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기>는 1백 3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으로, 세계를 무대로 하는 인간백과였다고 할 수 있다. <사기>가 취급한 대상은 시간적으로는 옛 제왕들의 시대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공간적으로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흉노 등 중국 주변의 민족들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 장을 나누어, 역사의 격동과 그 격동의 이끌었던 명우들을 이야기한다.
사마천이 남긴 대작은 방대한 분량과 폭넓은 대상 덕분에 지금까지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한 인물이 과거를 정리하고 자신의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들을 한데 모았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거기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부터 제왕들과 영웅들의 파란만장한 행적까지, 여러 측면이 한 권에서 이어진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여전하다. 너무 완벽하게 구성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치열함과 고뇌가 묻어난다고 생각한다. 사마천이라는 인물이 겪은 굴욕과 비극이 그의 필치 속에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역사의 큰 흐름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고난을 묵묵히 품고 있었을 거라는 상상이 든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부터 몰아치는 이름들이 참 많다고 느꼈다. 황제부터 제후, 그리고 여러 세력까지 쉼 없이 등장했다. 시대적 배경이 다층적이고, 수많은 사건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초반에는 그 흐름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이 인물이 누구였고, 어떻게 변하여 어느 자리에 섰는지 머릿속에서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사마천이 사건들을 짜임새 있게 연결하려 했다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지나치게 특정 인물이나 왕조의 흥망성쇠에 집중한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평을 넓혀 보면, 여러 갈래를 모아 거대한 역사의 집을 세워두려는 모습이 선명하다.
책의 구성은 크게 몇 가지 부문으로 나뉜다. 열전, 세가, 본기, 표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분야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부분은 황제나 왕들의 계보와 정치적 변화가 주로 나온다. 또 다른 부분은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가 단락별로 펼쳐진다. 사람 이름과 지명, 그리고 사건이 뒤섞이면서 거대한 드라마를 형성한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애초에 그 무수한 역사를 어느 정도 체계에 맞춰 담아내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어떤 이는 바로 그 서술 방식이 건조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다양한 서술 기법이 섞였다고 평하기도 한다. 다만 그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후세에 남겨진 역사 기록이 아주 풍부해야 한다는 염원이 있었을 것 같다.
고죽국은 누구인가
사기를 읽다 우리나라와 관련된 흥미로운 부분이 나온다.
제나라 환공, 그는 전국시대 최초의 패자였다. ( 재위기간 BC 685 ~BC 642년 ). BC662년 환공 23년, 산융이 연나라를 침공했을 때 구원군을출병시켜 고죽국으로 몰아냈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때, 사마천은 국이라는 표현이나 제후국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땅” 이라 했다. 이 지점에서 그땅이 지금 어디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중 략>
오왕 합려와 부차에 이르러 망한 오자서는 어떤가? 의견일치를 보지못한 부차에게 속루검 ( 자살용 칼 ) 을 받게 된다. “ 절정에 오른 군주 옆에 오래 있는것은 위험하다. 고생은 함께 나눌 수 있어도 영화는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을 남기고 떠난 범여는 살아서 영화를 누린다.스스로 개척한 부와 재화로 누린 것이다. 구천이 없어도 성공할 수있는 인물이었다. 사마천은 그를두고, “ 세번 이사 한 뒤에 천하의 명사가 되었고, 늙어서 도나라에 가서 죽었고, 도주공의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고 썼다. 자살하고 눈을 뽑아 도읍의 동문에 걸어 월군이 입성한것을 보겠다고 한 오자서의 최후와 대비된다.
책을 읽던 나는 다시 한번 멈추고 멀리 언덕을 쳐다 본다. 나 역시 일모의 상황이라 할 수 있겠지만 도원하지 않고 도근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5년, 나는 노년에 도나라로 이주한 범여처럼 “나의 길,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다” 라는 선택을 하고 싶다.
내 삶이 ‘일모도원’이 아니라 ‘일모도근’ 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드디어 ‘명저로 읽는 세상’에서 함께 볼 마지막 서적인 사기에 도달했다. 지금껏 많은 책들을 함께 보아왔다. 하나 같이 후대로부터 명저라 일컬음 받는 책들이었다. 그 중 사마천의 사기를 마지막에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부터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알아보고자 한다.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은 기원전 145~86까지 살았다고 추정되는 인물이다. 그의 저서인 사기는 그의 필생의 역작으로 130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에 상고시대부터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또한 다른 이름으로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후한시대에 이르러 사기라 불렸다. 그리고 기전체(紀傳體)서술의 원조이기도 하다.
⧠ 감상문
사기는 동양사의 기초이자 동서양의 고전으로 높이 평가된다. 칠왕국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한 역사사에서 인물들의 내면적 고뇌까지 느낄 수 있는 문학 완성형 문체로 위대한 문학작품이자 역사서로서 예로부터 중국 문학의 모범으로 여겨져 왔다. 서로 다른 역사 기법을 사용한 종합사 형태가 사용되었다고 하며, 이러한 서술방식은 후대 사가의 예가 되었으며, 중국의 모든 사사가 이 형식을 따랐다고 한다.
중국사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사기’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 역시 평소에 중국사에 흥미가 많았는데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었다. 그러던 도중 사기가 중국 최고의 역사서로 불렸다길래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이번 방학 때 읽어보게 되었다. 사기는 한 무제 때의 역사가 사마천이 썼으며 전설 속의 삼황오제로부터 시작해 한 무제까지의 2000여년의 기록을 다룬 역사서이다. 이 책은 사건을 중심으로 시간 순으로 서술하는 편년체가 아니라 인물을 중심으로 기, 열전, 표 등으로 나누어 서술하는 기전체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사기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성공하거나 큰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실패하거나 비참히 죽은 사람들도 나온다. 사마천은 아마 후세 사람들이 이 인물들의 삶을 통해 교훈을 얻기를 바란 것 같다.
사기는 사마천이 쓴 역사서이다. 포숙은 보잘 것 없었던 관중을 재상의 자리에 앉힌 인물이었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바로 관포지교라고 한다. 관중과 포숙은 원래 친구였으나 섬기는 사람이 달랐다고 한다. 관중은 포숙이 모시던 공자 소백이 군주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활을 쏘았다고 한다. 소백의 허리띠를 맞추고 소백이 죽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백이 군주가 된 것이다. 원래라면 관중은 죽어야할 처지였지만 포숙의 추천으로 재상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는 것이다. 포숙은 관중과 친구였으니까 추천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자를 등용한 제나라 환공이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영이란 인물은 제나라를 크게 부흥시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안영은 재상으로 있으면서 30년 동안 옷 한 벌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이천 백여 년 전(기원 전 93년 경), 이토록 구체적이며 방대한 내용의 역사서를 저술하였다니 그저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비록 사마천의 사기열전 상하 전체에 대한 역사 내용을 전부 읽고 통찰하지는 못했지만 ‘태사공 자서’편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면서 짧은 중국 역사 지식을 활용하여 행간에 담겨있는 의미를 찾아 여행을 하듯 행복한 경험을 하였다. 누가 어떤 의도로 기록을 남겼든지 역사의 기록이 후대에 전해주는 가치는 정치사, 문화사 면에서 뿐 아니라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시대적 정신을 통찰하는 힘을 주며, 삶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사마천의 사기는 한나라 무제 때의 역사까지를 담고 있다. 읽으면서 꽤나 놀라운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을 삶아 죽인다던가, 사촌끼리의 결혼이나 이복동생과의 불륜 등의 근친상간, 약간은 변태적이다 싶을 만큼 포악하고 인정 없는 진시황과 같은 사람이 어떻게 정권을 잡고 나라를 쥐고 흔들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공자와 노자같은 훌륭한 군자의 사상에 비해 그 시대는 지금의 시선으로 보자면 인권도 없고 자유도 없는, 마치 어릴 때 많이 했던 온라인 게임 속의 세상 같았다.
사람을 삶아 죽이는 팽형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하는 시늉에 그쳤다고 한다. 대신 장례절차까지 마치 사람이 죽은 듯이 하였고, 그렇게 팽형을 받은 자는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었으며 그 자손들도 벼슬을 하지 못했다. 사회적인 매장인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팽형은, 진짜 사람을 삶아 죽였다. 그렇게 삶아죽인 사람을 시체를 갈기갈기 찢는 거열형에 처하기도 했다.
<사기>는 크게 12본기, 10표, 8서, 30세가, 70열전의 5부분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서이다. 사마천이 저술하였으며 새로운 역사기술 형태인 기전체를 창조하였다. 사마천은 사기 열전을 통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인물들을 현재에 살아 있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감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해준다. 역사는 매순간 변화하는 것이며 사마천이 아무리 사실에 근거하여 사기를 저술하였다고 하여도 역사의 왜곡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문제보다는 사마천이 이러한 일화들을 통하여 독자에게 어떠한 교훈을 전달하고자 한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인상 깊었던 열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몇 개월 전에 중국으로 여행을 간 일이 있다. 이름을 대면 알 법한 대도시들을 구경하러 간 것이 아니고 산을 구경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었기 때문에 중국의 시골자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직도 아파트가 거의 없고 개인주택이 대부분인 그 지역의 사람들은 밥을 집 밖으로 나와 문 근처에서 쪼그려 앉아 먹는 일이 많았다. 여행가이드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고대 중국은 전쟁이 너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려면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적군이 쳐들어오는지, 난리가 난 상황인지를 빠르게 알아차려야 해서 밖에서 경계를 하며 밥을 먹었고 그것이 관습으로 굳어져 오늘날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백퍼센트 확신하긴 어렵지만 그럴싸한 이야기다.『사기열전』을 읽어보니 과연 가이드의 그 말이 완전 허무맹랑한 말은 아님을 알았다.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은 정말 밥 먹듯이 전쟁을 벌인 듯 하다. 오늘은 이 나라의 영토였는데 내일은 같은 땅이 저 나라의 영토가 되고, 어제의 동맹국이 오늘의 적국이 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혼란의 시대였던 것이다.