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닫힌 문 뒤에서,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처절한 심리 싸움이 시작된다!굿리즈 최고의 데뷔 소설상과 최고의 스릴러 소설상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인정받은 B. A. 패리스의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 모두가 부러워하는 화려한 부부 잭과 그레이스. 남편 잭은 승률 100%를 자랑하는 유명...
그럼에도 에스터의 개입과 의외의 도움은 의미 깊게 느껴졌다. 에스터 외의 다른 조연들이 그레이스에게 보이는 무관심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인물 다이앤을 비롯해 작중에 등장하는 조연들은 에인절 부부를 동경하고 부러워할 뿐 누구 하나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잭과 그레이스의 연기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은 소설 전개의 편리함을 위해 조연들을 멍청하게 만드는 작가의 게으름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들을 보며 현대사회의 피상적인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개인 공간 확보와 프라이버시 존중이라는 이름의 무관심을.
<중 략>
결혼이란 게 신기한 것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가 되지만, 사실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것은 지극히 일부분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서로를 알아가고 익숙해진다고 하지만, 평생 죽을 때까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과 미처 접근하지 못한 비밀이 있을 수도 있다. 한집에서 함께 살지만, 심적으로는 지구 반대편에 거주하는 사람보다도 먼 사이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자다가 가슴에 칼이 꽂히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그레이스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그러한 두려움과 갈등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남편과 아내. 한 몸과 같은 연합의 관계이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의 씨앗이 그 둘 사이에 심어져 있다.
이 책은 마치 한 편의 범죄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장면 하나 없이 책을 읽기 시작한 독자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고는 절대 놔주지 않는다. 일반적인 독후감이라면 책이 대략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소개해야 하겠지만, 이 책은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고 읽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그래야만 이 책이 주는 재미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그래도 명색이 독후감이니 이 책의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간략하게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주인공은 백화점에서 일하는 그다지 잘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30대 여성이다. 거기에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다운증후군 여동생을 부모 대신 돌봐야 하는 입장이라 결혼도 쉽지 않다.
B.A 패리스의 소설인 원제 ‘Behind Closed Doors’는 ‘은밀히, 비공개로’라는 뜻으로 ‘밀실회담을 나누다’ 등에 주로 쓰이는 표현이라고 한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이중적이다 못해 악마성까지 드러내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악마성을 드러내는 대상이 방금 결혼식을 올린 신부라면 좋은 사람이라 확신하고 사랑해서 결혼식을 올린 상대가 사실은 사이코패스이고 자신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포로와 같은 삶 속에 던져졌다면 어떨까?
서른두 살의 그레이스는 잭과 결혼 전 백화점에서 상품 구매 담당자로 일하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오가며 과일을 구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레이스의 가족은 부모님 그리고 자신과 열일곱 살 차이가 나는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는 여동생 밀리가 있다.
2019년의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는 수많은 책들 중 조금의 눈길만 간다면 책을 선택하곤 했으나 마지막 책은 신중하게 선택했고, 그 만큼 기대감도 컸다. 너무 큰 재미를 바랐던 탓인지 사실 초반부에서는 예상과 달리 압도적인 몰입감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2017년 발표작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휴대전화 없이 사는 점, 잭 엔젤이라는 인물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점, 마지막 그레이스가 수면제를 잭의 술잔에 담는 장면에서의 묘사가 손쉽게 이뤄진 점 등은 책의 완성도를 다소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와 외국의 정서적, 문화적 차이는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후반부 밀 리가 몰래 숨겨놓은 수면제를 그레이스에게 주면서부터는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다. 처음에는 주인공들의 과거와 현재를 분리시켜 진행된 책의 내용으로 인해 다소 혼란함이 있었지만, 결국 책의 끝으로 갈수록 과거와 현재가 만나게 되는 구성이 긴박감을 더욱 증폭시켰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생각해보면 남편인 잭 엔젤은 거의 변수가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육체·정신적 한계의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한 그레이스, 다운증후군 환자지만 예상보다 훨씬 영리했던 밀리, 놀라운 감각으로 잭의 문제를 간파한 에스터의 힘으로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잭의 왕국이 무너지게 된다.
모든 것이 꿈이었다. 훤칠한 외모에 배려심 많고 자상했던 그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사이코패스였다. 그것도 철저하리만큼 지독한 사이코패스. 그의 이름은 잭 연예인 못지않게 잘생긴 외모, 자상함과 매너를 갖춘 그는 가정폭력으로부터 고통받는 여인들을 돕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다. 그런 잭을 그레이스는 속으로 사모하고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꽁꽁 숨긴다. 그녀에게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어린 여동생 밀 리가 있다. 밀리를 평생 돌보며 살아야 하는 그녀에게 결혼은커녕 연애도 언감생심꿈같은 일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게 된다. 공원 한복판에서 밀리는 혼자 춤을 추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그런 밀리를 쳐다보며 신기한 듯 웃으며 신기한 듯 수군거린다. 그녀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밀리를 데리러 뛰어가려는 그 때였다. 잭이 밀리에게 다가가 손등에 키스를 한 후 같이 춤을 추는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