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22년에 발표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복수의 시점에서 동일한 사건을 그리는 내적인 다원초점 수법으로 쓴 작품이다. 살인과 강간이라고 하는 사건을 둘러싸고 네 사람의 목격자와 세 사람의 당사자가 고백하는 증언이 각기 모순되어 있기 때문에 진상을 파악하기가 매우 곤란하게 구성되어 있다.
덤불 속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한 나무꾼이 삼나무를 베러 뒷산에 올라갔는데, 산속 그늘진 덤불 속에서 시체를 발견한 것이다.
사법업무를 맡아보는 게이비시의 탐문결과 숨진 사람은 와카사 관청의 무사인 가나자와노 타케히로이며, 나이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원만한 성격으로 남에게 원한을 살 행동은 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에겐 아내가 있었는데 이름은 마사고,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두 사람은 와카서로 간다고 길을 나섰다가, 남편은 살해되고 부인은 현재 실종상태였다.
게이비시가 사건조사에 나섰을 때 가나자와노를 살해한 범인은 이미 관원에 의해 체포된 상태였는데 범인의 이름은 다조마루였으며, 여색을 밝히는 도둑으로 유명한 자였다. 다조마루는 체포 당시 가나자와노가 소지했던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유력한 살인 용의자다.
“인생은 한 줄의 보들레르만도 못하다.”
이는 과연 예술을 우러르기 위한 문장인가, 혹은 인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한 문장인가. 가부간 둘 다는 아닐 것이다. 보들레르ㅡ그러니까 예술, 아니면 인생, 양자 중 어느 하나를 채점하기 위한 문장임에 분명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내 어머니는 아들들에 대한 교육열이 남달랐다. 혹자들이 곧잘 떠올리기 십상인 소위 ‘빡공’하는 그러한 교육열이 아닌, 이것저것 재주에 대한 교육열이라고 표현함이 옳을 듯하다. 그 때문인지 나는 공부보다는 갖가지 재주를 가르치는 데에 보다 기를 쏟는 이상한(?) 초등학교의 교복을 입게 되었다. 사립학교라는 수식에 걸맞게 그곳은 학부모들 치맛바람이 잘 날 없는 전쟁터였고 졸업할 즈음, 140cm의 높이에도 머리가 닿지 않던 꼬마는 느꼈다. 이기적인 어른들이 많아! 그리고 훗날 이 생각은 차츰 대상을 넓혀가는 방향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작품소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대표적 단편소설로 한 남자의 죽음을 가지고 진실공방을 다투는 장면으로 구성되어있다.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증언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에고이즘, 자기 합리화하는 추악한 심리를 나타낸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라쇼몬’이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라쇼몬은 이야기가 시작하는 장소만 차용했을 뿐 내용은 덤불 속의 이야기와 같다.
<줄거리> 처음엔 나무꾼이 진술한다. 그는 덤불 속에서 처음 시체를 발견 한 사람으로 시체는 가슴에 칼을 찔려 죽어있었고, 칼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그 날 남자를 목격한 탁발승이 등장한다. 남자는 칼도 차고 활과 화살도 있었다고 증언한다. 세 번째로는 정보원의 진술이 이어진다. 그는 ‘다조마루’라는 도둑을 잡았고 시체가 가지고 있었다던 화살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조마루는 여자를 탐하는 도둑이라며 피해자의 아내를 걱정한다. 네 번째로는 노파가 나온다. 그녀는 시체를 확인하며 자신의 딸과 결혼한 사위라고 한다. 사
덤불 속에서 내가 생각했던 범인은 제 3의 인물이었다. 또한 자신이 첫 번째 목격자라던 나무꾼의 말이 진실이지만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와 달리 라쇼몽의 감독은 그 나무꾼이 자신이 제일 처음 목격했다는 말이 진실이며 오히려 자신이 봤다는 장면 이전부터 그 과정을 지켜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나무꾼의 고백을 통해 보여준 감독이 내린 결론에서 범인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자 스스로 범인이라 자백한 도적이었다.
감독이 내린 결론에서 무사를 죽였다고 한 모든 이들의 진술은 거짓이다. 교묘하게 자신의 잘못되고 치욕스런 진실을 숨기고 마치 서로가 그들 스스로 생각해 온 가치에 벗어나지 않게 살아왔다는 양 포장된 진술을 하는 이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스스로도 떳떳치 못한 나무꾼의 모습에서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덤불 속’이라는 소설을 읽고 처음엔 매우 난해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총 7명의 진술자가 등장하여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는데 소설 끝까지 진범이 밝혀지지 않고 진술내용도 모두 엇갈리게 되어 있어서 1번 읽어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이 소설에 대해 여러 생각을 가지며 추리해 나가는 효과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저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분석도 해보고 추리도 하는 등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보통 이런 종류의 소설이나 추리소설을 보면 용의자들은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그에 대한 알리바이를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