고 있다.
교권이 붕괴되고, 참교육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교육개혁은 끊임없이 자행되고, 그 속에서 피해 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교육학을 4년 동안 배웠고, 남들이 보면 교육에 대하여 뭔가 좀 알고 있을 것 같은 내가 직면하는 것은 기초적인 질문이다. 교육은 무엇인가. 참교육을 위한 방법은 있는 것일까. 그게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하여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많은 교육서들이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이 이렇게 파행으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아이들은 아주 이상적인 인간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답은 없다. 그저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선생님이 되기를 꿈꾸며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도 이 답이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 시간, 옛 교육자의 지혜를 빌려볼까 한다. 많은 이들은 역사를 배우는 목적으로 제일 첫 번째로 ‘교훈을 얻기 위한’ 목적을 꼽는다. 현대의 교육과는 무척 다른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서 기초적으로 쓰인 것이라며 경시하기 쉽지만, 우리는 지금 어쩌면 그 기초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근대 교육자라고 불리는 코메니우스의 대교수학을 통하여 그의 인간상, 교육관, 교수법 등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자라왔고, 신앙과 교육을 접목하는 기독교 교육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더욱 공감이 가는 책이었다.
우선 그의 인간관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 중에 가장 높으며, 가장 절대적이며, 가장 탁월한 존재라는 이 한 문장으로 인간을 정의내리고 있다.
서언
하나님은 아이들에게 그들을 보호할 천사를 주실 뿐 아니라 그들의 부모를 교사로 세우시고, 아이들을 주의 훈계와 교양으로 가르치도록 그들에게 명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른 모든 것들을 아이들이 일상의 모범을 통하여 유혹받으며 멸망하지 않도록 진지하게 가르치신다.
제 1 장 인간은 피조물 가운데 완전하고 탁월한 최고의 인간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마주치는 하늘의 음성은‘너 자신을 아느냐?’라는 말보다는‘영원한 지혜와 복의 근원인 나 하나님과 나의 피조물, 나희 형상, 나의 기쁨인 너인 인간을 아느냐’라는 말이다. 항상 인간 교육의 직무에 전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조건 모든 사람들이 이 존엄성과 자신의 훌륭함을 잊지 않고 살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힘을 이러한 고귀한 목표에 이르도록 하는 데 사용하게 해야 할 것이다.
제 2 장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내세의 삶에 있다.
우리의 상태는 이 현세의 삶의 실체가 우리의 목적을 아직 성취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현세적인 삶은 식물적이고, 동물적이고 지성적이거나 록은 영적인 세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세적인 삶에서 행하고, 고난받는 모든 것은 세상에서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에 이른 것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전 자아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그가 직접 모범을 보이셨고, 그가 여기 세상에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여정을 끝낸 후에 영원한 집으로 건너가기 위해 세상에 머무르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제자인 우리 또한 세상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기 위해 걸아야 할 것이다.
제 3 장 현세의 삶은 다만 영생에 대한 준비이다.
현세적인 삶은 다른 목적을 향해 있기 때문에, 실제로 하나의 삶이 아니라 오히려 참되고 영원히 지속되는 삶을 위한 서곡으로 불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자신과 세상과 성경을 통해 증명되었다. 우리 자신을 관찰해 보면, 모든 것이 단계적으로 진척되어, 그때그때마다 앞서가는 것이 뒤따라가는 것의 길을 준비한다. 가시적인 세계를 눈여겨본다고 하더라도 이 세계 역시 우리가 인간 역사의 지속적인 발전과 육성 그리고 정신적인 훈련에 사용되도록 창조되었다. 세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