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벚꽃동산』. 고전들을 젊고 새로운 얼굴로 재구성한 전집「열린책들 세계문학」시리즈. 문학 거장들의 대표작은 물론 추리, 환상, SF 등 장르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전 문학까지 다양하게 소개한다. 소설에 국한하지 않고 시, 기행, 기록문학, 인문학 저작 등을 망라하였다. 원전에...
안톤 체호프가 남긴 여러 희곡 가운데 사람들에게 자주 언급되는 작품 중 하나가 있다. 배경은 러시아 귀족 사회가 몰락의 기로에 놓였던 시점이다. 오래된 별장과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그 무성한 나무들이 상징처럼 등장한다. 한 가문의 기억이 스며든 장소, 아련한 추억과 유산이 얽힌 공간이다. 땅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감정이 농축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에 매여 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에 대조적인 인물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부딪힌다. 과거에 얽매인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 그저 새로운 시대를 맞아 변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 모두가 한 무대 위에서 서로 다른 삶을 펼쳐내는 셈이다.
러시아 문학 속에서 커다란 전환점에 놓인 시대상은 자주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귀족 출신 지주들이 더 이상 이전처럼 막강한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인상적이었다. 작중에서 소유주인 뤼바 씨는 빛바랜 영광의 시절을 끝까지 붙잡으려 한다. 개인의 유희와 호사에 치중하던 사람이 현실의 벽 앞에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그러면서도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인간적인 정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다. 때때로 티 없는 순수함이 드러나지만 시대의 흐름은 그녀를 가차 없이 몰아세운다. 그 가족이 가진 경제적 어려움은 점차 심해지고 도저히 예전 방식으로는 버틸 수 없어 보이는데도, 막판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으려 하고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것은 마당에 펼쳐진 그 화사한 공간이다.
처음에는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분위기가 묘한 울림을 준다. 왜 이렇게까지 모든 인물이 그 동산에 애착을 가지며, 결국 그것이 사라짐으로써 무엇을 잃었는지가 서서히 드러난다. 어느 누구도 지금의 경제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새 시대에 맞게 새로운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편에서는 과거의 체면과 전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갈등이 발생한다. 한때 즐거움과 안락을 주던 그 집과 나무들 사이에서, 어느 편이 옳고 그른지 명확히 갈려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대립 구조를 통해 특정한 도덕적 결론을 제시하려는 듯 보이지 않고, 각 인물이 자기만의 마음과 이유를 가진 채로 행동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 강한 공감과 애증이 일어난다.
‘벚꽃동산’은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4대 희곡중 하나입니다. 이 희곡은 러시아 귀족사회의 몰락을 그린 작품으로, 벚나무 동산을 소재로 하여 귀족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부상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몰락한 귀족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변화와 현실과의 부딪침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5년 만에 돌아와 자신의 벚나무 동산을 발견하지만, 경영 부진으로 인해 경매에 붙게 됩니다. 그녀의 가족은 현실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으며, 그들 각각은 미래에 대한 다른 희망과 욕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들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체호프는 사회의 허무함과 현실의 비극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품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삶과 사연을 다루며, 각각의 캐릭터가 독특하고 풍부한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은 누구에게나 고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은 4대 희곡 중 대표작으로서 19세기 후반 격변하는 러시아 사회상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작품이다. 텍스트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러시아 사회를 주도하는 계급이 귀족에서 신흥 계급으로 바뀌는 당시의 ‘시대상’이다.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옛 상류층과 새 시대를 주도할 사람들의 모습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인생의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세계, 현실 앞에서 무참히 깨져버린 이상화된 욕망, 벚꽃동산으로 상징되는 옛 생활의 정취를 그리고 있는 작품 ‘벚꽃 동산’은 현대 단편 문학의 초석을 놓은 러시아의 작가 안똔 빠블로비치 체호프의 희곡집이다. 현대의 단편소설은 체호프를 통해서 양식과 주제를 습득해 풍요로운 세계를 구축했고, 현대의 연극은 체호프의 극적 스타일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거창한 사상이 아니라 현실의 진실에 주목하는 체호프의 작품은 읽기 쉽고 누구에게나 뭉클한 감동을 준다. 그러나 해석하려고 들면 그의 작품은 누구의 것보다 어렵다. 그가 제시하는 것은 추상적인 이념이 아닌 삶 속에 나란히 존재하는 평범한 일상의 진실한 삶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 ‘벚꽃 동산’은 1903년에 집필되어 이듬해인 1904년에 초연된 희곡이다. ‘세 자매’, ‘갈매기’, ‘바냐 아저씨’와 더불어 작가의 4대 희곡이라고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1934년에 상연될 정도로 당시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낭만적일 것 같지만, 실상은 19세기 후반 격변하는 러시아의 사회상을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씁쓸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왜 이 작품을 코미디라 칭했는가?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 간의 소통의 부재가 명확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필자는 솔직히 말해 이 글을 읽으며 전혀 유머러스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하였으나 앞서 말한 인물들 간의 소통이 부재한 모습이 작가가 의도했던 코미디라는 장르에 적합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한다. 또한 이 글에서 나타난 계급들 간의 전형적이지 않은 행동 양식 역시 독자로 하여금 웃음의 포인트로 여기게 하지 않았나하고 추측해볼 수 있다.
안톤 체호프의 4대 희곡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자 그의 문학생애를 장식하는 최후의 걸작이며, 인생의 비극과 희극이 엇갈리는 세계를 표현한 『벚꽃 동산』(1903)은 쇠락해가는 러시아 지주계층을 날카롭게 그려낸 희곡이다. 『벚꽃 동산』(1903)에서의 아름다운 벚꽃 동산은 라네프스카야 가문의 역사와 함께 해온 땅이다. 하지만 몰락한 귀족 가문 라네프스카야 사람들은 돈에 몰리는 상황에서도 파티를 열거나 구걸하러 온 농부에게 돈을 주는 등 화려한 생활방식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벚꽃 동산은 상인 로파힌에게 넘어가게 되고 가족들은 벚꽃 동산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마지막은 슬픔이 가득한 분위기지만 쓸쓸한 희망을 준다. 1860년 항구도시 타간로크에서 태어난 안톤 체호프는 밝은 성격의 소년이었다. 그는 시끄럽게 떠들거나 사람을 놀리거나 익살을 부리기도 하고, 또 사람을 꼼꼼히 살펴 우스꽝스럽게 잘 흉내 내어 사람들을 웃겼다고 한다.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에 의해 1903년에 쓰여지고 1904년 1월 17일 모스크바 예술 극장에서 최초로 상연 되었다. 체호프는 러시아 희곡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극작가로, <벚꽃동산>은 그의 작가 인생 중 마지막에 지어진 작품이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말은 자연주의에 이어 인상주의가 예술 전반에 주도적인 양식으로 자리매김하던 때였다. 그 중에서도 체호프는 ‘서정적 분위기’의 미학을 창출해 낸 단편 작가이고 러시아에서 인상주의적 흐름의 가장 순수한 대표자 라고 할 수 있다. <벚꽃동산>은 로파힌과 두냐샤가 라네프스카야 부인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작품 배경이 되는 벚꽃동산은 라네프스카야 집안이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 매우 넓고 아름다운 곳이다. 4막의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무덤 속에서 오늘의 이 결과를 보셨다면 어땠을까요? …
벚꽃동산은 체홉의 마지막 희극이다. 체홉이 벚꽃동산을 썼을 때, 러시아는 혁명의 폭풍 속에 있었다. 농노해방과 귀족 계급의 몰락, 브나로드 운동이 한데 섞여 세상은 혼란스러웠고, 사람들은 과거에 머무르는 자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자들로 나누게 된다. 러시아의 그야말로 격동기를 맞고 있었다.
리얼리즘 작가의 대표중 하나인 체홉은 세기말부터 세기 전환기에 걸친 회색빛 나는 시대를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낸다. 이를 통해 그는 사람들의 어리석음, 허무함, 몽상을 묘사한다. 체홉의 극은 부조리극이라고도 불리는데, 벚꽃동산에서도 주인공들은 그들을 지나쳐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루지 못한 과거의 헛된 희망에 빠져 산다. 그들은 그들의 어리석음에 좌절하고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에 젖어 현실을 보려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체홉의 부조리는 여기서 출발한다.
우리는 과거를 지우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까? 아니면 과거를 유지하면서 변화를 거부해야 할까? 우리는 특권층을 없애고 모두가 평등하게 되어야 할까?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특권층이 존재하는 것이 좋을까?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무조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좋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어떤 특권층을 없애고 만인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변화’라는 것은 역사의 흐름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일부는 과거의 것이 되고 일부는 미래의 것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하지만 모든 변화는 항상 크고 작은 저항에 직면한다. 그 저항의 크기가 크면 때로는 전쟁과 혁명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세상은 어느 순간 다시 과거의 것이 되고 또 다른 변화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변화의 시점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교차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벚꽃 동산>이라는 희곡은 러시아의 농노제가 폐지되고 과거의 귀족층이 몰락하면서 신진 세력이 성장하는 모습과 생각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군대에 있을 적에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은 경험이 있다. 자의로 읽은 것이 아니라, 휴가를 위해 반강제로 읽었다. 그래도 이름만 많이 들어봤을 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접해본적이 없어서, 다른 책보다는 『햄릿』을 선택했다. ‘희곡’이라는 장르의 작품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고, 읽기 좀 어려웠지만 재밌었기에 아직도 기억에 남은 작품 중 하나이다.
그런데 『벚꽃 동산』은 너무 희곡스럽다고 해야할까, 정말 읽기도 힘들뿐더러 아무리 나의 상상력을 동원해도 인물들의 대화가 이어지지가 않았다. 갑자기 화제를 휙 돌려버리거나 이유도 모르는 장면 전환의 반복으로 인해 정신이 사나워졌다. 끝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대화-귀부인들끼리의 대화같은-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