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룬 『단순한 열정』은 글쓰기의 소재와 방식, 기억과 기록을 탐구한다. 이 소설은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라는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반 감정소설’에 속한다. 에르노는 발표할 작품을 쓰는...
책의 저자 에르노는 작가의 특성상 자신의 경험을 주로 묘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은 자신의 경험을 지문처럼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 남몰래 묻히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움을 넘어 실화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사기 전 미리보기에서 처음 보았을 때 아름다운 문장에 집착하던 나에게 조금 시적으로 다가온 구절이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적인 면에서 매력적이냐고 묻는다면 그 부분이 애매하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아 사전 배경 없이 그저 읽고 싶은 상황을 바탕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는 주로 자전적 소설을 발표한 프랑스 소설가로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나는 그의 소설을 한 번쯤은 읽고 싶을 뿐이었다. 이 책의 말미에는 그의 연례 보고서가 삶의 흐름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나는 그에 대해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이 책들은 그녀의 대표작들 사이에 낀 특별한 책이다. 일종의 관음증적인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아무튼 그녀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그녀 작품들과 결을 같이 한다.
"이것은 전기도 아니며, 소설도 물론 아니다. 아마 문학,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의 그 무엇일 것이다." - [한 여자 중에서]
문단에서는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다룬 작품들과 [칼 같은 글쓰기] 등을 극찬 하면서도, 같은 자서전적인 글쓰기인 이 책에 대해서는 여전히 냉담하다. 세상은 그녀에게 '오토 픽션'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사회적 계급성과 그 계급들 사이의 벽을 대변하고 허물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쓸 뿐이다.
평소 그녀는 "장르는 아무런 중요성도 지니지 않는다." 고 말했고, 제도화된 문학 장르의 구분이나 글쓰기 형식에 갇히는 것 자체를 경원해 왔다. 그녀에게 문학이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장르적 구분과는 다른 어떤 지점에 존재하는 글쓰기 형식이다.
"나는 강렬한 감동을 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새로운 것을 향해 열리고 확장되는 듯한 진한 감동 말입니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어떤 새로운 형태에 대한 탐구" 속에서 존재하는 ‘그녀의 글쓰기 활동 자체’이다. 그 글쓰기가 일으키는 열정과 감동, 비판적 문제 제기이다.
“강렬한 감동을 주고, 생각이나 꿈 혹은 욕망을 열어주고, 때로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책들이 있을 뿐" -칼같은 글쓰기 중.
우리 속의 얼어붙은 그 무엇을 깨뜨리는 도끼 같은 책-프란츠 카프카-, 아름다움과 전율, 경이를 불러일으키는 책들이 있을 뿐이고, 그것이 바로 문학이고 그의 글쓰기일 뿐이다.
그러니 그녀의 삶에서 ‘사랑의 열정’은 쓰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랑은 열정으로부터 솟아나든가, 그렇지 않으면 결코 생겨나지 않든가, 둘 중 하나인 것이다.-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중에서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프랑스의 아니 에르노였다. 1974년 ‘빈 장롱’을 통해 등단한 그녀는 ‘경험하지 않은 허구는 쓰지 않는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날 것 그대로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내어 독자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받는다. <단순한 열정>은 1991년도 작품으로 유부남과의 불륜을 다루고 있어 많은 논란이 되었다. 많은 논란이 되는 책이었지만 그래도 이 작품은 분명히 인간이 가진 열정에 대해서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책이 얇고 읽기가 쉽게 번역이 잘 되어있어 책을 펼친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루며 그 서술의 사실성과 선정성 탓에 출간 당시 평단과 독자층에 큰 충격을 안겨준 작품 ‘단순한 열정’은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 아니 에르노가 1991년 발표한 소설이다. 그녀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로, 사회·역사·문학과 개인 간의 관계를 예리한 감각으로 관찰하며 가공도 은유도 없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이룩해 왔다. 2011년 선집 ‘삶을 쓰다’로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회,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 바로 저자 아니 에르노에 대한 2022년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다.
이 얇은 소설 한 편엔 주먹만한 가슴을 마구 뒤흔드는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고해성사하듯 진지한 말투로 마지막 페이지 마침표까지 뚜렷하게 써나간다. 허구를 쓴 적 없다는 작가는 분명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소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도 '소설'이다. 허구와 경험 사이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작가의 글, 그래서 더욱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단순한 열정은 작가의 자기 고백적 소설이다. 이 첫 문장처럼 소설 속 주인공은 A로 지칭되는 한 남자와 관련된 것 외에는 그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A를 만나지 않는 시간은 그녀에겐 죽은 시간과 다름이 없고, 그녀의 시간은 오직 A를 기다리는 순간과 A와 사랑을 나누는 순간 이 두 가지로 나뉜다. 나는 그녀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A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A와 함께하던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의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던 것이다.
‘약속 시간을 알려올 그 사람의 전화 말고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 … 그 사람을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1. 줄거리
주인공은 작년 9월부터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는 일에 빠져 있다. 무슨 일을 하건 그 남자만을 생각하고 대화에서도 그와 관계된 화제에만 흥미를 보일 정도이다. 그는 유부남이어서 어쩌다가만 만날 수 있었고 그나마 몇 시간만 같이 있었지만 주인공은 세심하게 준비하며 그 순간을 기다렸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행복했지만 떠나고 나면 다시 불안해졌고 그와의 만남을 준비하면서만 불안을 잊을 수 있었다. 주인공에게 일상적인 일들은 모두 무의미해졌고 아들들도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와 만나면서 예술 취향도 달라지고 만남을 기원하며 선행을 하는 등 그는 주인공의 삶의 중심이 되었다. 그의 실수나 그와 함께 있다 타버린 카펫 같은 것까지 아름답게 보일 정도이다. 그는 동구 출신 외국인이라 문화적 장벽이 있었고 불륜의 특성상 편지나 선물 같은 것도 주고받지 못하는 등 제약이 많았으나 그런 제약 때문에 주인공은 더 그를 욕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